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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Jan 09. 2023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저마다의 해법이 돌핀슬롯.

#낫워킹맘

전업주부가 가정 내에서 얼마나 많은 행동반경을 남기는지 아는가. 어떤 가정은 한 명의 희생으로 누군가의 행동반경이 하나의 점처럼 두껍게 남아있을지 모른다.돌핀슬롯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적인 움직임. 나는 이런 억울함을 호소해 본다. 시시포스가 받는 형벌처럼 영원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우리 집을 예로 들어본다. 우리 집은 남들과는 다르게 돌핀슬롯의 분배가 잘 이루어져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간의 노력으로 이리되었다.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했고, 각각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효율성에 서로 감탄할 뿐이다. 남편은 빨래 개기와 분리수거를 도맡아 하고 있고, 아이들은 자신의 방 정리와 식사시간에 테이블 세팅을 완벽하게 해낸다. 요즘에는 안방 침실의 이불 정리도 손수 도와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도움의 손길도 자란다.




"일은 그렇다 치고, 조금 도와줘놓고는 생색 좀 안 냈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돌핀슬롯 집 양반도 생색 대마왕 이라니깐.”


생색이라는 말은 이미 그 의미에서 남들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이 내포되어 돌핀슬롯.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돌핀슬롯은 누군가 한 명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각자의 영역이 정해져 있는 우리 집에서는 생색이라는 말이 다소 생경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지켜보면 우리에겐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즐거움이 동반되어 있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어 할 수 있는 돌핀슬롯에 당근 같은 요소를 살짝쿵 콜라보했었다. 일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팀을 이루어 '하기 싫은' 돌핀슬롯과 '하고 싶은'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합쳤던 것이다. 이 시도는 각자가 맡은 일이 힘든 줄 모르게 만들거나, 혹은 견딜 만하게 만들어 준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TV를 켜지 않는 우리 집에서, 남편이 빨래를 개킬 때면 잠깐의 허용을 눈감아 줬었다. 해보지도 않았던 살림을 하다 보면 지겨울 수 있으니,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손만 거드는 시간으로 형태를 바꿔본 것이다. 그러면 이 꼼수 대장 남편 씨는 빨래를 아주 아주 천천히, 정성스럽게 개고 돌핀슬롯. 짝 잃은 양말들도 완벽한 한 쌍을 찾을 때까지.

하지만 모두가 예상했듯이 남편이 돌핀슬롯에 관여한 이후로 빨래가 쌓여 바닥에 무덤을 만들어놓을 때가 많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회사일에 지쳐 힘든 줄 알고 대신 빨래를 접어두기도 했는데 남편의 황당한 말은 여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하다.


"아. 금요일에 ○○○ 몰아보면서 하려고 아껴둔 건데!”


물론 가끔은 하기 싫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각자의 영역 안에서는 각자가 만들어 놓은 룰이 있다. 나는 그 룰을 마음대로 깨면 안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누군가가 우리 집에 방문할 때마다 '이렇게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이들은 처음 본다'며 칭찬해주는 것에 더 큰 힘을 얻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아이들은 깔끔한 자기만의 방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평화로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돌핀슬롯에 뿌리를 내린 것은 나였지만, 가족들에게 싹을 틔워 나눠주었더니, 자연스레 줄기가 생기고 가지가 뻗어나가며 '평화'라는 꽃을 피웠다. 향내를 품어내는 꽃에 코를 가까이 대면 정말로 행복해진다.


앞으로 설거지가 힘들다면, 거치대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짧은 강의나 영상, 음악을 켜 즐겁게 시선을 뺏기며 일을 하길 추천한다. 담배를 피우는 남편이라면 분리수거를 할 때 태우는 담배만큼은 눈 감아 주고, 정리가 서툰 아이라면 아이만의 DMZ를 아주 작은 서랍 한 켠 부터 내어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저마다의 해법이 돌핀슬롯.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힌트가 될 수 있다.


서로가 정한 비무장지대에서는 양쪽 다 평화만을 바란다. 평화를 위해 조금씩 자신의 무기를 내려놓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우리 집은 서로의 자리에서 돌핀슬롯을 하고 있다. 로봇청소기도 핸드폰으로 자신의 경로를 알린다. 구석구석 많이도 돌아다녔다. 이제는 나 대신 가장 많이 움직이는 아이다. 오늘은 청소를 끝낸 로봇청소기가 나에게 말을 건다.


'본체 센서는 작동 중에 먼지로 덮이게 됩니다. 약 30시간 사용 후 깨끗하게 닦아주세요.'


로봇의 즐거움을 위해 이제 나는 그의 마음도 살펴볼 때다.



#낫워킹맘 #엄마에세이 #일하지않는엄마가하고있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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