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다시 건강해지다
'오십'이라는 '이모'가 드디어 왔다.
내가 유년을 넘어 청춘을 지났을 때,
이 정도 나이대의 여성들을 이모라고 불렀다.
나에게 이모는 씩씩하고 뭐든 척척 잘하는 강인한 중년여성을 의미한다. 나에게 오십대는 그런 이모들의 나이였다. 그런 내가 정작 오십이 되자, 모두가 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렇게 씩씩하지도 척척 잘하지도 못하는,
허당끼 가득한 사람 그대로다.
사실 참 우울한 얘기일 수 있는데,
나는 지독한 저질체력이다.
어릴 때부터 약골로 태어나 걸핏하면 아팠다. 공부를 곧잘 했는데 시험 본 다음날엔 어김없이 드러누웠다.
오죽하면 우리 아버지는 당신보다 먼저 그 강을 건널까봐,때 되면 한약을 지어서 먹였다. 내가 첫 딸을 낳았을 때 아버지는 대견해서 말씀하셨다.
"애기가 애기를 낳았네,"
부모님의 수고 덕분일까? 나는 기대수명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 그 사이 아버지는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사실 난 30대에 귀천할 수도 있겠다 짐작했다.
삼십대에 비록 초기였지만 '암'이란 불청객도 왔다.다행히 암 발병 3년 전 가입했던 보험사에서 나름 거액의 보험료가 나와 잠시 감격했다. 하지만 쓸쓸한 대가 지불이라는 생각에 기쁨도 잠시였다. 이제 평생 어김없이 붙여질 질병 꼬리표가 붙어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엔이름모를 통증 때문에 매주 두 번씩 한방병원에서 침도 맞았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다녔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나보다 더 걱정하셨다.
"독일은 침 같은 대체의학이 발달이 되지 않았는데...음.. 한 번 알아볼게요"
하지만 내가 이사 준비로 정신 없어, 선생님의알아본다는 것에 대한 답변은 결국 듣지 못기부벳.
난치병 의심을 받아 휴직을 하고 검사를 위해 한 달 이상을 대학병원을 쫒아다닌 적도 있다. 가족력 같은 부정맥도 있다.
하지만 생명은 질기더라. 생사고락은 조물주의 역량임을 실감한다. 내가 그렇게 용을 쓰지도 않았는데 어찌어찌 이십년 가까이 잘 지내오고 있다. 독일에 오자마자 적응 때문인지 정신 없었지만 골골 잘 견뎠다. 중간중간 건강문제를 상기시키려는지 수술도 두 번이나했다. 3번째 수술을 감행하려는 강하디 강한 독일의사에게 'Nein(싫어!)'을 강하게 외치고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한 번 더 하면 수술시간 동안삶을 마감할 것 같았다.
많이 아파본 사람은 느낌이란 게 있다. 이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의 지론이다.
6개월에 한 번씩 검사하라고 기부벳에서 청구서처럼 날아오는데 무슨 배짱인지 안 가고 6년을 버티고 있다. 그런 내가 오십이 되었으니 나도 놀라고 가족들도 내심 놀랄 듯 하다.
그래도 사람이란 게 욕심이 생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는 말이 있던가?
딸 1호와 2호가 예쁘게 자라고, 대학도 들어가니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으로 손주까지 보는 축복이라면....
그러던 찰나에 덜컥 요즘 갱년기 징후가 남다르게 왔다. 나에겐 갱년기,라는 단어는 먼 미래인 줄 알았다.언니들이 완경기니, 갱년기니 하면 그러려니 웃곤 했다. 그런데 갱년기,라는 손님은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 강약조절을 하면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일단 정서적, 신체적 변화가 일어난다.
오래 전부터 노안이 온 건 기정사실이고, 다리가 저리고 손목 관절이 아프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는 건 그냥 약한 수준이다, 아랫배가 아픈 게 미칠 지경이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아랫도리를 검사하더니 이상이 없다고 한다.
갱년기 관련 검진은 따로 예약하란다.
이왕 온 김에 상담받아주면 오죽 좋아? 독일병원이 으레 그렇지? 하며 혀를 차는데 다시 오고 싶지 않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독일 여의사가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밤에 잠을 잘 못잔다. 결국 갱년기 수면에 좋은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정서적 변화는 조금 긍정적이다.
갱년기가 되면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데 나에겐 예외다. 에너지가 없어서인지 조금더 내려놓음이 된 것 같다. 사실 3~4년 전부터 나를 알아차리는 법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상담심리학 석사를 하면서 심리학의 매력에 빠졌다. 마음훈련을 하는 단체에서 훈련도 받았다. 특히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효과는 극대화였다. 무엇보다 조물주인 하나님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때부터 나에게 새로운 인간관계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졌다.
오래전부터 알았던 후배이고 친해서 함께 일을 도모했지만, 결국 그 친구를 깊이 알아가면 갈수록 실체를 알아차렸다. 결국 나는 그 친구와 아무 다툼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 자리를 나왔다. 말을 한다는 자체가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더듬어보니 그 친구는 전형적인 소시오 패스였다. 생각해보니 10년 가까이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힘든 감정을 품고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조용히 인연을 끊었다. 에너지를 헛되게 사용하지 않고 싶었다.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껍데기는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관계를 되도록 단순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듯 좌충우돌 정서적, 신체적 변화 속에
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하늘의 이치를 아는 나이라고 했던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서 삶이 조금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욕심이 없어졌다. 이건 허무함과는 다르다.
이런 찰나에 시작하게 된 것은 운동이다.
지지리도 운동을 싫어했던 나는 걷는 행위 외에는 시간을 낼 줄을 몰랐다. 하지만 딸2호의 전적인 권유와 회유로 동네 피트니스에 가입했다. 그곳은 사우나 시설과 여성만 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바디라인에 자신없는 나에게 사람이 거의 없는 새벽 운동은 안성마춤이었다.
타고난 육체미로 기죽이는 독일 젊은 여성들이 동기부여가 되긴 했다. 사실 처음에는 운동하러 가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바쁜 와중에 시간 내는 것도 아까웠다. 그 시간에 침대에 드러눕거나 책을 읽는 것이효율적이라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일 주일에 세 번은가려고 노력한다.유산소 운동과 팔 다리 근육운동, 그리고 유산소 운동으로 마무리한다.운동을 하면서 듣는 유투브 채널과 흥미로운 내용들이 시간을 풍요롭게 사용하도록 이끌어주기에 일석이조다.
여타 이모들처럼 척척 일도 잘하는 튼튼한 이모가 되려고 오늘도 운동을 간다.
기부벳고보니시간이 흐를수록흐물흐물했던 팔뚝도 제법 근육이 붙어보인다. 착시효과일지 모르지만,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와, 나도 (오십의) 이모가 되었다니 감사가 넘친다.
세상의 모든 골골기부벳아!
지금까지는 허약이었다면, 오십부터는 튼튼이다. 알겠지?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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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어제도 땅콩을 잘 못 먹어 체해 하루 종일 누워 있었네요. 이제 다시 몸 추스리고 일어납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지금은 힘이 나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