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노래, 따듯한 내 곁의 온기
https://youtu.be/KOAQ1xjW7Dk?si=igZAlHvIMllHeAF_
춥다. 몸이 으스스하다. 아침부터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생리일자는 일주일이나 늦어지고 있다. 남편에게 아이 재우기를 맡기고 잠을 청한다. 이번 한주는 조금 분주했는지 몸이 고단하다. 재활의학과에서 처방받는 약을 삼키고 겨우 잠이 들었다. 누군가 몸을 흔든다. 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새벽 3시.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깨웠다. 똥이 마려운 모양. 배가 아픈가. 그래도 어디 실수하거나 않고 엄마를 깨우러 오다니 기특하네. 말 못하는 아이가 동기를 갖고 타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도 매우 드물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아홉 살 아이의 배변 훈련. 독하게 훈련시키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할까. 얼마전 개그우먼의 패러디 영상이 생각난다. 그 속에 잠시 등장하는 '배변훈련 과외샘의 연락처'. 그 연락처 말이야, 나도 조금 궁금해지네. 자폐를 가진 아이도 가르칠 수 있으려나.
잠이 덜 깬 눈으로 뒷처리를 해주고 물로 씻겨준다. 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팬티를 입혔다가 다시 기저귀로 바꿔 입힌다. 요즘 소변실수가 잦다. 자다 말고 실수해도 괜찮지만 오늘은 밤잠을 설쳤으니 잠이라도 곤히 재워야지. 얼마전 크게 아프고 난 끝물이라 마음이 약해진다. 독해야 아이를 가르칠 수 있을까. 바로 잠들 거 같지 않아 작게 노래를 틀어주고 거실에 누워서 반쯤 감긴 눈으로 아이를 지켜본다. 정원이는 희한하게도 <국악한마당도 좋아하는 인생 2회차쯤인 거 같은 어린이.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아주 작게. 가곡 <꽃피는 날.
잠이 홀딱 깨어버린 카드카운팅의 동그란 눈을 보면서 아 오늘도 날 밤을 새어야 하나 싶어 아득해진다. 카드카운팅가 깨어있으면 아무리 졸려도 먼저 잠들 수 없으니 새벽 내내 지켜보았다. 나름 반은 시체처럼 누워서 실눈으로 지켜보는게 체력을 비축하는 요령. 남편은 잠에 약한 편이라 새벽조는 대부분 내 몫이다. 나야 워낙 야행성이니 제법 버틸만했으니까. 정말 너무 졸릴 때면 두어 시간 카드카운팅를 보고 남편을 깨워ㅡ정확히 말하면 내가 화내는 소리에 남편이 깨곤 했지만ㅡ 교대하고 아침 7-8시에 아침잠을 청했다. 한 두 시간이라도 눈붙여야 일과를 해낼 수 있다. 이렇게 잠을 분담한지 이제 3년쯤. 직장을 출근해야 하는 남편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애가 잠들고 나면 둘 다 이것저것 글 쓰거나 영화를 본다. 온전히 뭔가를 해내야 내일을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늘 수면부족이다. 밤은 늘 길고 생각의 꼬리는 많아진다. 그 시간에 뭘 쓰려고 한 적이 없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이 시간을 글로 기억해 두고 싶어져 끄적인다. 잠이 오지 않은 푸른 물의 시간.
고요한 새벽, 거실에는 노래 소리와 아이의 옹알이만 겹쳐 들린다. 고단하지만 아늑한 소리가 거실을 메운다. 노래 가사 속의 '카드카운팅 일으켜 세우는' 그 구절이 참 좋네, 내일 운전할 때, 이 노래 한번 더 들어야겠다. 잠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생각의 꼬리를 문다. 다행히도 오늘은 버틸만하다. 4시간이라도 좀 깊이 잠들어서 그런가. 아이가 겨드랑이 사이로 머리를 끼워 넣고 한 손으로 배를 만진다. 물처럼 흐르는 늦겨울의 새벽에 따듯한 온기. 한참을 꼼지락거리던 아이는 일어나서 자기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다. 슈퍼싱글 침대의 한쪽에 붙어 내 공간을 내어준다. 재워 달란 이야기다. 자폐를 가진 내 아홉살 천사는 나름 사는 법은 알고 있다. 다행히 4시 좀 지나 잠들었다. 아빠를 깨우지 않은 둘만의 새벽은 이렇게 지나간다.
엄마들끼리 웃픈 농담으로 카드카운팅가 자폐를 가졌다는 것은 "어린 치매"를 돌보는 것과 같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많은 일상에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몸은 커도 뒤처리를 일일히 해야 하니까. 하지만 카드카운팅는 자라니까, 조금 다르다. 평지처럼 보일 성장 그래프지만 그래도 완만한 기울기를 갖고 있으니까. 배변훈련쯤이야, 이것도 우리가 해낼 날이 올 것이다. 조금 더딜 뿐. 그저 오늘 새벽을 조용히, 따듯하게, 사고 없이 잘 보내고 재웠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네가 아프지 않고 꽃처럼 웃으니 괜찮다.
photo by 카드카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