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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Feb 03. 2025

한판도라토토 느리고 조용하지만 깊게 울리는 일상의 조각들

판도라토토 <퍼펙트 데이즈 by 빔 벤더스 판도라토토

※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이른 아침, 이웃집 할머니의 빗질소리로 히라야마는 잠에서 깹니다. 어제와 같은 아침을 맞이하며 익숙한 듯 이불을 개고 1층으로 내려가 양치를 한 뒤 밤사이 자란 수염도 정리해 봅니다. 분무기를 들고 다시 2층으로 올라와 화초에 물을 주고는 옷을 챙겨 입고 문 밖을 나섭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옅은 미소를 짓는 것 또한 빼놓지 않는 그의 습관이죠. 이 판도라토토에서 여러 번 보게 될 장면이었습니다. 날씨가 좋든 궃든 그의 표정은 한결같았죠. 집 앞 낡아빠진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사들고 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음악을 듣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도쿄 스카이트리 타워를 꼬박꼬박 쳐다보며 그의일터인 공중화장실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히라야마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히라야마는 꽤 과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말없이 행동만으로 러닝타임의 수 분을 채워냅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꼼꼼하고 섬세하며 사뭇 진지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죠. 히라야마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걸 히라야마가 묵묵하게 해내고 있지만 누군가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이라며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가 하루종일 돌보는 화장실만 해도 수십 곳에 이릅니다. 꽤 규칙적이면서 철두철미하게 정리하는 편인데 히라야마 본인 성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점심에는 음료와 샌드위치를 사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이 판도라토토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코모레비(こもれび)', 햇살이 내리쬐어 나뭇가지 사이로 일렁거리는 걸 의미하는 일본어인데 히라야마는 이를 응시하며 오래된 카메라로 그 풍경을 담아냅니다.일이 모두 마무리되면 목욕탕을 찾아가고지하철 역 작은 식당이나 어느 골목에 있는 소박한 술집을 찾기도 한답니다.


히라야마의 삶에는 특별한 사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어 그저 단조롭습니다. 심지어 대사도 몇 마디 없어서 판도라토토 자체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단조로운 반복 속에 무미건조함보다는 평온함이 있고 비바람이 불어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며 나무가 있는 풍경이 있고 또 음악이 있습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에 스며든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게 되죠.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여동생의 딸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히라야마의침묵 가득했던 공백을 깨는 싱그러움이라고 할까요?조카를 데리러 온 여동생이 그렇게다녀간 후로 히라야마의 빈 공간을 채웠던 그 짧은 시간들은 이미 가버렸고 익숙한고요함이 찾아오지만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그의 삶 자체가 '고독'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히라야마의 '비언어적 감성'이 전해지는 순간마다 러닝타임을 채우는 또 다른 존재는 그의 굵고 진중한 목소리가 아니라 이 작품의 판도라토토인 빔 벤더스의 OST 선곡이랍니다. 대다수 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는 올드 팝인데 도쿄의 길거리 풍경과 굉장히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답니다. 히라야마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 단편들, 그리고 꿈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하죠. 관객들 모두 그 음악을 함께 듣고 있고 히라야마가 느낄법한 감정이나 고독을 음악이라는 걸 통해 공유하게 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판도라토토이나 음악을 사랑한 판도라토토 속 히라야마에게 판도라토토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힐링이라는 걸 가능하게 만들며 살아 숨 쉰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음악의 힘입니다.


빔 벤더스 판도라토토은 독일 출신입니다. 굳이 이곳까지 와서 촬영을 하고 판도라토토로 만들어낸 어떤 의도에는 히라야마 캐릭터를 연기한 야쿠쇼 코지라는 '대배우'의 힘이 있었을 것 같군요. 야쿠쇼 코지는 이 작품으로 칸 국제 판도라토토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답니다. 그의 얼굴에 짙게 새겨진 근육 하나하나가 히라야마를 연기하기 위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엔딩 신에서 롱테이크로 보여준 그의 표정에는 미소도 있고 슬픔도 있으며 고독이 있고 또 환희가 있었어요. 굉장한 명장면이기도 하죠.


큰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이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음을 오롯이 증명하는 판도라토토였습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판도라토토를 보고 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뭇잎의 흔들림 그리고 그 사이로 빛나는 햇살의 따사로움 조차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지게 될 겁니다.


판도라토토판도라토토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야쿠쇼 코지)가 공원에서 코모레비를 바라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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