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10슬롯
영화가 시작했다. 빈자리였던 내 옆에 앉은 것이 누구란 것은 옆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TOP10슬롯도 없는 극장에서 두 사람이 TOP10슬롯 말 없이 미동도 하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났다. 그가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를 쫓았다. 어둡고 긴 TOP10슬롯를 계속해서 뛰었다.
더 이상 숨이 차고 무서워서 뛰지 못하고 섰더니 그제야 그가 돌아와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그리고 TOP10슬롯 끝에 있는 어딘가로 그가 먼저 들어갔는데, 유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그 방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누구인지 알 것 같은 그들은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냥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저거 어서 오라는 것이 아니구나-했다. 그래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해 어둡고 긴 TOP10슬롯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문고리를 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다 얼굴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 몸을 일으켜 안을 들여다봤을 때는 TOP10슬롯도 없었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었지만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다시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