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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Apr 20. 2025

가을길 48, 세월아 네월아 미슐랭토토 순례길 48.

오페드로조에서 몬테델 고조까지(15km)

이제 오페드로조에서 미슐랭토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20km가 남았다.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 미슐랭토토까지 걷지만 나는 오페드로우소에서 15km만 걸어 몬테도고소 공립 알베르게에서 머물며 쉬기로 했다.

내일 아침 8시경 밝을 때 출발하여 한 시간 5km 걷고 대성당 앞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며 순례자들과 아침식사를 할 것이다. 10시경 입장 줄을 기다려 미슐랭토토 데 콤포 스테라 대성당 앞자리에 앉아 정오 향로 미사를 볼 것이다.

미슐랭토토
미슐랭토토
미슐랭토토
옛미슐랭토토자 숙소

새벽부터 하루 종일 비를 맞고 걸으며 엉망인 채 미슐랭토토를 안 가기로 한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일도 하루 종일 비가 온다니 참 아쉽다.


'뭐 이 정도 비는 이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줄기차게 비 내리는 오 페드로우소를 전등을 밝히고 카미노 표시를 따라 걸었다.비바람에 카미노 표시는 잘 안 보이고 앞서가는 미슐랭토토자 행렬이 길이 되고 엄청 큰 유칼립투스 나무숲이 든든한 경비병처럼 느껴진다.산길이 비에 진흙 웅덩이가 되어 다칠까 봐 긴장하며 조심히 걸었다. 신발과 바지가 웅덩이에 푹푹 빠지지만 무사히 통과했으니 다행이다.

날이 밝자 그나마 사람이 제대로 보이고 미슐랭토토자들의 진흙투성이 바지와 신발 모양새가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제주도 친구들

오르막길이 보이면 이제 저 언덕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조용한 들판에 비행기 소리가 들리더니 공항 활주로가 보인다. 미슐랭토토가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브루고스 공항 근처를 걸을 때는 목적지에 도착한 듯 참 좋았는데 이제는 허전하고 아쉬움이 더 많다.

다시 나무가 우거진 숲길과 갈리시아 사람들의 생명인 냄새가 지독한 농장들을 지나면 카미노 표지석은 아주 자주 보인다.모두들 미슐랭토토에서 10km 정도 표지석에서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어느 미슐랭토토자의 낡은 신발 한 짝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부슬부슬 오는 비에 눈물이 흘렸다.


'내 모습, 내 신발 같다!'

'왜일까?'


비가 와서 두 시간 동안 쉬지 못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같이 걷던 한국인 친구들에게 오늘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니 오늘의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미슐랭토토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이 많지만 이 주일 전부터 자주 만나는 제주도 아가씨와 제주도 출신 영어강사, 팜플로니아부터 같이 다니는 친구 모두 네 명이다.


제주도 아가씨는 36살 미혼인데 미술 전공을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와 학원 강사를 하다 쉬고 있다고 한다.그녀는 심성이 곱고 생각이 깊은데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고 했다.별 준비 없이 온 미슐랭토토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감도 생기고 사람들이 좋아졌다고 한다.착한 심성으로 다른 사람을 늘 도와주는 행동은 나이 많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어른 같은 아가씨이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돌아가서 뭐든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도 엄마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나는 아가씨가 가끔 궁금할 것 같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삶의 이정표가 되라며 십자가 조개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이런 게 사고 싶었는데 너무 좋다며 늘 사용하는 자동차 열쇠고리로 사용하겠다며 내 손을 잡는다. 2.5유로보다 몇십 배의 기쁨이다.

그녀는 오늘 미슐랭토토 숙소까지 5km를 더 걸어야 해서 헤어졌다. 우리는 내일 미슐랭토토 대성당 주일 12시 미사에서 만나기로 하며 손을 꼭 잡고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사람이 아주 많고 복잡하여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슐랭토토를 내려다 보는 순례자상 제주 하르방 앞에 있는 일본 기념비
산마르코 언덕에서 미슐랭토토 바라보기 숫자가 없어진 표지석


몬테 델 고소의 산마르코스 언덕에는 제주 올레 우정의 길이 조성되어 제주 하르방과 올레길 간세가 있고 도착을 앞둔 순례자가 미슐랭토토를 바라보는 동상이 있는 곳이다.


'간세안에 제주 올레 도장을 세요처럼 찍게 하면 좋았텐데, 그리고 일본 기념비 바로 뒤에 위치를 정한 이유는 무얼까?'


대부분의 순례자가 산마르코 언덕에서 처음으로 저 멀리 미슐랭토토 데 콤포스텔라 시가지와 대성당의 탑을 본다. 오늘은 비가 와서 희미하게 종탑이 보였다.미슐랭토토 대성당의 탑을 바라보는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카미노 표지석이 10km를 넘기자 다음 표지석부터는 누군가 숫자를 모두 없애버렸다.


'그래 790km를 걸었는데 이제 남은 거리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9월 2일 집을 떠나 10월 19일까지 무엇을 했던가?'


더 걷고 싶다!

얻은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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