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즉다 다즉일
몇 년 전, 운전을 하다가 신호를 기다리는데 차가 꿀렁거렸다. 뒷차가 내 차를 박은 것이다. 차에 관심이 많고 애지중지 다루는 나 정도 애차가라면 화가 치솟을 상황이 분명한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문을 열고 나가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상대 차주는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걱정 마시라고 말하고 담당자가 올 때까지 운전석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어떤 돌직구벳과 행동이 이런 사건을 불러일으켰나 돌직구벳해보았다.
운전 도중에, 문자를 찍고 궁금해서 단어를 검색하고 다시방을 열어 마스크를 찾은 일 등등이 기억났다. 무엇보다 하필이면 고릴라즈의 On melancholy hill을 듣고 있는 찰나에 멜랑꼴리한 일이 발생되어서 칼융의 동시성 원리도 떠올랐다. 100% 상대 과실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차가 아닌 내 차가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절대 돌직구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아침에 본 뉴스와 지나치며 본 게 섞여 실제 일어나게 된 일도 있고, 꿈에서든 명상에서든 조짐과 징조를 미리 알려준 일은 살면서 의외로 많았다. 그런 일들은 마치 돌직구벳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상에 돌직구벳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다 내가 당긴 것이다. 나는 나의 사소한 부주의와 습관이 모여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경고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의 좋은 마음과 소소한 선행조차 나에게 운과 복을 안겨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모든 일은 알게 모르게 얽혀서 상호작용 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단순히 돌직구벳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과는 깊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다. 주역을 미신이라 생각하는 사람과 우주를 논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모든 과학은 증명되기 전까진 모두 미신으로 여겨진다. 이 복잡한 세상을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사람의 사고체계는 워낙 단순해서, 그들은 우주가 주는 깊은 뜻을 잘 읽지 못하거나 희노애락을 쉽게 드러내거나 남탓을 하는 경향이 많다. 믿음은 자유이지만 모든 일에 그 이면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노력은 더 넓은 세계를 알게 해준다.
매사 무슨 일을 하든 트인 시야를 가진 사람은 세상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돌직구벳도 필연이라 여기면 더 많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그 메시지를 잘 읽을 때 우리는 성찰하고 성장하며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