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마스크
어제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바람이 비를 흩뿌리는 바람에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그런 비였다.
편의점을 지나갔다.
우산을쓴직장인무리가점심을먹고그앞에서더블유 토토를피우나보다.숨을들이쉴때인상적인한더블유 토토냄새가쑤욱하고들어왔다. 이비와그더블유 토토냄새의조합은어디서였더라? 다시맡고싶은냄새였다. 나는흡연자도더블유 토토를한번도펴본적도없는사람이지만몇몇더블유 토토냄새를좋아한다.
어떤더블유 토토피우세요? 하고물어보고싶었지만우산을쓰고있었기에얼굴도잘보이지않았고소리도잘전달될것같지않았다. 그리고무슨더블유 토토인지안들뭐어쩌겠는가. (지하철옆자리에앉은아주머니의향수냄새가너무좋아서물어본적은있다.)
나는 오늘따라 핫핑크색 레인코트를 입고 여린 핑크색 립스틱을 손에 조금 묻혀 볼에 바른 채 약간은 음울하면서도 맑은 봄비를 맞이했다.
열린책들에응모한더블유 토토시사회에당첨이되었다. 요즘따라당첨이잘되는것같다. 제목은<맨오브마스크.영어제목이Man of Mask이지도않은한글표기제목의더블유 토토더블유 토토였다. (스포없음!)
미장센이 아름다운 더블유 토토라는 정보를 안고 더블유 토토를 보았다. 1919년도 더블유 토토 파리 배경인데, 카메라 무빙은 매우 현대적이어서 세련되게 느껴졌다. 색감이 화려한 건 아니었지만 얼핏 웨스 앤더슨 감독 더블유 토토스럽기도 했다. 얼굴을 엄청나게 클로즈업하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들, 직접 둘러보는 듯한 카메라 워킹이 인상적이었다.
1919년도라는 시대적 배경을 듣자 순간적으로
세계제1차대전,
파리 평화회의
윌슨 몇 개조,
독일 빌헬름 2세와 티르피츠 해상,
제국주의의 팽창과 야욕,
세력균형의 붕괴,
비스마르크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우리나라는 3.1 운동이 떠올랐다.
교과서활자로읽은시대속파리를구경하고미시적으로그시대의사회상, 그중에서도한인물을중심으로들여다본다. 정말담아내자면담아낼 것이 한도끝도없이많은시대이나과감하게쳐낸부담없는더블유 토토이자명작이었다. 적절한코믹요소가있었고, 감동도예술성도있었다. 당시를재현한세트장같은인위적인느낌이들기도했지만.
어쩌다보니주위에더블유 토토어할줄아는사람은많지만나는더블유 토토어는전혀할줄모른다. 다른언어에비해유달리아름답게들리지도않지만(나는발랄한북부스웨덴어가아름답게들린다) 역사속에서더블유 토토어를보고듣자니더블유 토토어를배우고싶어졌다. 역사가있는언어같아보인다. 특히더블유 토토속의더블유 토토어로된신문의글자가아름다워보였다. 저글자를읽을수있다면!
집에 가는 길에도 역시나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쌀쌀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집까지 내려가는 동안에 나는 상상을 했다.
내가 더블유 토토의 고풍스러운 아파트를 한 달 빌려서 산다면? 아니면 오래된 호텔에서 지낸다면 어떨까.
상상 속의 나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 비를 맞으며 걷다가 편의점에 들려 와인 한 병을 산다. 와인을 알지 못하는 나는 그냥 대충 가격에 맞춰서 검붉은색 와인을 산다.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어 골목은 어둑하다. 나는 높고 단단한 아름다운 문을 열고 들어간다.
유학할 때 Social science 학부 건물에 깔려있던 융단 같은 소재의 검붉은색 바닥과, 높은 천장을 가진, 커다란 침대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적당히 아담한 방을 상상한다. 몸이 피곤한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검정색 하이힐을 팽개치며 벗는다. 싸구려 와인잔을 가져와 낮은 탁자에 놓고 바닥에 그대로 앉아 와인잔에 와인을 콸콸콸 따른다. 더블유 토토에서 나왔던 와인병이 잔에 닿는 소리, 따르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검은 스타킹의 올이 융단에 부대끼는대도 그냥 마신다. 와인 병째로 마시기 시작한다. 입술도 검붉어진다. 머리는 비를 맞아 뒤엉켜있고 자주색을 바른 눈은 번져있다. 코트를 아직도 입은 채로 바닥에 그냥 대자로 눕는다.
상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