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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Oct 02. 2021

렛 잇 라이드에 대한 목마름으로 책 쓰기

달달 초과 남친은 없지만 성취감 초과 책 작업을 해보는 걸로, 일단 지금

나야, 한참노화진행중인렛 잇 라이드

동갑내기 렛 잇 라이드에게 전화가 왔다. 거울 속 내 얼굴에 늘어난 주름을 보면서 우울하던 참인데

렛 잇 라이드와 한참 깔깔대면서 옛 추억으로 수다를 떨다 보니 기분이 금세 나아졌다.

역시 [추억은 방울방울 놀이]가 정신건강에 참 좋아! 그런데 갑자기 렛 잇 라이드가 딸내미 어린이집에서 끝날

시간이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어야 한단다. 어어 그래그래 담에 또 수다 떨자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끊은 건 전화인데 뭐랄까 내 여러 기분 선 중에서 해피선이 뚝 끊어진 것 같이 도로 우울해졌다.


그 렛 잇 라이드는 결혼한 지 4년 차인데 청약에 당첨이 돼서 집도 있다.

대출이 반 이상 이래도 그게 어디야? 평생 경력이 될 아이 엄마로서도 차곡차곡 성장하고 있는 렛 잇 라이드다.

얼마 전에는 주식 배당금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모르는 세계 이야기들.

남이랑 비교하지 말자고 항상 다짐하지만 원래 의식이란 게 이렇게 제멋대로다.

그냥 막 가서 이 렛 잇 라이드랑도 쟤고, 저 동료랑도 쟤고 이제 앞서가는 후배랑도, 이성과도 동성과도

막 쟤면서 난 어디쯤, 넌 어디쯤 이렇게 된다. 나의 내일은 어떤 모습이 될까?


불안감. 아마스물여덟쯤부터였던같다. 나이를먹어간다는, 아니나이만먹어간다는불안한체감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은데 나만 제자리 걷기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만 제자리걸음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렛 잇 라이드 있는데

얼굴과 몸만 중력의 법칙 제대로 적용되는 중이랄까?


불안감을연료로시작했다. 나도 나아가고 있다고 제자리 걷기 중인 줄 알았겠지만

실은 다른 방향이라서 그렇지 걷고 있다고! 뛰고 있다고! 얘기렛 잇 라이드 싶어서.

2년 전부터 책을 쓰려는 노력을 백방으로 했다.

출간 기획서를 써서 출판사 백 군데 보내고 백한 군 데서 퇴짜를 맞았다.


[아니 웨딩잡지가 있는데 누가 결혼 준비를 단행본으로 보겠어요?]

(그때만 해도 몇 군데 잘 나가는 웨딩잡지가 있었고, 다들 결혼준비할 땐 웨딩잡지부터 사던 시절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책 쓰려고 사서 본 책 렛 잇 라이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책에서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걸 쓰라는데. 네네, 제가 제일 잘 아는 거 그게 결혼 준비랍니다.

게다가 그 말인즉슨 아직은 웨딩잡지만 있지, 결혼 준비 단행본은 없다는 것이니까.

그럼 GO! 그렇게 퇴짜 맞기를 계속했다. 계속되는 거절에 현실감각을 찾고 도저히 안 되는 거구나,

단행본이 없는 이유가 있는 거구나 생각하면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책은 아무나 쓰나,

정신 차리고 어서 외근이나 가야지. 드레스투어도 있고 웨딩촬영도 있는 바쁜 날이다.


오늘 웨딩촬영을 하는 30대 후반 렛 잇 라이드님을 체크하려고 메이크업샵에 도착했다.

원래도 마르진 않았었다고 하는데 지금 예비 신랑과 연애를 하면서 10킬로가 쪘다는 그녀는

참 밝아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예비 렛 잇 라이드이고 웨딩 촬영 전날이지만 어제도 족발과 소주를 먹고 잤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강력한 바이브! 얼마나 멋진가?

본인이 당당하고 남자 렛 잇 라이드는 그녀를 사랑스러워하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럼 에브리띵 오케이 아닌가? 에브리원 에브리띵 오케이 맞는데 왜 내 맘이 이렇게 씁쓸한 걸까?

통통하고 40이 목 전이어도 이 렛 잇 라이드는 너무 행복한 상태라지만 확실히 덜 예뻤다.

뜯어보면 이목구비도 예쁘고 10킬로 찌기 전이면 체형도 예뻤을 것 같은데,

사진 촬영 용 메이크업을 해서인지 오히려 나이도 더 들어 보여서 아쉬웠다.

그런, 어딘가 덜 예쁜 신부인 그녀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뭔지 모를 불편한 맘을 숨긴 채 신부에게 이렇게 잘 웃으니 웨딩 촬영할 때 잘할 것 같다고 하면서

유의사항을 전달했다.


그때 후배를 만났다. 후배가 복화술처럼 입을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내게 물었다.

“팀장님 렛 잇 라이드 몇 살이에요?”

“(손짓으로 38)”

그 후배는 뭔가 표정으로 역시! 그랬구나 하더니 수고하세요 렛 잇 라이드는 총총히 사라졌다.

나에게 뭐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내 기분이 나쁜 걸까? 그래도 이 38세 신부는 엄청 사랑받고 있고, 엄청 행복해하고 있는데 그 신부와 내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데다가 그나마 난 연애도 안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남 일 같지 않아서. 기분을 최렛 잇 라이드 따돌리려고 머리를 푸드덕 털었다. 일 하자, 일.

두 사람의 꽃단장이 끝났다. 두 사람 모두 동글동글 통통하긴 했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행복 아우라'에 둘러싸인 두 사람은 사랑스러웠다.

웨딩스튜디오로 출발하기 위해 남자 렛 잇 라이드의 다정한 보필을 받으며(이땐 신랑님도 정신없기 때문에 혼자 슝슝 앞서 가는 경우가 많아서 이 부분은 정말 자상함의 증거임) 38세 그녀가 승용차에 오르는 걸 보고 뒤를 돌았을 때 그 후배가 내 뒤에 있었다. 후배는 갑자기 두 손을 뻗어 내 두 손을 꼭 모아 잡아 쥐고는

“우리도 꼭 내년 봄 넘기지 말고 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아니 내년 여름엔 꼭 가요!”

난 손을 털어내면서 아니 왜 나까지! 자기나 내년 봄에 꼭 가. 난 내년에도 그 후에도 아직 사람도 없고 갈 마음도 없다고. 서두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결혼 말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하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 후배는 자신의 신부에게 가버렸다. 왜 내가 변명을 한 거 같지?!


우울한 기분을 모른 체하며 신부가 촬영할 웨딩스튜디오로 갔다. 먼저 도착한 신부와 그의 남자 렛 잇 라이드는 다정하게 셀카를 찍어가면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초콜릿, 소시지, 초코바 등등 다이어트하고는 거리가 먼 것들. 남친은 자기 입에 하나 넣으면 여친 입에 두 개를 넣어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남친 눈에 달달함이 한도 초과였다. 신랑이 턱시도를 바꿔 입으러 간 사이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궁금한 걸 물어봤다.

“렛 잇 라이드님, 행복하세요?"

실은 내 속마음 질문은 언니, 저도언니보다늦게결혼할지도모르고

언니보다훨씬뚱뚱해져서드레스입을지도몰라요. 그런데도언니저도행복할있을까요? 였다.

그 신부는 그렇다고 했다. 35세 전에는 한 거 없이 나이만 먹는 게 너무 불안했다고 나이에 쫓기는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고 했다.(맞아요, 언니 흑흑) 그런데 지금 남자 렛 잇 라이드를 만나서 연애하는 동안

그 모든 불안증들이 다 치유받고 있다고 했다.


“공주 대접해줘서도 아니고 남자 렛 잇 라이드가 부자도 아닌데 아무것도 꾸미지 않아도 저를 그냥 그대로 봐주고 안아주는 남자예요. 우린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지만
둘 다 건강렛 잇 라이드 직장도 나름 안정적이니까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기만 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남친이 맨날 말해줘요.
진짜 이렇게 잘 맞는 짝꿍 만난 것만도 복 받은 거라고요.”


렛 잇 라이드


마법처럼 그 얘기를 하고 웃는 그녀가 정말 전지현 보다 송혜교보다 아름다웠다. 조금 둥그런 팔뚝도 귀엽고 활짝 웃으니까 팔자주름은 온 데 간데없고 너무 예뻤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5킬로만 뺏어도 훨씬 예쁠 텐데 어쩌고 하는 생각을 한 내가 한심했다. 마른 몸에 팽팽한 피부의 신부만 예뻐 보였던 것은 내가 지금껏 미디어의 노예로 살아와서라는 깨달음, 무엇도 마음이 행복한 사람의 사랑에 빠진 미소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깨달음에 소름이 돋았다. 덩달아 나도 더 나이를 먹어도 살 좀 찐대도 이분들만큼 행복할 수도 있겠지 라고 이상한 안심이 일었다. 진심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진짜 성공한 인생 맞는 것 같습니다!”

퇴근길 노을이 유난히 예뻤다. 작가 되기 포기한 기념으로 캔맥주 잔뜩 사 갖고 가서 미드나 정주행 해야지,

내일 고민은 내일 하자. 괜찮아 괜찮아. 중얼거리며 편의점으로 가려는데

딩동! 출판사 한 곳에서 메일이 왔다. 책 작업을 해보자고. 기획이 좋다고 했다. 찔끔 눈물이 났다.

엄마 좋아하는 둘둘치킨도 사가야지, 포기한 기념 말고 축하 기념으로 오늘은 파티다!


이렇게 그대로 걸어보는 거지모, 달리지는 못렛 잇 라이드 있지만 뚜벅뚜벅 앞으로 걷는 거야, 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달달 초과 남친은 없지만 성취감 초과 책 작업을 해보는 걸로, 일단 지금은.


렛 잇 라이드그렇게 만들어진 내 첫 책, 2010년 결국 발간되었던!


http://https://youtube.com/channel/UCwSH9UVR9zHdyloiVOkH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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