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즈음에

2025-06-06T23:30:27Z

토요일 저녁 주말농장 농막의 데크 앞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어스름한 저녁 풍경을 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농막 안에서는 지지직 거리는 낡은 전축에 걸린 LP판에서 ABBA의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의자 옆 탁자에는 싸구려 레드 와인도 한잔 준비되어 있다. 청도천 건너 마을의 불빛은 검은 바탕에 밝은 파스텔톤의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 멀리서

딸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

2025-05-31T12:11:03Z

어제는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첫째 딸에게 처음으로 밥을 얻어먹은 날이었다. 그동안의 어버이날에는 주로 손 편지를 써서 감사함을 전하던 딸이 자신의 능력으로 밥을 사줄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다 컸다는 생각과 이제는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큰 딸과 같이 밥을 먹으며 우리 부부는 딸

슈퍼슬롯 더 이상 예스맨이 아니다

2025-05-01T04:00:48Z

2004년 9월 13일.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날이다. 입사한 지 만 21년이 되었다. 희한하게도 입사 날짜는 잘 잊히질 않는다. 2003년 봄날 나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넘기고 퇴원했다. 두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졌으니 몸과 마음은 약해지고 피폐해져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든 지경이었다.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다

슈퍼슬롯

2025-04-27T06:28:02Z

이른 여름 같은 뙤약볕 온몸으로 받으며 팔순의 노모가 고추 모종을 하신다. 재바른 슈퍼슬롯의 손놀림에 나는 쉬었다 하자며 어린애처럼 투덜투덜 항상 당신 앞에서는 어린애이고 싶어요. "야야, 고랑이 와 안 똑바르노?" 슈퍼슬롯의 핀잔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로터리 시작할 때는 똑바르던 고랑이 서너 고랑 넘어서면서부터는 엄마 등허리처럼 구부러졌다.

슈퍼슬롯 먹는 밥, 그리고 슈퍼슬롯 먹는 술

2025-04-20T11:24:29Z

장모님 살아 계실 때 처가에 가면 항상 시끌벅적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밥상 하나가 부족해 두 개를 펴고 모두들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 건지 떠드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장모님의 구수한 입담과 가족들의 추임새가 맞아떨어져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평일 저녁 퇴근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아내와 밥을 먹는다. 내가 집에

느림의 미학

2025-04-30T14:25:23Z

세상 좋아졌다.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가도 해가 저물지 않는 세상이다. "빨리빨리"를 접두사처럼 외쳐대는 우리네 사람들이 마침내 이룩한 세상이다. 대학을 다니던 40년 전에는 완행열차가 있었다. 부산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구포역에서 야채를 머리에 인 할머니도 태우고 물금에서는 과일 박스를 든 아저씨도 태우

채식주슈퍼슬롯

2025-04-15T19:51:22Z

출근길, 나는 보았네. 화물차에 짐짝처럼 실려 이리저리 부대끼며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그들을 보았네. 어제저녁의 삼겹살, 풀바디의 칠레와인에 안주로 곁들여 먹은 맛있는 제주산 흑돼지가 떠올라 부끄러웠네. 오늘은 채식주슈퍼슬롯가 부러워. 채식주슈퍼슬롯가 되어 볼까나. 아침에 만난 그 녀석들의 순진한 눈매가 자꾸 떠올라 오늘 하루는 채식주슈퍼슬롯로

슈퍼슬롯의 자리

2025-03-24T13:59:44Z

아내가 없는 집은 생기를 잃고 갈길을 잃은 난파선 같이 떠돌고 있었다. 혼자 지낸 시간을 자유로움으로 포장하기에는 내버려진 집구석이 가혹하리만치 방치되었다. 마누라가 설 대목부터 산악사고를 당해 입원하고, 수술하고, 퇴원 후 처가에서 한 달 가까이 장인어른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다 마침내 지난 2월 말쯤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한동안 내가 해주는 밥과

슈퍼슬롯 봄은 치열하다

2025-03-24T11:22:35Z

주말 근무를 마치고 농막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금방이라도 한 줄기 봄비를 내릴 기세다. 더구나 봄날씨 같지 않은 거센 바람과 뚝 떨어진 기온은 문득 '춘래불사춘(春來不似春)'을 읊조리게 한다.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차를 몰다보면 어느새 눈에 익은 팔조령(八助嶺) 터널에 다다른다. 저곳만 넘으면 청도다. 문득 팔조령에 얽힌 에피소드가

슈퍼슬롯의 조건

2025-03-13T18:52:10Z

오늘 문득 '나는 행복한가?'라는 원초적인 자문을 해 보았다. 사전적 의미로 행복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 또는 '사람의 운수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거나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계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먼 친척과 가까운 이웃

2025-04-12T10:53:18Z

40년 전쯤에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많은 가수들이 모여 아프리카를 돕자며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를 목청껏 떼창 한 적이 있었다. 세계는 호응했고 우리는 진심을 담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후 40년이 흘렀고 이스라엘의 전장에서는 무고하고 이유 없이 많은 사람들과 어린이들이 희생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그

슈퍼슬롯가 없는 저녁

2025-04-12T10:54:14Z

마누라 없는 집에서 삼겹살을 굽는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곁들여 와인을 마신다. 벽에 걸린 웨딩사진 속의 마누라가 말한다. "맛있나?" 나는 외면하고 티브이의 뉴스로 고개를 돌린다. 아내가 친정에 간지 열흘째, 적막이 엄습해 오는 빈집에서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저녁을 맞는다. 그리고 자꾸 중얼거린다. "그래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비싼 돈 주고

장자의 나비 꿈을 읽다 슈퍼슬롯를 떠올리다

2025-02-20T05:23:02Z

지난 주말 정형외과를 퇴원한 아내는 처가에 가서 요양 중이다. 쇄골 수술을 한 탓에 오른쪽 팔을 쓰지 못해 팔을 쓰는 일에 불편함이 많다. 낮시간에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장인어른 혼자계시는 친정으로 간 것이었다. '독수공방' 보다는 '독거노인'이 어울리는 나의 일상이 어느덧 일주일째를 맞았다. 일요일 아침도 여느 날

슈퍼슬롯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2025-02-08T12:45:49Z

한때는 농부의 이야기를 썼었다. 브런치에 입문하고 한동안 주말농장에서의 일상을 적었다. 농막에서의 사계(四季)와 농사의 재미와 식물과 과실의 변화를 시시때때로 글로 남겼다. 해가 두 번 바뀔 때쯤 농사이야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일상을 글로 옮기는 나를 발견했다. 작년 연말부터 나라가 어수선해지고 이념과 사상의 혼돈 속에서 세상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분노와

질긴 악연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2025-02-10T02:25:54Z

내일이 설날인데 나는 오늘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들어간 지 두 시간이 지났지만 수술실 문 앞에 아내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마침대 세 시간이 지나서야 아내는 초주검이 되어 수술실에서 나왔다. 백두대간 종주길에 다친 아내의 상태가 예상보다 많이 심했다. 머리만 찢어진 걸로 알았는데 이튿날 외래를 찾았을 때 담당 의사는 2번 가슴뼈 골절과

취미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않은가!

2025-02-10T02:25:53Z

모처럼 맞은 설명절 연휴라 청도 주말농장에서 하루종일 밀린 밭일을 했다. 과일나무의 가지치기와 거름 주기를 이틀에 걸쳐 마무리 지었다. 자두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호두나무, 그리고 감나무까지. 해마다 우리 가족에게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소중한 과일창고이다. 녹초가 된 고단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슈퍼슬롯된다는 것

2025-02-10T02:25:53Z

금요일 저녁이면 나만의 공간을 찾아 차를 몰았다. 대구를 벗어나 40분쯤 숨 가쁘게 달리면 나의 서재 낙만정(樂滿亭)에 이른다.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 장인은 나의 농막을 이렇게 이름 지어 주었다. 내가 숨어들기에는 적당한 공간, 6평의 농막이 나의 서재이자 놀이터 낙만정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주말이면 나는 2박 3일 동안 이곳에 틀어 박혀 주야장

내가 사랑한 영화 &슈퍼슬롯;클래식&슈퍼슬롯; - -스포주의-

2025-01-23T00:53:27Z

나는 아내와 딸들이 이미 본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걸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두 번 보는 일이 절대 없었다. 그걸 무슨 철칙이라도 되는 양 나의 의지로 철석같이 지켜왔다. 오늘 저녁 나는 수십 년간 고집해 온 나의 영화 취향을 갈아엎었다. 한국 로맨스 영화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손예진, 조승우 주연의 영화, 클

프랑스로 떠슈퍼슬롯 딸에게

2025-03-07T11:25:59Z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딸이었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엄마, 아빠는 너의 환한 미소와 재롱을 보며 삶의 고단함을 잊고 살았다. 넌 어느새 아빠만큼 훌쩍 자라 여섯 달 동안 프랑스 리옹으로 어학연수를 간다 했다. 지난 주말에는 너의 자취방을 찾았다. 한방 가득한 이삿짐을 차곡차곡 차에 싣고 내려오면서 아빠는 졸린 눈을 부릅떠야 했단다. 겁

SNS의 명과 암

2025-01-13T08:03:03Z

한때 카카오가 잘 나가던 시절 덩달아 카카오 톡과 함께 카카오 시리즈도 그 전성기를 누렸다. 시간이 흘러 카카오 주식이 내리막길을 걸을 무렵 나는 카카오 스토리를 접었다. 내가 카카오 스토리를 그만둔 것은 그 앱의 고단함 때문이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매일매일 하는 일, 먹는 것, 놀러 간 것, 여행한 곳을 사진과 함께 적어 올리고 상대방의

석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