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송이

삶은 소풍처럼, 브런치는 슈퍼스타처럼 - 소위 작가님, 화양연화 작가님, 류귀복 작가님, 미친 PD작가님,

포도송이 — Thu, 29 May 2025 12:48:52 GMT

작년 이맘때였을 겁니다. 6월 3일에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는 시작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고 혹시라도 걸려들까 싶어 인터넷 기사들을 서치 하다가 아주 재밌는 기사를 낚았습니다. 아프리카코끼리가 사람처럼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고 상대를 부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돌고래나 앵무새가 소리를 모방한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오십에 읽는 삼중당 문고<노인과 바다>

포도송이 — Tue, 27 May 2025 03:24:23 GMT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어린 시절, 양파 같은 책이었다.맛이 없었다. 생으로 먹는 건 맵고, 익으면 뭉글했다. 14살 때였다. 자칭 조숙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 나 정도면 노벨문학상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 떡볶이값을 아껴 삼중당문고 <노인과 바다>를 샀다. 하지만, 읽어도 읽어도 망망대해. 몇 페이지 읽다

3주치 집세는 메조(鳥)소프라노 노래로 대신합니다 - 마음속 AI가 번역한 어미새의 편지

포도송이 — Tue, 20 May 2025 21:40:00 GMT

아래는 마음속 AI가 번역한 어미새의 편지입니다 내 새끼는 걱정 말아요 우리 이사했어요.폭우 쏟아지던 다음 날이었죠. 며칠 더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들락날락하는 당신도 신경 쓰였고요.응큼한 들고양이의 곁눈질도, 은근히 거슬렸어요. 그래도 다행이에요.내 새끼들, 잘 날아요.먹이도 잘 잡아요. 잘한다, 잘한다칭찬만 해주면뭐든 척척 해내는 아이들

당신의 우울이 글이 됩니다 - 브런치 작가 18인이 전하는 우울의 연대, 『Gloomy relay』

포도송이 — Sun, 18 May 2025 12:59:17 GMT

대출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한때는 '대출대 위에 놓인 책', 누구나 빌려가고 싶은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게도 문청(문학청년) 시절이 있었다. 시도 쓰고, 소설 몇 편도 끄적이던 그런 시절이. 그때 내가 좋아하던 작가는 양귀자였다.몇 년 전, 느닷없이 『모순』 열풍이 불었다.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도서관 인기도서 1위는

새의 선물, 기왕이면 로또 코인도 좋고!

포도송이 — Tue, 13 May 2025 11:37:42 GMT

'쭈쭈쭈~ 쪼쪼쪼~' 아니지, 아니지. 모성애를 좀 더 담아야지. '쭈쭈 쪼조 츄츄츄~' 아니지, 아니지. 이 에미가 먹이를 물고 왔다 말하듯이, 자랑스럽게. 그리고 약간 흥분되게. 목구멍을 확 열고, 혓바닥을 굴리고, 앞니와 혀, 혀와 입술을 강하게 밀쳐내는 거야. 나는 지금 새소리 성대모사 중이다. 며칠 전, 우리 집 한 귀퉁이에서 아기새가 태어났다.

중년 부부의 '잘 말리는' 밤입니다 - 드라이플라워처럼 늙어가는 중입니다

포도송이 — Tue, 06 May 2025 21:35:19 GMT

야심한 밤이었다. 그날도 남편은 샤워를 했다. 이상한 생각은 마시라. 남편은 월 결제한 골프연습장 회원권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곧장 샤워를 한다. 자고 일어나서도 샤워를 한다. 우리 집에서 하루에 두 번 샤워하는 사람은 남편이 유일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물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샤워를 마친 남편이 좀

왕자님과 결혼한 줄 알았지 - 지금은 노안, 그때는 노빠꾸였다

포도송이 — Tue, 29 Apr 2025 07:11:05 GMT

지난 금요일, 남편의 고종사촌 형이 큰딸을 시집보냈다. 결혼식이 귀해서였을까. 마치 이웃나라 공주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결혼식장은 중림동 약현 성당. 성당 결혼식이라 하니, 다들 한 마디씩 덧붙였다. “엄청 길 걸?” “앉았다 일어났다 많이 해야 해.” “그래도 성스럽잖아.” 고전적이고 지루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벌써

소공녀 세라가 되고 싶었던 마음

포도송이 — Tue, 22 Apr 2025 15:03:19 GMT

-엄마, 내 친구 소운이는 자기가 재벌의 숨겨진 딸이었으면 좋겠대. -너도? -나는 우리 동네가 신도시로 개발돼서 보상이나 왕창 받았으면 좋겠어 한 달 전 딸과 나눈 대화다. 오래간만에 나는 딸의 말에 미투 했다. 챗지피티 시대라도 부자를 꿈꾸는 방법은 여전히 진부했다. 알고 보니 내가 재벌의 숨겨진 딸, 우리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었다는 시나리오. 돈이냐

소풍 생각 - 어린이의 소풍과 어른의 소풍 사이

포도송이 — Wed, 16 Apr 2025 01:14:24 GMT

# 김밥 소풍 하면 김밥. 그 어떤 산해진미도 대체할 수 없는 소풍의 소울푸드는 단연코 김밥이다. 엄마는 소풍 때면 김밥 30줄을 돌돌 말았다. 노총각 막내 삼촌까지 10 식구가 살았으니, 김밥 30줄도 인당 3줄씩 먹으면 많은 양도 아니었다. 소풍 가는 날은 저절로 눈이 떠졌다. 부엌은 이미 밝았다. 엄마의 김밥산은 정상고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김밥용

'해물맛 과자 미식회'가 브런치에 떴다

포도송이 — Tue, 08 Apr 2025 11:18:43 GMT

새우깡으로 새우 맛을 알았다 꽃게랑으로 꽃게 맛을 알았다 자갈치로 문어 맛을 알았다 오징어 땅콩으로 오징어 맛을 알았다. 오늘 오린이의 동심세계는 '해물맛 과자 미식회'다. 어릴 때 해물 맛을 모르고 자랐다. 오징어도, 문어도, 꽃게도 먹어보지 못했다. 슬프지 않았다.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는 새우깡이 있었고, 꽃게랑이 있었고, 자갈치가

짬뽕이 먹고 싶다고 울면 안 되지 -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짬뽕이 나를 울렸다.

포도송이 — Sun, 06 Apr 2025 08:29:10 GMT

며칠 전 새벽, 꿈의 끝자락에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카메오, 깜짝 출연, 내 꿈이 영화였다면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는 특별출연 이준석이라는 자막이 장식했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이준석이다. 할아버지가 꿈에 나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은 현실의 예고편 같았다. 아주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기거나 했다. 좋은 것

힙한 오십인가, 힘 빠진 오십인가 - MZ 핫플 입성. 트민녀(트렌드에 민간한 여자) 되어보기

포도송이 — Tue, 01 Apr 2025 01:55:54 GMT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인다. 가을이 되면 서쪽 연못에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겨울이 되어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인다. 세모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인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 마시며

열심히 했는데도 내 딸 생기부가 별로라니.

포도송이 — Mon, 24 Mar 2025 11:25:01 GMT

2주 전, 남편의 직장 상사로부터 카톡 선물이 왔다. 아들이 올해 치기공 관련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했는데, 첫 월급을 받았다고 했다. 아들이 첫 월급을 탔다고 나에게 왜 선물을 보내왔을까? 6년 전의 일이다. 내가 나름 유명 입시 회사에 다니는 것을 알고 있던 남편의 상사가 수능 성적표를 가지고 찾아왔다. 평소에 보여왔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아

새치 뽑아주던 그때가 좋았던 줄도 모르고

포도송이 — Tue, 18 Mar 2025 21:49:33 GMT

새벽, 모락거리는 안개 사이로 막 쪄낸 떡시루 같은 겨울 산 눈 쌓인 산피는 휑한 엄마의 두피만 닮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머리도 그 겨울 산을 닮아간다. 잔털 같은 빈 나뭇가지 힘없이 툭 끊긴다. <오린이의 디카시> '머리가 허옇게 세었네.' 돌아가신 할머니가 거울을 볼 때면 가끔 하시던 말

소설가이십니까? 저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우리들의 아우라에 대하여

포도송이 — Mon, 17 Mar 2025 03:38:20 GMT

감기 바이러스가 겨울의 위세와 함께 한창 으스대던 때였다. 도서관에 자주 오시는 이용자 한 분이 데스크에 왔다. 일주일 전만 해도 잔뜩 감기에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출해 달라고 하시는데 비교적 목소리가 가벼웠다. 순간, 나의 스몰토크 본능이 튀어나왔다. "감기가 좋아지셨나 보네요" "어머 저 감기 걸린 거 어떻게 아셨어요?" "지난번에 목소리가

그때도 공강 시간엔 노래방에 갔었지

포도송이 — Tue, 11 Mar 2025 21:10:53 GMT

그날도 우리는 노래방에 갔었다. 공갈빵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공강 시간, 눈이 부신 대낮이었다. 그 시절. 미팅, 소개팅, 동문회 할 것 없이 온갖 모임의 종착지는 노래방이었다. 바야흐로 노래방의 전성시대. 당시 나에게는 노는 쿵작이 잘 맞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우리를 국문과의 바니걸스라 불렀다. 공강 시간에는 노래방이지! 당연하지. 다음 미팅에 나

개학에 밀리고, 삼겹살에 밀리고, 삶에 밀리고

포도송이 — Wed, 05 Mar 2025 02:27:11 GMT

삼, 숫자 3은 내 인생의 숫자다. 초등학교 3회 졸업, 중학교 3회 졸업, 3남매. 시누이도 3명, 사실 억지로 끼워 넣자면 3자와 연관된 특별한 고리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예를 들면, 대학도 3번 떨어져 봤다. 전기, 후기, 재수해서 전기까지 또 떨어졌으니 말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생일. 3월 3일이 내 생일이다. 태어난 시까지 3시 33분이었으

골든구스가 내게 준 낡음의 가치

포도송이 — Mon, 03 Mar 2025 07:59:52 GMT

아침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는데 낯선 신발 하나가 보였다. 낡고 오래된 운동화다. 일 년은 빨지 않은 게 분명하다. 꼬질꼬질한 회색빛 운동화 끈. 전체적으로 그냥 더럽다. 마치 겨울 내내 세차 한 번을 안 한 내 차처럼 더럽다. 앗, 저건 벗겨진 건가? 마모된 흔적까지 보인다. 딱 봐도 누가 버리기 직전인 신발을 얻어왔거나, 바꿔치기당한 것 같다. 그럴

귓구멍 탐험기

포도송이 — Tue, 25 Feb 2025 12:11:57 GMT

가늘고 긴 은빛 막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빛이 있는 쪽으로 몸을 트는 거야 입구부터 조심조심 말랑말랑한 벽을 타고 가루를 모아 어둠을 뚫자 황금빛 귀지를 캐자 <오린이의 디카시> 엄마 무릎에 누워 귀지를 파내던 시간은 가장 평화롭던 시간이었다.

어둠과 빛으로 쓰는 그림자 편지

포도송이 — Tue, 18 Feb 2025 15:03:46 GMT

새나라의 어린이 시절, 잠자리 통금시간은 9시. 엄마는 말했다. "너는 자는 모습이 가장 예뻐"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나는 가장 예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에 맺히는 우주 같은 섬광들, 섬광들이 이끄는 잠의 세계로 그대로 빠지면 좋으련만 유난히 말똥말똥한 밤들이 있었다. 에잇, 그냥 눈을 뜨자 싶어 눈을 떠보면 아직 잠들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