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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숙 Mar 06. 2025

프리미어카지노 동백꽃, 겨우내 피고 지다
(1편)

프리미어카지노 유치환/행복



프리미어카지노은 봄에 핀다


겨울은 단연 프리미어카지노의 계절이다,라고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프리미어카지노은 겨우내 피고 지고 하지만 가장 핫한 프리미어카지노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여기서 제주도는 예외다.


남해안에 자생하는 프리미어카지노은 대략 11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2~3월에 만발한다.


동백섬으로 알려진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프리미어카지노를 찾은 날은 2월 27일, 그러나 프리미어카지노의 동백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이미 피었다 진 꽃들도 있었고 활짝 핀 동백꽃을 보기도 했지만, 동백꽃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3월 중순, 특히 올해는 겨울이 추워서 3월 말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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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카지노 동백꽃


그러니 무조건 남쪽으로 가면 섬 전체가 프리미어카지노으로 뒤덮인 멋진 장면을 보리라 들떴던 내 생각은 틀렸다.


서울에서 거제도 근포항까지는 약 430km, 왕복 860km로 2,000리가 넘는 길이다.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가는 데만 5~6시간이 걸린다.


기차를 타도 바로 가는 건 없고 부산역에 내려서 시외버스나 전철을 이용해 거제도까지 다시 1시간을 가야 한다. 그리고 배를 타고 들어가 섬을 둘러보고 돌아오려면 하루 코스로는 아무래도 무리다.


고민이 되었다. 하루에 다녀오고 싶은데, 그렇다고 운전해서 가자니 교대로 하면 모를까 혼자는 자신이 없었다. 정 안되면 1박을 해야 하나?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눈에 띈 반가운 광고를 만났다.


바로 당일치기 관광버스였다. 동백여행사에서 리무진 버스로 서울역에서 아침 7에 출발해 저녁 10시에 도착하는 코스가 있었다. 가격은 왕복 교통비에 뱃삯, 프리미어카지노 입장료를 포함해 1인 87,000원, 3월 성수기에는 7,000원 정도가 더해진다.


프리미어카지노여행사 리무진 버스


바로 이거지, 망설이지 않고 예약을 눌렀다. 딸에게 같이 가자고 꼬셨더니 너무 멀어서 싫단다.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표는 내가 끊어줄게, 같이 가자. 지금 프리미어카지노에 가면 매우 만발한 동백꽃을 볼 수 있다는 내 말에 덥석 미끼를 문 친구, 관절이 좋지 않은데 고생을 많이 시켜 정말 미안했다.



오르락 내리락 계단이 무척 많았다.


떠나기 전날 예약 확인 문자가 왔다. 평일이라 취소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대충 세수만 하고 미리 챙겨두었던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중간에 친구와 전철에서 만나 서울역 2번 출구를 향해 걸었다.


버스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리무진 버스라 좌석이 넓었다.


잠시 후 기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일행이 모두 19명이라 인원이 적은 탓에 오늘 가이드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프리미어카지노는 이정표와 바닥의 화살표만 잘 따라다니면 어려운 것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어제 지심도를 다녀온 가이드에게 들었는데 아직 동백이 거의 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실망이 컸답니다. 오늘 우리가 갈 프리미어카지노도 지심도와 거의 비슷해서 아마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엥? 프리미어카지노이 거의 없다고? 이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얼마나 벼르고 벼르다 출발한 여행인데 프리미어카지노이 없다니……. 심히 실망스러웠다. 괜한 거짓말로 친구까지 대동했으니 나는 완전 죄인이 되었다.


차창밖의 정겨운 농촌 풍경


원래 내가 가고 싶었던 섬은 지심도였다. 지심도와 장사도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동백꽃은 똑같이 아름답게 피는데 지심도는 섬 자체가 자연에 가깝고 장사도는 많이 다듬고 이곳저곳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인공의 맛이 나는 섬이라고 했다.


지심도는 평일에떠나는 날짜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 프리미어카지노였다. 그런데 동백이 없단다.


승선권 작성하는 곳


포구 모습


버스는 6시간을 달려 겨우 근포항에 닿았다. 기사는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30분 시간을 주고 점심을 간단히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1시 배를 타야 하는데 도착하면 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사도 섬 안에 식당과 카페가 있으니 거기서 밥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장사도를 둘러볼 시간은 두 시간뿐이라고 들었다. 타고 온 배를 다시 타고 나와야 하는데 두 시간 만에 섬을 둘러보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섬을 대충 둘러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거야 원, 시작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여행이다.


우리가 타고 갈 배


근포항에 내려서 배를 타기 위해 명단을 적었다. 꽤 큰 배였는데 일행은 우리 19명이 다였다.


원래 장사도는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한 섬이다. 통영에서 장사도를 가려면 21.5㎞, 배로 약 40분을 가야 한다.


거제도 근포항에서는 약 3㎞, 15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프리미어카지노는 통영시에 속할 것이 아니라 거제도에 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배를 따라 다니는 갈매기


배에 오르자 사람들은 대부분 좌석에 앉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몰려와 유람선을 따라왔다.


새우깡을 던져주는 부부가 있었는데 갈매기가 떼로 몰려왔다. 원래 새우를 먹어야 하는 갈매기가 새우깡을 먹어도 괜찮은 걸까? 자연에 역행하는 갈매기의 건강이 염려스러웠다.


배 안 모습


뱃살을 가르며 배는 시원하게 달렸다. 갈라지는 물살이 경이로웠다. 비로소 섬으로 들어간다는 실감이 났다. 새우깡 봉지가 텅 빌 즈음 배가 프리미어카지노 선착장에 도착했다.


멀리 ‘카멜리아’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첫 느낌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외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미어카지노 까멜리아 공원


프리미어카지노의 자연과 역사


장사도(長蛇島)는 긴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늬비섬’ 혹은 ‘잠사도’라고 불렸는데 ‘늬비’는 누에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일제강점기까지 ‘늬비섬(누에섬)’이라 불렸으나, ‘누에잠(蠶)’ 자가 어려워 한 공무원이 ‘길 장(長)’ 자로 바꿔 쓴 탓에 현재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누에가 졸지에 뱀이 되어버렸다.


장사도는 총면적 390,131㎡, 해발 108m, 폭 400m, 길이 1,9km의 작은 섬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1,000여 종의 식물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품고 있다. 특히 프리미어카지노의 상징인 동백나무는 10만 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로 많은 나무는 후박나무이며 구실잣밤나무, 천연기념물인 팔색조, 동박새, 풍란과 석란이 서식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기다란 프리미어카지노


한때는 14가구 83명의 주민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되었다. 현재 장사도의 주인은 개인이다.


원래 거제도에는 옛날부터 동백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거제도로 유배 온 선비들이 프리미어카지노이 뚝뚝 떨어지는 낙화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목이 잘리는 것 같은 느낌에 보이는 대로 베어 없앴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땅에 떨어진 프리미어카지노


프리미어카지노 선착장에서 내려서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경사진 언덕으로 되어있다. 어쨌든 해발 108m는 올라가야 한다. 이제부터 미션 시작이다. 안내 팸플릿에는 입구 선착장에서 출구 선착장까지 약 2.5km(2시간 소요)라고 적혀 있다.


섬 전체 탐방 안내도


아까 버스 기사는 장사도에서 밥을 먹으라고 했는데, 섬을 둘러보는 데 2시간 소요라면 밥은 언제 먹으라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2시간 안에 이 섬을 다 돌고 선착장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타고 온 배를 다시 타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카멜리아’ 간판, 사진을 몇 장 찍고 서둘러 언덕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반갑게도 프리미어카지노이 피어 있었다.입구 쪽에는 햇볕이 잘 드는지 이미 피었다 진 프리미어카지노도 있었고 제법 군락을 이룬 프리미어카지노도 보였다. 프리미어카지노이 없다는 말에 실망하고 있던 터라 이 정도만 보아도 브라보였다.



입구쪽에서 본 활짝핀 프리미어카지노




프리미어카지노에서 본 동백꽃 군락


이곳에 핀 동백은 대부분 애기동백이다. 장사도의 동백나무는 키가 그리 크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다. 섬에서 사는 사람이 땔감으로 베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바닷바람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낮아진 탓도 있는 것 같다.


프리미어카지노이 핀 게 너무 기뻐서 계속 사진을 찍으며 올라가다 보니 그리 힘들지 않았다. 언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첫 번째 전망대가 보였다.


섬 전경


정면에는 이곳에서 촬영한 <별에서 온 그대와 <함부로 애틋하게 광고판이 있었다. 김수현, 전지현이 연기한 <별에서 온 그대는 재미있게 본 드라마이고 <함부로 애틋하게는 내가 모르는 드라마다.


프리미어카지노에서 촬영한 연속극


오른쪽으로 탁 트인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인이 누워 있는 조형물은 제목이 ‘바다, 섬, 여인’이다.


여인 조각상


어디서든 오래 머물 시간은 없었다. 쉬더라도 다 돌아본 뒤에 쉬어야 했다.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 건물과 분재 정원으로 변한 운동장


예전에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었을 프리미어카지노 분교는 폐교된 지 오래였다. 운동장은 여러 가지 분재로 가득 채워져 있고 교실이 있었을 건물은 굳게 닫혀있다.


다만 학교 종과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 한쪽에 말뚝박기 조형물이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해보았던 놀이라 더 정감이 갔다.


말뚝박기 놀이 조형물과 학교 이름


학교 바로 옆에는 무지개다리가 있어서 바다를 건너갈 수 있게 되어있다.



무지개다리


그다음 코스는 섬아기집. 이 집은 과거 주민들이 실제 살았던 공간이라고 한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실제 섬사람들이 살았던 집


부엌과 모자 동상



언제 들어도 구슬픈 섬집아기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곳곳에 독특한 조형물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온실 속 선인장


다양한 선인장들이 가득한 온실 지붕 위에는 펭귄 세 마리가 관광객을 맞았다.



온실 위에 있는 펭귄


그리고 장사도의 하이라이트인 야외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위쪽에는 12개의 얼굴 조형물이 있었다. 이곳은 마치 그리스 야외공연장을 연상시키는 원형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객석은 바다를 바라보고 앉게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공연을 본다면 무엇을 보든 감상이 배가 될 것 같다.


밑에서 올려다본 객석, 위에 12개의 얼굴 조형물이 있다.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


위에서 찍은 사진


남해의 상징인 다랑이논처럼 생긴 계단을 올라갔다. 프리미어카지노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사방으로 바다가 보였다. 야자나무가 곳곳에 있는 이곳은 풍경이 외국 같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반가운 시비를 만났다.


바로 프리미어카지노 유치환의 ‘행복’ 시비였다. 뒤쪽에는 그의 연인이었던 시조 시인 이영도의 ‘황혼에 서서’가 새겨져 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세워진 프리미어카지노 시비


내가 좋아하는 프리미어카지노의 시는 ‘깃발’이다.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과 이영도의 시가 앞뒤로 있는 시비를 보고 있자니 두 사람의 절절했던 러브스토리가 떠올랐다.



프리미어카지노(靑馬) 유치환의 생애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경상남도 진남군 서면에서 한의사였던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 사이에서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치환 시인의 본관은 진주. 호는 프리미어카지노(靑馬)이며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이다.


열한 살 무렵까지 외가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형 유치진과 함께 일본 도요야마중학교[豊山中學校]에 입학했다.


부친의 사업이 기울자 귀국해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였고 1928년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했다.


1929년, 유치환은 어릴 때부터 같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만나 오빠, 누이로 지내던 권재순과 결혼했다. 이들은 당시로는 보기 드문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슬하에 3녀를 두었다.


프리미어카지노 유치환


유치환은 정지용(鄭芝溶) 시에 감동하여, 유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掃除夫)를 만들어 시를 발표했다.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치환은 발행, 편집인으로 부산 초량에서 동인지 <생리(生理)를 창간하였으며 1939년 첫 번째 시집인 <프리미어카지노시초(靑馬詩抄)를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초기 작품인 ‘깃발’, ‘그리움’ ‘일월’ 등 55편의 시가 실렸다.


유치환 시인이 생전에 발행한 책은 모두 14종이다.


<프리미어카지노시초 책


1940년 교사를 사임하고 만주로 피신했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다시 교육계에 투신, 충무, 부산, 경주 등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여러 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그는 6.25 전쟁 중에도 틈틈이 시를 쓰고 시집을 발표했다.


1946년에는 창립 조선청년문학가 회장, 1957년 초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그의 시 ‘깃발’은 교과서에 실렸고 대표적으로 '생명의 서', '행복' 등의 유명한 시를 남겼다.


유치환과 이영도의 러브스토리


1947년, 서른여덟 살의 유치환은 통영여중 국어 선생으로 재직 중에 가정 선생으로 부임한 이영도를 처음 만났다. 당시 스물아홉의 이영도는 어린 딸을 홀로 키우던 과부였고, 유치환은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유치환 시인이 극작가로 유명한 유치진의 동생이듯 이영도는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누이동생이다.


당시 통영여중에는 유치환, 이영도 외에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초정 김상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라성 같은 문학, 예술가들이 함께 근무했다.


시조 시인으로 평생 한복만 입었던 이영도는 청초한 아름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성이었다. 머리는 늘 프리미어카지노기름을 발라 뒤로 땋아서 말아 올려 조선 여인의 전통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영도 시조시인


이영도는 스물한 살 때 결혼하여 대구에 살았으나 남편이 폐결핵을 앓자 약국을 경영하던 언니가 살고 있는 통영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남편은 딸과 이영도를 남겨둔 채 곧 세상을 떠났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영도는 남편이 죽은 이듬해인 1946년 10월 통영여자중학교 가정교사로 부임했다.


유치환은 이영도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 혼자만의 짝사랑을 시작했다.그는 이룰 수 없는 짝사랑에 대한 고통, 회환, 설렘, 기쁨 등 구구절절한 연애편지를 써서 20년 동안 5,000여 통의 편지를 이영도에게 보냈다.


훗날 이영도는 ‘정운(丁芸)’이란 호를 사용했는데 프리미어카지노는 편지와 시 속에서 그녀를 늘 ‘정향’이라 불렀다.


정향은 프랑스어로는 리라꽃, 영어로는 라일락꽃, 순수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라 부른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이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릿길입니까? 끝내 만릿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죗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1952년 6월 29일 편지에서 발췌)


이영도는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유치환을 밀어냈지만, 자신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표현하는 유치환의 사랑을 끝내거부하지 못했다.


그리움 2/ 유치환


피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3년이 지난 후 이영도는 드디어 마음의 문을 살짝 열었고 두 사람의 열애는 거리와 시간을 초월해서 시작되었다.


프리미어카지노가 보낸 편지들


1954년 이영도는 부산에 있는 남성여자 중·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그녀는 학교 정문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숙소로 썼다.


당시 프리미어카지노는 경남 함양군 안의중학교 교장이었다.


프리미어카지노는 토요일이면 새벽 6시에 부산행 버스를 타고 열두 시간을 달려 부산으로 향했다.


지금 함양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리는데 당시에는 도로가 좋지 않아서 많은 시간이 걸렸나 보다, 그래도 12시간이 걸렸다는 말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아무튼 두 사람은 남성여고 정문에 있는 식당에서 만났다.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세 시간이었다.


프리미어카지노는 딸의 집에 머물다가 다음 날 새벽 첫차를 타고 다시 열두 시간을 버스에 시달리며 함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이렇게 3년여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만났다. 고작 세 시간의 만남을 위해 육백 리 길을 왕래한 것이다.


<생명의 서 책


프리미어카지노는 학교로 돌아가 이영도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의 ‘행복’이란 시는 이영도를 향한 절절한 마음에서 탄생한 것이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들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 곁에 시달리고 나부끼며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책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꾼이었던 프리미어카지노는 40대부터 유명을 달리한 60세까지 한 여인을 기리며 무려 5,000통의 연서를 남겼다. 그것도 6.25 한국전쟁 때 소실된 편지를 뺀 숫자다.


프리미어카지노의 시에 드디어 이영도도 화답했다.


무제 1/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두 사람은 일주일 동안 서로를 향해 일기를 써서 나눠보았다. 아마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가능했던 그리움이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프리미어카지노가 이혼하고 이영도와 재혼했다면 이렇게 구구절절 애타는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67년 2월 13일,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던 프리미어카지노는 부산시 동구 수정동 봉생병원 앞 대로에서 시내버스에 치였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숨졌다.


김수영시인도 귀갓길에 버스에 치여 숨졌는데 유명한 두 시인이 같은 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한 것이 놀랍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만큼이나 이별의 순간도 안타까웠다. 원래 그날은 두 사람이 만나기로약속한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술문화단체 총 연합회 인사들과의 술자리가 생겼다.


술자리에서도 고혈압 때문에 사이다만 마셨던 프리미어카지노는 이영도를 못 만나게 되자 ‘어떡하지’, ‘어떡하지’하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부산 수정동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버스에 치여 숨졌다. 그렇게 프리미어카지노의 편지는 다시 부칠 수 없게 되었다.


()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哀慕)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프리미어카지노가 죽은 지 2개월 후 이영도는 수천 통의 편지 중에 선별한 연서로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서간집을 묶어 책으로 냈다.


1968년 간행된 이 책은 당시 비소설 부문에서 2만 5,000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영도가 프리미어카지노의 편지를 묶어낸 책


한때 발신인이 저자냐, 수신인이 저자냐 하는 유족과의 판권 다툼이 있었으나 책의 수익금은 이영도에게 돌아갔다.


이영도는 인세를 모두 <현대시학사로 넘겨 시문학상 기금으로 쓰이게 했다.


이후 이영도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왔다. 그녀는 수필집 <외따로 열고 등을 발표하고 중앙대학교에 출강하며 시조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6(59세)년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뇌일혈로 별세했으며, 사후 유작집으로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언약이 간행됐다.


두 사람의 사랑이 참 애달프고 순수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여자 편에서 보면 사랑을 원 없이 받았던 이영도 보다 반만이라도 갖겠다며 남편을 보듬었던 프리미어카지노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으면 그런 처지를 견딜 수 있었을까? 사랑의 위대함도 한 사람의 마음을 밟고 얻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위대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프리미어카지노는 권재순 여사와 결혼할 때도 오랫동안 연서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프리미어카지노가 돈을 벌지 못했을 때유치원 보모 생활을 하며 가계를 도왔고 만주에서도 함께 고생했다.


남편을 다독여 통영으로 귀환케 하는 등 조강지처로서 최선을 다했는데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는 빈 껍데기 남편과 살았으니 그 속이 아마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프리미어카지노에게는 아내와 이영도 외에 또 다른 두 여인이 있었다.


그중 한 여인의 이름은 이란인데 그녀는 1940년 그가 만주로 떠나 농장 관리를 하던 시절, 그곳에서 사망했다.


또 한 여인은 반희정이다. 그녀와는 1958년 문학 모임에서 만난 후 1963년까지 5년 동안 서로 편지를 교환했다고 한다.


때로 예술가의 여성 편력은 작품에 도움이 된다는 명목으로 면죄부가 주어지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프리미어카지노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


프리미어카지노는 거제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란 것으로 되어있다. 거제시와 통영시는 프리미어카지노의 출생지 인정 여부를 놓고 법정 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거제시에는 프리미어카지노기념관과 프리미어카지노거리가 있고 통영시에는 프리미어카지노문학관이 있다. 또 부산에서도 활동했기에 부산광역시 동구에는 '유치환 우체통'이라고 불리는 문화공간이 있다.


친형 유치진은 생전 방송에 출연해 동생 유치환이 통영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다녔다고 밝혔다. 결국 2004년, 대법원에서 유치환의 출생지가 거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묘소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에덴공원에 있었는데 그곳에도 프리미어카지노 시비가 세워졌다.


현재는 유 씨 집성촌이 있는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로 이장하였다. 이곳은 단독 묘역이 아니라 유 씨 공동묘지라 잘 공개되지 않는다. 프리미어카지노의 묘소 근처에는 모친의 묘소가 있고 그가 어머니를 위해 쓴 사모비도 있다고 한다.


프리미어카지노 역시 친일파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1942년 2월 6일, 만선일보에 기고한 친일성 산문을 2007년 10월 19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가 발견하여 기존의 애국 시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아래의 글은 심도 높은 글을 쓰시는 소오생 작가님의 프리미어카지노 유치환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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