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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an 26. 2025

믿고 싶은, 따뜻하이원슬롯 싶은, 사랑하이원슬롯 싶은

상담일기-11회차

이번 상담 시간에는많은 주제의 이야기를 훑어가듯이 조금씩 나누었다. 여전히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다양한 변주를 통해 가끔 정수에반짝 접속하고 있다. 그런 방식도나름 마음에 든다. 상담이 끝나고 보면 그 모든 게 같은 이야기였다는 걸 깨닫는 날도 있다.


오늘도 일단 기억나는 대로 메모해 둔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나를 지키려는 하이원슬롯]


Q. 요즘 회사 생활은 어때요?


A. 최근에는 야근의 압박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면담을 통해제 생각을 전달했어요. 영상이라는 게 한 시간에 한 개씩 딱딱 생산할 수 있는 공산품도 아니고, 야근이라는 페널티를 강제한다면 저는 목표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요. 작업의 완성도보다는 어떻게든 퇴근 시간만 맞추려고 할 테고, 주변에 뭐든 하나라도 덜 도와주려 할 테죠. 게다가 저는 포괄임금제에 묶인 비정규직인데, 그나마 주 52시간이니 하는 데라도 맞춰서 야근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Q. '나'어떻게든참지 않고 말하는 것을 선택하네요? 이런것을 우리는 '용기 있다'로 말해요. 얼마나 고민했든 어떻게 전달했든 결국 나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 있어요.


A. 아니에요, 사실 저는 너무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사회초년생이던 20대 때는 이것보다 더한 것도 끝까지 말 못하곤 했어요. 저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까지 가서야, 웅얼거리면서 겨우 말하는 하이원슬롯이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상황에닥치면 무지 횡설수설해요.저는 용기가 너무 없었던 바람에 용기를 낼 수밖에 없게 된 거예요.게다가저는 마음에 한번 걸린것을 온종일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한 상황을 누구보다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된 건지도 몰라요. 용기 때문이 아니라요.


Q. 물론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일 수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타고난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요. 과정이야 어쨌든 세라 씨는 '참지 않는 것'을 선택했잖아요. 전세 사기 이야기 때도 느꼈지만, 제가 느끼기에 세라 씨는 어떻게든 나를 지키려는 하이원슬롯같아요.



[좋아하이원슬롯 것을 아는 사람]


(...)


A. 야근에 대한거부감은 스트레스나 부적응 때문이기도 하지만, 퇴근 후 저의 시간을 사수하기 위한 게 가장 컸어요. 꼭 야근이 아니더라도 저는저녁일정이 생기면 일단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저는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합니다. 출근 전은 물론 퇴근 후에도 8시부터 9시는 에세이, 9시부터 10시는 철학, 10시부터 11시는 글쓰기나 필사등등, 아 그리고 자기 전 1시간은 시 읽기!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요. 늘 지키지 못하지만, 꼭 해야만 하거든요.


(책술 이야기 중략)


Q. 그 시간이 세라 씨에겐 힐링이기도 하네요?


A. 네, 맞아요.


Q. 어떻게 보면 세라 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억지로 그렇게 하라고 해도 절대 못할 걸요.


A. 그만큼이나 저도 이걸 하지 않는 걸 못 하겠어요.


Q. 어떻게 보면 그것도 타고나는 것 같아요.


A. 물론 저도 억지로 책상 앞에 앉을 때도많아요. 당연히 누워서 쉬는 게 더 편하이원슬롯, 폰 보면서 킬링 타임 하는 게 더 재밌죠. 그래도 어떻게든 책상 앞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읽고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간절해요.


Q. 세라 씨는 너무나 바람직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 줄 아는 것 같아요. 자기가 뭘 좋아하이원슬롯지,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지확실하게 알고 있잖아요. 그조차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세라 씨가 지금 그대로만 살아도 제 나이대가 되면 저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나이대에 전혀 세라 씨처럼 하지 못했어요.



[세상을 믿지 못하는 사람]

Q. 세라 씨는 여전히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누군가(이성)를 만날 생각은 전혀 없어요?


A. 말씀드렸듯이 저는 혼자서도 너무 바빠서요, 사람에게 할애되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싶어요.


Q. 세상에서 한 명 정도에게는 곁을 내줄 수도 있잖아요?


A. 그 한 명에게 어떻게 제 세상을 다 걸겠어요? 그건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요. 그렇게 겨우 내준 곁을 배신당하면요? 그걸 회복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요.하이원슬롯을 어떻게 믿어요. 제가 저 자신조차 못 믿는데요. 누굴 만나서 좋았던 경험도 별로 없고요. 아니, 누굴 만나면 더 나빠졌던 경험 밖에는 없습니다.


Q. 그래요,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가령 시위 현장을 보세요. 이 겨울에 추운 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위해 음식점이나 카페에 선결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선결제한 것을 등쳐먹는 하이원슬롯도 있잖아요? 그런데 결제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드러내며 선결제하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선결제한 하이원슬롯들은 사실은 더 많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내가 차분하이원슬롯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비빌언덕'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때는 그저나를 걱정해 주는선배같았다.)


(이 주제의 핵심은 연애 자체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조금도 곁을 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쓰고하이원슬롯 사람]


Q. 글을 공개적으로 써 보거나, 공모전 혹은 책을 내 보려는 생각은 없어요?


A. 그런 시도를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누군가 읽어주길 원하면서도, 제발 이 멍청한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아주길 원해요. 어쩌면 무명으로 간절하게 쓰는 지금이 더 좋기도 합니다. 아무렇게나 써도 되고, 마음껏 실수해도 되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니까요.


Q.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 아닌가요? 서투른 글이지만 진심이 담긴 글을 누군가는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A.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일단 양적으로 더 쌓아야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누군가 내 글을 비난할까 봐 두려운 건가요?


A. 음, 제가 제 을 비난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지만, 비난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만약 100명 중 1명이 악플을 달면, 아무리 99명이 제 글을 좋아해 주어도 그것에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더라고요.1개의 악은 언제나 99개의 선보다힘이 더 센 것 같아요.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요. 만약 제가 언젠가 알려진다면, 여러 개의 필명을 사용했던 작가들처럼 활동하이원슬롯 싶습니다.




세상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더 불편하게 하는 것. 세상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내가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던 내가 나를 통제하려는 성향. 나는 여전히, 나에게 벌을 주는 사람이었다.


힘겹게 꺼낸 작은 용기조차 더 큰 용기 없음 때문이라며나를 옥죄고 나를 비난하는 나.

하이원슬롯보다는 배신을 더 감당할 수가 없어서단 한 명도믿지 않기로 한나.

나를 지키는 건 오직 나뿐인삶에서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나.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속박하이원슬롯 있는…….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


A. 선생님, 어쩌면 저는'나를 싫어하는 나를 내가 너무 좋아하나' 싶기도 해요. 세상과 불화하는 힘이야말로 제 삶의 동력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당한 세상을고소하이원슬롯, 증오하이원슬롯, 환멸하이원슬롯, 오열하이원슬롯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다가, 어느 순간 아예 그런 하이원슬롯이 되어버린거예요. 어쩌면 나를 싫어하이원슬롯 감정에 중독된 것이아닐까요?


A. 아니에요. 그럴 때는요,'나'는 세상이 '나를 싫어할까 봐 불안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나는 사실'불안한' 거예요.나는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게편한 거예요. 세상이 나를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하니까, 나는 또다시 나를 싫어하게 될 세상이불안한 거예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 너무싫은 거예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그런 것처럼요…….)


Q. 혹시 제가 퇴근 후 구획구획 시간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것의 일환일까요? 불안 말이에요.


A. 나는 나를 통제하려는 성향이 아주 강한 사람일 수 있죠. 그만큼 매 순간 '힘이 들어간 채' 살고 있는 거예요. 세라 씨가 조금 더'힘 빼고'살아가면 좋겠어요.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나를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는 무한 도돌이 생각.)




Q. 저도 생활이 안정에 접어든 지 훨씬 지난 뒤에도 과거의 기억 때문에 '울컥' 하는 순간이 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런데 '울컥'하이원슬롯 순간에, '내'가 다 들어있더라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매 순간 울컥울컥 하는 내가, 마치 나를 깨우려는 새벽의 알람 시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나는, 불신이 강한 만큼 누구보다 '믿고 하이원슬롯 사람' 아니었을까. 겨울이라는 계절을 공공연하게 편애해 온 만큼 나는, '따뜻해지고 하이원슬롯 사람' 아니었을까. 세상을 증오하는 만큼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하이원슬롯 사람' 아니었을까.


나는 오늘의 마지막 내담자였고, 선생님은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며 바깥까지 배웅해 주었다.


"마스크는 안 하고 다녀요? 오늘 미세먼지 진짜 심한데!"

"그냥 나와버렸네요. 마스크 안 한다고 뭐 죽기야 하겠어요.(웃음)"

"이거 하고 가요."(새 마스크를 꺼내 주는 선생님)

"아깝잖아요. 이제 집에 가는 길인데."

"아까워요? 에이 뭐! 그래도 건강이 먼저죠."(마스크를 뜯어버림)

"감사합니다."

"저녁은 어떻게 해요?"

"뭐, 과자나 안주로…… 그때그때 대충 먹어요."

"그래도 챙겨 먹어야죠."

"저는요즘배가 불렀어요. 저는더 춥고 더 배고픈 상태에 있어야 해요!"


마지막 말을 농담처럼 웃으면서 하이원슬롯 돌아선 뒤에, 아, 이 무슨 말짱 도루묵!


따뜻하고 배부른 게 나는 그렇게도 불안한 것일까. 크고 작은 매 순간, 나는 언제나 나를 채찍질하고 있구나. 나는 채찍질당하고 있구나.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일기가 <500일의 윈터, 그리고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와 울컥, 했다. 겨울도 내 마음이고, 봄도 내 마음인 것이다.싫음도 좋음도 어쩌면모두, 하이원슬롯일지.




다시, 무엇도 바라지 않는 상태로 돌아온다.나의 다섯 번째 계절. 천천히, 늦더라도 계속, 돌아오기. 여기로. 여기 내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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