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LIKE’에 샘플링한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는 이별 뒤 남은 여성의 강력한 생존의지였다. ‘갈 테면 가라, 난 강해질 테니까’라고 떠난 남자의 뒤통수에 내지른 선언이었다. 타이틀카지노의 새 미니앨범에서 그 의지와 선언은 반항으로 스며든다. 아울러 옛 노래의 샘플링도 유효해서, 글로리아 게이너라는 70년대 디스코 레트로는 수잔 베가라는 80년대 팝록 레트로로 옮겨갔다. 심지어 번안곡도 하나 있다. 번안의 대상은 세계를 호령했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80년대 히트곡이다. 이처럼 시대는 여전히(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뉴트로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타이틀카지노는 시대의 요구에 적극 응할 요량이다.
신작의 예고는 ‘REBEL HEART’의 몫이었다. 셔플 리듬의 질주감. 반항의 연대. 장원영이 언급한 “다양한 세대와 시대, 시선에서 공감”의 한 축으로서 이 노래는 작품을 지탱한다. 여기에 타이틀카지노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벅찬 코러스가 따뜻한 위로와 만나는 뮤직비디오는 곡이 머금은 감동의 성(城)을 조금 더 높이 쌓아 올렸다.
‘ATTITUDE’는 그런 ‘REBEL HEART’와 더블 타이틀곡이다. 그만큼 작품성과 완성도에 자신 있다는 얘기겠다. 가사는 데뷔 때부터 타이틀카지노와 호흡을 맞춰온 작사가 서지음과 활동명을 무려 19세기 대표 철학자 이름을 쓰는 니체(Nietzsche)가 함께 썼다. 또한 꾸준히 자신들 음악에 이야기를 보태고 있는 장원영도 그 사이에 가세했다. 일단 곡 시작과 함께 8090 팝 팬들은 익숙한 멜로디를 듣게 된다. 앞서 언급한 수잔 베가의 ‘Tom’s Diner’ 보컬 멜로디다. ‘Tom’s Diner’는 식당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킨 여성이 커피를 다 마시고 기차를 타러 갈 때까지 겪은 심리를 묘사한 곡이다. 노래에 등장하는 식당은 수잔 베가가 대학 시절 자주 가던 곳으로, 진짜 이름은 ‘톰스 레스토랑(Tom’s Restaurant)’이다.
수잔은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려본 자신의 경험과 사진작가 친구 브라이언의 관점, 즉 사진가로서 렌즈를 통해 많은 일을 바라봐온 목격자였으되 정작 그 일에 관여하지는 않은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다. 수잔의 말처럼 요컨대 ‘Tom’s Diner’는 아침 식사에 관한 노래가 아니라 “단절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노래,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정말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때를 회상하는 아쉬움에 관한 노래”였다. 따라서 “바뀔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기뿐”이라는 주제를 택한 타이틀카지노의 곡은 수잔의 원곡이 지닌 의미와 절반 정도는 연관성을 갖는 셈이다. 다만 원곡의 팬으로서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영국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팀 DNA가 자신들의 ‘Tom’s Diner’ 리믹스 버전에서 중심에 놓았던 것과 같이 타이틀카지노도 곡의 아우트로 보컬 애드리브만을 자신들 노래에 인용한 점이다. 그것만 가져다 쓰기에 수잔의 아카펠라 노래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또 하나 8090 팝 팬들을 유혹하는 트랙은 ‘You Wanna Cry’다. 앞에서 말했듯 이 노래는 번안곡이다. 당초 컨트리 웨스턴 버전에서 알앤비 댄스 팝으로 새롭게 거듭난 원곡 ‘I Wanna Dance with Somebody’를 쓴 섀넌 루비컴은 “자신을 위한 특별한 사람을 찾길 바라는 누군가”를 상상하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타이틀카지노는 사랑하는 사람과 춤추고 싶다며 끊임없이 외치는 원곡의 활기 대신, ‘울고 싶으면 맘껏 울어’라는 진심 어린 위안으로 노래의 둔덕을 낮췄다. 편곡 역시 축제처럼 타오르던 휘트니 버전의 신시사이저를 물리고, 무표정한 록 기타 리프와 속삭이듯 뜯는 어쿠스틱 기타로 무드를 잡았다. 타이틀카지노 버전에도 신스 사운드가 완전히 누락된 건 아니어서, 후반부 브리지에 가면 곡의 절정을 장식하는 해당 사운드를 만날 수 있다. 좋은 번안곡이란 원곡을 허락하면서 동시에 원곡을 거부하는 것이라 믿는 입장에서 타이틀카지노의 경우는 꽤 잘 된 쪽으로 들렸다.
미니앨범 ‘IVE EMPATHY’엔 그 외 세 곡이 더 있다. 그중엔 바쁘게 일렁이는 펑키(funky)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사랑에 빠진 심정을 독감에 빗대 노래한 ‘Flu’가 특히 귀에 들어온다. 타이틀 트랙의 흥분을 이어나가야 할 두 번째 트랙에 놓은 것에서도 짐작되듯 확실히 ‘Flu’는 반(半) 타이틀곡이랄 만큼 더블 타이틀곡에 버금가는 매력을 지녔다. 반면 남은 두 곡 ‘Thank U’와 ‘TKO’는 킬러 트랙이라기 보단 필러에 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두 곡에선 타이틀 트랙들처럼 타이틀카지노만이 들려줄 수 있는 비범함보단 다른 걸그룹도 들려줄 수 있을 평범함이 느껴진다. 물론 킬링 트랙들만 모은 ‘명반’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저 발매 스케줄에 쫓겨 앨범을 더 단단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이 행여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진 않은지, 나는 그게 살짝 걱정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