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존 레시피 고수맛 편지효
슬롯존와 음악을 대하는 자세 등에 관해 현역 프로 슬롯존리스트가 100가지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주법이나 스케일을 건조하게 설명하는 슬롯존 교본이 아니다. 대신, 그것들에 뛰어든 뒤 하면 좋은(또는 해야 하는) 소소한 행동 요령들,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다룬 슬롯존론(論)에 가깝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다.
악보에 의존하지 말라는 조언을 담은 이 책은 이론보다는 실전에 도움이 될 법하다(책의 부제는 ‘슬롯존리스트가 슬롯존리스트에게 들려주는 실전 생활 탐구’다). 나는 살면서 슬롯존 케이스에 손톱깎이를 넣어 다니라는 슬롯존 책을, 피크로 택배 상자 뜯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슬롯존 책을 본 적이 없다. ‘갈매기’가 ‘슬롯존 볼륨 주법’을 뜻하는 기성세대 연주자들의 은어인 줄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책 속엔 존 페트루치가 자신의 슬롯존 교본에서 강조한 근육 관리 이야기도 있다. “채우는 것만큼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라는 구절에선 ‘사색하는 프로듀서’ 릭 루빈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 “비상구를 바라보라”는 공연 중 시선 처리 조언은 무대 공포증을 겪던 1982년의 제임스 헷필드에게도 도움이 됐을 내용이다.
저자처럼 기교와 경험(그리고 필력)을 두루 갖춘 슬롯존리스트만이 쓸 수 있을 <슬롯존리스트 레시피 고수맛은 블루스 슬롯존 솔로잉은 어쿠스틱 슬롯존로 하면 좋다는 꿀팁은 물론, 무대에서 클립 튜너가 앗아가는 연주자의 ‘간지’까지 챙긴다. 주제마다에 딸린 그림은 쉽고(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그림을 부연하는 글 내용은 깊다. 거기엔 유머도 있다. 내 경우 읽으며 킥킥거린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저에게 슬롯존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제프 벡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제프 벡의 명언을 실은 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에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주력과 기량을 갈고 닦는 것만큼 도량을 넓히는 것 또한 중요하다. 명심하라. 몸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재앙이 닥칠 것이다
슬롯존리스트에겐 테크닉 만큼 자세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어쩌면 자세 이후에 기술 연마가 따라야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멤버들끼리 지적은 잔소리가 되므로 “침묵으로 응원”하라는 이 슬롯존 책에는 그래서 잔잔한 인문학도 번져 있다.
2시간이면 읽을 분량이다. 하지만 슬롯존에 진지한 뜻을 둔 사람에겐 덮은 뒤 12시간을 되새길 만한 고민을 안겨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