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슬롯보다 특효약은 내 몸과 마음과 친해지기다.
우울증 환자에게 산책이나 슬롯이 좋다고들 한다.아주 당연한 말이다. 외부자극과 다양한 풍경을 보는 게 우울증 개선에 얼마나 좋겠나. 우울하지 않은 사람도 슬롯만 가면 흥이 솟구친다. 옛날 관광버스에서 불나방처럼 춤을 추던 어르신들을 떠올려 보자. 그분들이 평소 집이나 직장에서도 열정적으로 춤을 췄을까? 그럴 리 없다. 슬롯의 힘은 아주 강력하다.
나와 남편은 결혼 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국내 슬롯을,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슬롯을 다니는 편이었다. 다만 내가 자격증 공부를 하는 8개월간은 슬롯을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나도 우울증을 털어내는 데 슬롯이 좋은 시간이 될 거라 믿었다. 오랜만에 슬롯에 가기로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물론 약은 잘 챙겼다. 슬롯지에서 단 하루도 약을 빼먹거나 늦지 않고 복용했다.
문제는 슬롯가 나와 남편의 예상보다 훨씬, 아주 많이, 심각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두 슬롯로 모이라는 지령을 받은 듯했다. 특히 수많은 기차와 전철이 교차하는 슬롯역은 아비규환 그 자체인 데다 매우 시끄럽고 역 전체가 층층이 사람으로 메꿔진 모양새였다.
슬롯역에 내리고 숙소를 찾아 헤맸다. 동쪽 출구를 나가려면 역에서 내려 한 층 올라가 백화점을 통과해야 했는데 지도 앱은 우리에게 공중을 날아올라 건너가라는 듯 묘한 안내를 했다. 층층이 사람으로 둘러싸인 슬롯역을 30분 넘게 헤매다 숙소를 겨우 찾았다. 너무 지치고 배도 고팠다.
짐을 풀고 곧 나와 전철을 타고 커다란 신사에 방문했다. 신사 앞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토스트를 먹었다. 슬롯 오기 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카페였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토스트 반쪽 먹기가 힘겨웠다. 마치 목 안에 커다란 떡이 걸려있어 아무것도 넘길 수 없는 느낌이랄까. 그날 새벽 먹은 샌드위치 반쪽이 식사의 전부였는데 해지기 직전 시간에 먹은 토스트 반쪽을 못 넘기다니 뭔가 이상했다. 체한 거라면 반응이 있으려니 싶은 마음으로 신사로 올라갔다. 신사 역시 슬롯역 못지않게 사람으로 빽빽했다. 가슴이 답답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신사에서 나가는 길에서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아무 근거 없이 불길한 기분이 들더니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 거다. 옆에 있던 남편이 놀라서 왜 우냐고 물었다.
“모르겠어. 그냥 내 미래가 안 좋을 것 같아. 너무 불안해.”
“여기서? 갑자기?”
“그러니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너무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
콧물이 나올 정도로 울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앞뒤 맥락이 없는 불안과 울음이었다. 남편이 뭐라도 마시라며 제안했는데 물 한 방울 넘기고 싶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꿀 겸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산조 거리로 나갔다. 슬롯 전부터 오고 싶었던 브러시 전문점에 갔다. 아무 감흥이 없었다. 일본에 가면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올 땐 보부상처럼 쇼핑을 해오는 나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도 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산조 거리는 직선으로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다시 가슴이 답답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입에서 “아!”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제야 깨달은 거다. 지금 내 증상이 공황이라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길에서 벗어나 숙소로 가 휴식을 취해야 했다. 남편에게 공황 증세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서둘러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발이 내 뜻과 달리 더디게 움직였다. 몸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숙소에 가려면 다시 아비규환의 슬롯역을 거쳐야 했다. 슬롯역에 들어서니 울렁거림이 최고조에 달했다. 겨우 숙소에 도착해 급히 약을 먹고 누웠다. 귀에서는 찢어질 듯한 이명이 쏟아졌다. 최악이었다.
어쨌든 저녁을 먹지 않으면 체력도 무너질 것 같아 숙소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남편이 다양한 종류로 주문하고 뭐라도 먹어보라고 권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먹기 싫은데 내가 안 먹으면 남편도 식사가 불편해질까 봐 억지로 먹었다. 턱밑까지 답답함이 꽉 차올랐는데 음식물을 넘기니 숨이 막혔다. 평소 식사량의 5분의 1도 먹지 못하고 나왔다.
이러한 상태는 슬롯 내내 지속됐다. 억지로 음식을 넘기면 구역질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건 오렌지주스와 물, 작은 초콜릿 정도였다. 계속 집에 가는 날만 기다렸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내내 뜬눈으로 지냈고, 온종일 울렁거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약을 먹어도 차분해지지 않았고, 수면제도 듣지 않았다. 공부하는 동안 몹시도 가고 싶었던 교토는 내게 일생 최대의 공포 슬롯이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찍 울면서 정신과를 찾았다. 여전히 공황 증세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선생님 약을 먹어도 계속 불안하고 울렁거리고 슬롯해요.”
“아직 약에 적응이 완전히 되기 전이라 그래요. 조금 더 증량해 볼게요.”
평소보다 많은 약을 받아왔다. 그날부터는 잠을 잘 자고 급격히 불안해지는 일이 줄었다.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공황 증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많은 쇼핑몰이나 마트, 관광지에 가지 못한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슬롯이 좋다,라는 단순한 조언에 휩쓸려 교토에 다녀온 일을 후회했다.공황장애는 지금 내 마음과 머리가 너무 힘겹다고, 나 좀 살려달라고 몸에 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급격한 불안이 찾아오고 소화가 안 되고 눈물이 흐른 건 시끌벅적한 환경을 받아들이기에 내 몸이 아직 아프다는 절박한 SOS였다.
게다가 함께 슬롯길에 오른 남편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타지에서 내가 쓰러지거나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애타는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내 앞에선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만약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면 단순히 슬롯이 도움이 될 거란 생각보다는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서를 차분하게 가져보는 게 좋을 듯싶다.심리상담사로부터 배운 몸에 집중하는 방법이 있다. 시작은 발끝이다.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발끝에 집중한다. 그 상태로 발가락을 하나씩 까딱까딱 움직이며 아픈 곳은 없는지 감각은 어떤지 세밀하게 느껴본다. 그다음은 발등으로 옮겨본다. 발등에 힘을 줘보고 천천히 느껴보고, 다음은 발바닥, 발목, 종아리 이런 순서로 머리끝까지 집중한다. 그렇게 온몸에 집중하는 데에 10분이 넘게 걸린다. 자연스럽게 명상이 되고 내 몸이 주는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린 이에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정신력을 키워라. 나약해서 그렇다.”
“슬롯 가서 기분 전환 좀 해봐. 그럼 좋아질 거야.”
“운동을 해. 몸을 움직여야 슬롯하지 않지.”
“친구들을 만나봐. 그럼 기분 좋아져.”
그런 말들이 진정 도움이 된다면 우리나라에 100만이 넘는 우울증 환자 통계가 농담처럼 들릴 것이다. 남들이 좋다는 슬롯, 기분 전환을 위해 시도하는 일탈, 가벼운 사교활동보다 우울증 환자에게 중요한 건 지금 내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이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갖는 일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오롯한 자신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내 몸과 마음에 이토록 관심과 돌봄을 줄 수 있을까? 섣부른 슬롯으로 나처럼 공포 체험을 하기보다는 한적한 장소를 산책하며 내 마음에 안정을 주는 고요한 일탈을 권하고 싶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슬롯보다 특효약은 내 몸과 마음과 친해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