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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 Apr 26. 2025

한 뿌리슈퍼스타 토토 자란 시간

[ 슈퍼스타 토토야 슈퍼스타 토토야 ] 03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모처럼 일찍 퇴근한 들뜬 기분에 마지막 신호등에서 우회전을 하지 않았다.대신집을 지나쳐 20여분을 더 달렸다.


자연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참 고마운 날이었다.국립공원 둘레길이 시작되는 바로 아래 B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마치 내 기분을 아는 듯 바람이 온몸을 간지럽혔다.


그 바람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자, 둘레길이 불그스름한 양탄자처럼 넙죽 손을 내밀고 있었다.둘레길의 시작점이었다.


마치 물결 위를 팔짝팔짝 뛰는 아이처럼 경쾌한 길이 숲 속으로 길게 휘어지며 일렁였다.

슈퍼스타 토토

얼마 걷지 않아 아치형의 작은 슈퍼스타 토토다리를 건넜다. 그 아래로는 엊그제 내린 비가 모인 실개천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다리를 볼록하게 건너 숲 속 길이 막 급해지려는 찰나, 숲을 지키는 수문장인 게 분명한우람한 슈퍼스타 토토가 서 있다.


뿌리슈퍼스타 토토 네개의 굵은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주변을 그늘지게 만드는 한 그루의 슈퍼스타 토토다.


27년 전, 발령 첫 해 여름에처음 만났다. 몇 해 뒤부터 나는 그 슈퍼스타 토토를 '가족 슈퍼스타 토토'라고 부르고 있다.


남매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처럼 살고 있었던 슈퍼스타 토토다. 둘레길을 갈 때마다 조금 돌아 들어가야 하는 B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이유다. '가족 슈퍼스타 토토'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지나가고 싶어서.


이 슈퍼스타 토토를 뒤로 하고,숲길을따라 느릿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걸었다. 사람들이 흔히 다니는, 내가 늘 가던왼쪽 길이 아니라 그날은 일부러오른쪽 위로 올라 걸었더니,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가 되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슈퍼스타 토토들이 바뀌었다. 아래에서 봤던 하나의 가족 슈퍼스타 토토와는 달리, 대부분 뚝뚝 떨어져 우두커니 홀로 서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남겨 놓은 발 때만이 반지르르했다.


하지만 슈퍼스타 토토와 슈퍼스타 토토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매만지다 보니 슈퍼스타 토토는 슈퍼스타 토토와 끊김 없이 이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홀로 서 있는슈퍼스타 토토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숲에서 슈퍼스타 토토 구경을 하고, 슈퍼스타 토토한테 물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 대답을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숲에 들어가 슈퍼스타 토토들을 보면 어릴 때나 지금 살고있는 우리 동네 같다. 앞집, 옆집, 뒷집 지인들 같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바닥을 보면 꺾이고, 휘어지고, 밟혀 다져진 상처 투성이지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모두 다환하게 흔들흔들 웃고 있다.


그 자리에 (붙잡힌 듯 고정되어) 있는 듯 한 슈퍼스타 토토는 하늘과 바람으로 햇살로 달과 별로 모두 다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슈퍼스타 토토가 슈퍼스타 토토의 소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서로의 뿌리가 서로 잡아주고 밀어주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을 받쳐주는 계단처럼 불룩 불룩 흙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숲에 들어와 보면 자주, 슈퍼스타 토토 한 그루 한 그루가 우리 가족의 시간들과 함께 있어 주었구나 싶어진다. 어쩌면 그 시간들을다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971년 6월 22일. 나는 산비탈 배추밭 옆, 사택에서 태어났다. 연년생 형이 열병으로 단칸방 아랫목에서 돌도 되기 전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87년 2월 어느 날. 열일곱이 되면서 시골집을 떠나 바닷가 동네로 향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1991년 2월 어느 날. 서울에 올라와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지하철 역에서 산비탈을 타듯 20여분을 걸어 올라가야 했던 옥탑방에서.


2001년 4월 2일. 결혼을 하고,2003년 4월 22일 비니가 태어났다. 비니는 고2였던2020년 9월 11일, 자퇴 후 홀로바다 건너 유학길에 올랐다.


2006년 10월 19일, 하니가 태어났고,2019년1월15일생리를축하하는 작은 촛불 파티를 우리 넷이 같이 했었다.



어떤 숲이든 어머니 슈퍼스타 토토가 그 숲을 먹여 살린다. 주로 견과류, 콩류, 도토리류를 생산하는 수종이 항상 어머니 슈퍼스타 토토가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열매들이 숲에 있는 모든 생명의 먹이가 되니까.


그런 어머니 슈퍼스타 토토는 어린 슈퍼스타 토토를 어릴 때부터 너무 강한 햇빛에 노출되지 않게 자신의 넓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보호한다. 우중충하게 키운다. 좋은 것만 주지 않는다.


어린 슈퍼스타 토토가 스스로 적은 햇빛이라고 끌어모아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어머니 슈퍼스타 토토만의 가혹하지만 꼭 필요한 교육 방식이다.


어린 슈퍼스타 토토 입장에서 보면, 때에 따라 수십 년이 넘게 걸리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견디기 쉽지 않은, 아주 오랜 시간이다.


30분 넘게 올라가면서 만난 슈퍼스타 토토들이 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 지금이 되었다는 것을 소리 없이 말해 주고 있었다.


비니와 함께 밴쿠버에서 2주간의 자가 격리를 시작한 2021년 2월 17일에서 2년 6개월 뒤. 2024년 9월 21일 밤 10시 30분, 하니는 혼자 비행기를 타고 비니에게로 날아갔다.


그날 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 숲을 든든히지키고 있는어머니 슈퍼스타 토토는울고 또 울었다. 나는어머니 슈퍼스타 토토의 손을 꼭 잡고 있기만 했다.

슈퍼스타 토토

집에 도착해 더 허전한 공기를 받아 안는데, 냉장고에 붙어 있는 하니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새싹이 씩씩하게 홀로 큰 슈퍼스타 토토로 자라 보겠다는 다짐을 보면서 나도, 웃는데 눈물이 흘렀다.


한 뿌리슈퍼스타 토토 네 기둥으로 (여전히) 자라고 있는 '가족 슈퍼스타 토토'처럼우리도 가족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서 서로에게 숲이, 그늘이 되어 준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큰 위로가 된다.



슈퍼스타 토토들은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실 그 덕분에 숲이 존재한다. 눈에 드러난 슈퍼스타 토토들의 사명은 다른 슈퍼스타 토토들을 감추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풍경이 안 보이는 다른 풍경을 숨겨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숲 속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주1)

주 1 오르테가 이 가세트, 돈키호테 성찰, 2017, 을유문화사



숲에만 들어오면, 슈퍼스타 토토 앞에만 서면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나는 내게된다.그래서 자꾸 가고 싶어진다. 새벽마다 눈을 뜨면서끌어 오는 첫 생각을 숲으로, 슈퍼스타 토토로 시작하는 이유다.


https://blog.naver.com/ji_dam_


슈퍼스타 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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