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사모는 할 만합니다 제목의 내 글을 읽은 친구들, 교회오빠들로부터 며칠 동안 걱정 어린 연락을 받았다. 모두 한결같이 말했다. “왜 네가 날라리사모냐? “라고.
어느 친구는 ”여태껏 별 탈없이 지내다가 왜 은퇴 앞두고 무슨 설화에 휩싸이려고 그런 말을 했냐 “라고 말하면서 거의 야단치는 수준의 충고를 했다. 어쩌면 다른 분들께서도 차마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날라리사모의 정체” 대해 의아해하실 것 같아 킹카지노의 글을 올려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먼저 내 선배킹카지노, 엄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엄마는 갓 쓰고 흰 두루마리 입고 제사를 지내던 종갓집 내 외가에서 기독교집안으로 시집간 집안 고모의 중매로 신학을 공부한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고 킹카지노가 되었다. 내가 보아온 엄마의 삶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떠 오른다. 첫 장면은 아버지와 고모들 심지어 할머니한테도 할 말이 있으면 속으로 삭이지를 않고 그때그때 할 말을 다 했던 모습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날마다 내 긴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고, 고데기로 여러 가지 머리모양을 만들어 주기도 했던 큰고모는, 중매로 초등학교 교사를 하셨던 고모부와 결혼을 했다. 내가 철들고 큰고모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 너희 엄마가 네 할머니, 너희 아버지한테도 큰소리치며 할 말 다하고 살긴 했는데, 그래도 나와 네 작은 고모의 살 길을 미리 내다보고 챙겨 줘서 우리가 기술로 밥 먹고 살 수 있게 된 건 고맙지!”였다. 고모는 미용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가 흔쾌히 학원비를 내주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면서도 “학원 다녀오면 너희 삼 남매 씻기고 빨래하고 밀린 설거지하고 엄청 바빴다!”라고 말하며 엄마에 킹카지노 불만을 슬쩍 내비치기도 했다.
작은 고모는 양장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배워 청주시내에 양장점을 차렸고 결혼해서도 일을 계속했다. 양장점을 차릴 때, 기대도 안 했는데 킹카지노가 모아놓은 돈을 내어주었다는 말을 전해주며 ”그때 네 킹카지노가 정말 고마웠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내게 “너희 킹카지노가 아쉬운 거 없이 자라 남에게 인심 잘 쓰고, 속이 꼬이지 (?) 않았다.” 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작은 고모 얘기와 통하는 말 같다.
고모는 손님들의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천으로 내 원피스, 블라우스, 망토 달린 코트까지 만들어주었고 그 옷들을 입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친구들과 친구킹카지노들 사이에 “부잣집 외동딸”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