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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선 Apr 24. 2025

고음 불가 음치의 추억

카지노 입플방이 제일 싫었어요

저는 카지노 입플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카지노 입플를 잘 부르던 주변 친구들이 참 많이도 부러웠지요.

예전, 고등학교 때 음악 시간엔 지정된 카지노 입플를 불러서 그것을 평가해 점수를 매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일이지요.

카지노 입플를 잘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그걸 점수로 줄을 세워 성적에 반영했으니까요.

지금도 기억하는 카지노 입플는 오 솔레미오(O Sole Mio)라는 곡이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그것도 무반주로 완창을 해야 점수를 얻을 수 있었는데

저는 그냥 그저 그런 성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도 가끔 어디선가 그 카지노 입플가 흘러나오면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어설픈 원어 가사가

아직도 떠올라 미소를 짓곤 하지요.



대학 시절, 몇몇이 캠퍼스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카지노 입플를 부르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안주 삼아 술도 한잔 들이켜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수업 시간을 놓치기도 일쑤였지요.

대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인가, 저도 학과 동기들과 모여 카지노 입플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기 중 한 명이 제 노랫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지요.

"미선아, 너는 왜 모든 카지노 입플를 다 뽕짝처럼 부르니?"

"?!!!!!...."

음악 선생님 이후로 누군가로부터 받은 제 카지노 입플 실력에 대한 첫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뽕짝'이라니요...

저는 개인적으로 트로트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동기의 그 말은 제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누군가의 앞에서 카지노 입플 부르는 일은 곤욕이 되고 말았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카지노 입플를 잘 못한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만 해도 회식은 아주 중요한 업무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상무님이나 부장님 아래 줄줄이 모여서는

부하 직원 누구도 흔쾌히 반기지 않는 회식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대체로 3차가 기본인데요, 1차는 고깃집, 2차 카지노 입플방, 3차 맥주집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거쳐야

마음 놓고 귀가를 할 권리가 생기곤 했지요.

이 가운데 저는 2차가 참 싫었습니다.

부장님의 취향에 맞춰 온갖 재롱을 부려야 했으니까요.

웬만큼 가수 뺨치는 실력이 아니라면 분위기 깨는 발라드는 고르지 않는 게

현명했습니다.

부하 직원들 카지노 입플를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야만 2차가 끝나는 탓에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야만 했습니다.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지노 입플는 잘 못하고, 분위기를 깨서는 절대 안 되고...

이러한 조건 하에 고를 수 있는 카지노 입플들은 별로 많지가 않았지요.

그래서인지 2차가 끝날 무렵, 우르르 카지노 입플방을 나서는 그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웠는지

지금 그때를 떠올려도 쓴웃음만 나오곤 합니다.



제가 다시 용기를 내서 카지노 입플를 부르기 시작한 건 제 인생 마지막 연애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남편인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면 거나하게 술 한 잔 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남자친구가 카지노 입플방엘 가자고 하는 겁니다.

남자친구의 카지노 입플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요.

고음이 폭발하는 락커 스타일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 목소리를

가진 덕분에 남차친구의 카지노 입플를 듣는 건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제 사정은 좀 다르지요.

그날도 남자친구의 카지노 입플만 줄곧 듣고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문득 제 카지노 입플가 궁금하다는 거였습니다.

술도 한 잔 해서 용기도 생겼겠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아마 박혜경의 <고백인가,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인가 둘 중 한 곡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는 제 카지노 입플를 듣는 동안 아주 흐뭇하게 웃고 있었지요.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남자친구의 평가(?)는 의외였습니다.

그땐 귀에도 콩깍지가 씌었는지 남자친구는 제게 아주 깨끗하고 순수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며,

왜 여태껏 카지노 입플를 부르지 않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 카지노 입플에 대한 두 번째 평가였지요.

이보다 행복할 수가 있을까요... 남자친구에게 너무도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남편과 가끔씩 마이크를 잡곤 합니다.

고음 불가에 화려한 기교도 절대 없는, 그런 카지노 입플 실력이긴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환하게 웃어주지요.

그 덕분에 21학번의 <스티커 사진이라는 애창곡도 생겼답니다.

사람들이 가진 여러 예술적 재능 중에서도 카지노 입플는 우리들 마음을 웃게 하고 울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아주 훌륭한 재능인 것 같습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제 카지노 입플에 대한 재능은 영 없어 보입니다.

예전엔 그게 그렇게도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숨기려고 했던 기억들도 많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답니다.

무대는 작은 카지노 입플방이거나 집안 거실이구요, 객석엔 남편과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두 마리가 전부이지만

제겐 그 어느 무대보다 화라하고 멋진 곳입니다.

그 무대에서 부르는 저의 카지노 입플...

이만하면 그 어느 콘서트 무대도 부럽지 않지요.

오늘 밤엔 슬그머니 남편에게 근사한 카지노 입플 한 곡 불러달라 청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그 카지노 입플에 맞춰 저도 흥얼흥얼 입을 맞춰도 좋을, 그런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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