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동네 어르신
또래 오월벳 하나 없는 동네.
오월벳에게 친구가 없으면 외로울 거라 생각했다.
아니, 외로워야 하는 거 아닌가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마을 어귀를 돌며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건 뭐예요? 콩이예요? ”
그 모습은 말을 배우기보다, 마음을 먼저 배우는 오월벳였다.
내가 생각했던 건, 무의식 중
비슷한 또래와 주고받는 언어의 교환, 놀이와 대화로 이어지는 말의 흐름이 오월벳에게 '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말이 아닌 것들로도 관계를 맺어갈 줄 알았다.
짬이 나면 나는 항상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인사를 드리곤 하였다. 그것이 일상이었다. 윗집 할머니가댁 평상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본 날, 첫 방문지로 정했다.
윗집은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새를 쫓는 쩡쩡한 외침 소리에 우리가 놀라 뛰쳐나갈 정도로 기운이 넘치시는 부부가 사시는 곳이다.
그날은 아로니아 꼭지를 따고 계셨다.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효소로 담가질 아로니아 꼭지 따기를 하였다. 틈틈이 머리 위 나뭇잎을 건드려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한참을 놀던 중 할머니는 조용히 복숭아와 과자를 내오셨고,
오월벳가 유모차에서 과자 봉지를 꺼내 와 건넸다.
아.. !
꼭 ‘소통’이라 부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삶은 말 없이도 서로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을...
그날, 꽤 오랜시간 머물렀다. 오월벳들은 그날의 풍경을 기억할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 집도 있다.
"이쁜이들, 어디 가냐?" 하며
먼저 발걸음을 내디뎌 불러주시는 분. 그 집 마당은 작물과 마음이 함께 자라는 놀이터다.
할머니는 언제나 자식에게 주듯 손수 키운 것들을 나누어 주셨고,
나도 고마움에 떡을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드리곤 한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한 걸음.
유모차에 몸을 기대며 걷는 어르신의 옆을 천천히 오월벳가 따라 걷는다.
더 깊어진 주름, 세월을 머금은 검버섯을
오월벳의 고사리 손이 조심스레 쓸어본다.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을 작은 손이 꼭 잡는 그 순간,
그 안에 오래된 시간이 고요히 머물러 있다.
오월벳의 미소는, 어쩌면 어르신들의 허전한 마음을
잠시나마 데워주는 따뜻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한때 ‘어미’였던 시절을 나의 모습에서 떠올리기에
늘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인사를 건네주시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 ‘소통’이라는 말을 다시 배우고 있다.
소통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계는 때로, 말없이 스며들고, 존재끼리 조용히 엮인다.
최근엔 중년의 남성분이 작은 텃밭과 함께 이사 오셨다.
오월벳들은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분은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손주도 있지만, 도시에선 먼저 인사하는 오월벳들을 본 적이 없다”라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진심 담긴 칭찬과 감사를 전해주셨다.
물론, 모든 인사가 따뜻했던 것은 아니며, 모든 교류가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엔 오월벳의 인사를 모른척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때론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어떤 관계는 멀어진 채 끝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살아가는 방식이란 것을 엄마인 나는 알고 있다.
저녁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싶은 여름날,
"엄마 할아버지가 왜 자전거를 끌고 가실까? 자전거 타고 가시는 게 힘드신 걸까? 나도 같이 가고 싶어"
완벽한 이해는 없었지만, 오월벳 이미 존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 있다는 것, 함께 걷는다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인간적인 소통 아닐까.
마을 어귀 끝자락엔
논길이 펼쳐지고,
새들이 날고,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오월벳도 말없이 자전거를 타고 풍경을 바라본다.
나는 묻는다. ‘오월벳도 느끼고 있었을까?
이 고요함, 이 포근함, 그 속의 자유로움을?’
그 순간,
말없이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도 뜨거운 인사였다는 것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닿게 되는 마음.
우리는 그날,
자연의 품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세상의 한 점으로서의 나 자신까지
그 모든 존재와의 깊은 인사를 나누고 오월벳.
마을 분들의 허락하에 사진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