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삶이란 어떤 걸까? 이전에는 삶의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충실하게 행동하여 결국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삶이 그런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50년 넘게 살아보니 삶은 항상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세계의 중심은 내가 아니고, 인간은 큰 우주의 질서 속에 신이 주신 권리와 책임을 누리며 어떤 조화 속에 잠깐 머물다 탄생과 소멸의 원리에 따라 삶을 마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이란 목표를 향해 강직하게 직선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상치 못하게 내게 주어지는 환경을 거부하지 않고 잘 적응해 가는 삶이다. 내게 주어지는 예상치 못한 환경은 좋은 일일 수도 있고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을 달관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힘든 일 앞에서 슬퍼하거나 의기소침해하거나 분노하거나 자책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아름답다고 믿고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잘 사는 삶이 아닐까. '아름답다'는 말은 단순히 예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심오하다. 23살 때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고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이지선 교수 같은 분의 삶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한다.
적응을 잘 하는 삶이 뚜렷한 가치관 없이 대충 환경에 맞춰 벳위즈 삶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가치관이 뚜렷하지만 아집을 부리지 않고 주위 사람,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뜻한다. 노래에는 독창과 합창이 있지만 엄밀한 기준으로 따지면 독창은 없다. 혼자 노래 부를 때도 악기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무반주로 부를지라도 심지어 공기가 없으면 목소리가 타인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최근 1년 2개월 사이에 아버지, 장인어른, 장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나는 불교를 믿지 않지만 한국의 장례 문화와 불교를 믿는 처가 식구들 때문에 부득이 장례식에서의 여러 절차와 49재 등의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러면서 만약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점에서 우리를 지켜본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남아있는 짧은 생을 복으로 여기고 잘 살라고 하지 않을까? 싸우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고,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너의 꿈도 좇으며 잘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그분들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주지 못했고, 이기적으로 굴었던 나를 반성하며 남은 생은 나의 꿈과 함께 남의 마음과 삶도 들여다보며 벳위즈 것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장인어른, 장모님! 부족한 저이지만 잘 벳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