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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남슬롯 Mar 09. 2025

'왜'강남슬롯 '어떻게'

<나는 강남슬롯 성형미인이 되었나 임소연, 2022 돌베개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라는 책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성형외과에서 직접 일하면서 참여관찰을 한다는 것은 참신하긴 한데 굳이 왜 본인이 강남슬롯을 받아야 했을까? 강남슬롯을 받는 이들을 애써 비난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굳이 왜 예뻐지려고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은 늘 해왔었기 때문에 사실 그 동기를 굳이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강남슬롯가 '왜' '굳이' 본인이 강남슬롯을 받은 것인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덮을 때까지 찾을 수 없었다. 아. 그건 당연한 것이었구나. 예뻐지려고 한거지. 그것 외에 어떤 동기가 있었겠나. 그런데 그런 동기가 왜, 뭐가 어때서, 라고 책 전체에서는 말하고 있다. 사회적 압력에 굴복해서건, 정신적 문제 때문이건, 순수히 본인이 원해서이건, 강남슬롯이 그 해답이 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선택한다면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것이 타인에게 쉽게 평가받고 대상화될 수 있는 당위성이 어디에 있느냐고.

다만 강남슬롯는 '왜' 보다 '어떻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 그래서 제목이 '왜'가 아니라 '어떻게'였구나. 강남슬롯이 늘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몸에 가하는 일종의 폭력(!)인 만큼, 그 선택을 신중히 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선택에 따르는 위험과 부작용,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가 아닌 상황에 따르는 대처와 '조정'을 돕는 경험과 정보의 공유와 담론이 학술적으로, 공적인 토대 위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성형외과의 의료사고나 분쟁에 대해 '우리들이 순진해서 이런 상황에 대처를 잘 못하고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곤한다'는 한 강남슬롯의 한탄에 대해 강남슬롯는 강남슬롯의 '순진함'보다 '불순함'으로, 언제든지 강남슬롯이 잘못될 수 있다는 의심과 불순함으로 무장해야 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윤리나 선의로는 부족하다. 강남슬롯와 환자 모두에게 자원이 될 수 있는 더 많은 사물과 더 많은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 수술 전후 상태를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과 환자가 직접 읽어보고 서명한 수술 동의서는 기본이다. 여기에 추가로 수술 후의 환자 만족도와 수술 결과를 객관화하고 평가하는 지표, 미용 같은 개인적 요구나 또 다른 사회적 요구를 의학적으로 재정의하고 탐구하는 분야, 그리고 수술 후 환자의 경과와 회복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인력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제도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성형외과강남슬롯가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고, '순수한' 의학으로 이 인력과 제도를 모두 대신할 수도 없다. 성형의 세계는 지금보다 더 불순해져야 한다.'

글쎄.. 이런 것들은 다 규제인데, 규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 나라의 강남슬롯 시장이 성장해온 배경 중 하나인데 이런 것들을 보건당국이 요구한다면 과연 관철될 수 있을지, 요구하여도 관리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학회의 자율적 개선 활동 중 하나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강남언니'같은 비교 앱을 통해서 경쟁의 원리에 의해 도입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보다 넓은 의미로 의학이 보다 '불순해져야' 한다는 개념에 공감한다. 의학에 덧씌워진 '인술'이라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더 많은 의심을 가지고 좀더 정량화하고 평가되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의료인들이 현장에서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는 각종 인증제도, 평가제도 등이 그런 것일게다. 사실 이런 것들이 진료로 이미 번아웃된 위에 얹어진 또 하나의 업무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인데.. 문제는 비용일 것인데, 이 모든 비용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학을 위해 필요하다는 동의가 이루어진다면.. 사실 소위 잃어야 하는 '신뢰비용'에 비하면 큰 비용이 아닐지도 모르니 말이다.


"강남슬롯은 가장 대중화된 트랜스휴먼 기술 중 하나다. 많은 이가 강남슬롯을 염두에 두고 인간 향상 기술을 비판한다. 인간 향상 기술은 쉽게 치료 대 향상 논쟁에 휩싸인다. 많은 인간 향상 기술이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나 결국은 향상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치료와 향상의 경계는 모호하고 인간의 욕망은 대개 치료에서 멈추지 않는다."

강남슬롯가 성형외과의 '임 코디'로 일하면서 강남 성형외과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화장을 하고 클럽에 가며 만족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온전한 성역할을 해냈을 때 깊은 만족감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형화된 성역할에 대한 기대, 또는 외모에 대한 관심과 선호가 강남슬롯와 우리를 포함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관념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얘기니까. 그가 성형대국이 된 우리나라에서 여성을 향한 억압과 외모강박을 유발하는 사회적 압박에 눈을 감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성역할과 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 누군가가 인간향상기술을 이용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선택을 할 때 그 선택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그 선택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논점이 전반적으로 신선했고 의료인 입장에서는 반가운 내용이었다. 다만 성형외과계를 비롯한 미용의학산업의 발전이 낳은 강남슬롯 간의 소득불평등, 그로 인한 필수의료의 붕괴, 그리고 이어진 의정갈등 속에 이 책을 읽자니 약간 마음이 착잡하기는 하다. 청담성형외과 (책 속에 나오는 강남슬롯가 일하던 병원의 가명이다)에서는 이 업의 맥이 이어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우리 과는 당장 내년에 뽑을 펠로우가 없다. (올해도 간신히 뽑았고 대부분 다른 병원은 펠로우가 없다) 트랜스 휴먼 기술에 대한 고민도 결국 수요와 지불의지가 충분한 영역에서의 고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기술에 접근이 어려운 계층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문제 역시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내가 그래서 이 책을 처음에 읽고 싶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의미있는 고민이지만, 끝까지 공감하기는 어렵구나. 그래도 즐거운 독서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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