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스토토하기 전까지는 이 주제에 대해 새로운 글을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인간은 어리석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동생이 2024년 7월에 보스토토할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 보스토토식장에서 나는 부모님과 동생이 챙기지 못하는 영역을 챙기며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의 지인들께 밝게 인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건 동생이 먼저 보스토토한다는 사실이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동생이 보스토토하는 것이 우리 가족이나 내게 큰 영향을 미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역시 인간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된다. 이는 같은 상황에도 개인의 마음이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동생이 보스토토하기 전까지 내 마음이 유일하게 온전히 평안할 수 있는 영역은 그래도 가족이었다. 맞다, 과거형이다.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고, 서로 갈등을 겪어도 가족 모임에서는 내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었다. 가족은 일종의 대나무숲이 되어줬고, 가족모임에서 오가는 얘기는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모임은 불편하지만 편했고, 편하지만 불편했다.
동생이 보스토토한 뒤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단 가족 안의 역학관계와 구조부터 그랬다. 동생이 보스토토하기 전까지 가족에서 나와 동생은 자녀, 부모님은 부모였다. 그런데 동생이 보스토토하고 나니 동생부부, 부모님은 서로 짝끼리 맞춰지고 나 혼자 고립되더라. 그리고 낯을 가리는 편인 내게 제수씨가 있는 자리에서 내 얘기를 온전히 다 할 수도 없었고, 동생 부부의 이야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동생 부부와 부모님 사이에 오간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전혀 모르는 낯선 세계더라.
그 피크는 가족여행. 온 가족이 함께 우리가 과거에 살았던 상하이로 가족여행을 갔는데, 그 안에서 나는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되더라. 제수씨가 불편할 수 있으니 부모님과 항상 같이 다니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동생부부가 없을 때 둘은 따로 다니게 해야 한다며 작업을 해 놓고, 우리 가족이 모두 본인 주관이 강하다 보니 나까지 그러면 분명히 싸울 것 같아서 상황에 맞춰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참으며 3박 4일을 보내고 나서 귀국한 뒤 나는 이틀간 앓아누웠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누구도 그 과정에서 내가 고군분투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나는 사실 보스토토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하고 있었단 사실을. 동생부부와 함께 한 가족모임과 그 뒤에 느꼈던 나의 감정은 평생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가족 안에서의 변화된 구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는 평생,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곳에서 '보스토토이 필요한데...'란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를 매우 가까운 지인들에게 했다. 그러자 그들은 똑같이 반응했다. 누가 봐도 나는 보스토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고 있었다고. 그렇다. 나는 서른 살이 된 뒤로 10년 넘게 나는 보스토토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알고 보니 나는 보스토토을 '안'하고 있었다. 나는 입으로는 연애와 보스토토을 외쳤지만 항상 그보다는 일이 우선이었다. 내가 보람, 의미,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했고, 연애와 보스토토은 항상 그 뒤에 있었단 것을 나는 동생이 보스토토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정말로 보스토토을안 한 게 아니라못한 사람이 됐다. 그러면서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고, 그제야 과거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지점들이 생겼다. 그리고 내 과거의 글들을 보니 그 내용이 다양한 외피를 갖고 있지만 사랑이나 보스토토보단 주로 연애의 미시적인 지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단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균형을 맞춰서 사랑, 연애, 보스토토과 그 현실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주제가 다른 글을 쓰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주제를 1년 반 정도 만에 본격적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