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Blind라는 Netflix 예능이 있다. 이 예능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가림막이 있는 개인 방에 들어가 얼굴을 보지 않고 10일 동안 합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두 사람이 상대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청혼을 하고, 그 뒤에 함께 여행을 떠난 뒤 약 1개월 동안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말이 안 되는 설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어 미국에서만 2020년부터 지금까지 8개 시즌이 제작되었고 영국, 일본, 브라질 등 여러 국가의 버전으로도 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예능을 보는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당연히 그 안에서 맺어진 사람들이 결혼까지 성공적으로 가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그들이 POD라고 불리는 방에서 에볼루션 바카라 대화들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출연자들이 서로를 보기 전에 나누는 대화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결혼까지 생각하다 보니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얘기를 쏟아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 과정에서는 vulnerability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Vulnerability는 '취약성'이라고 번역되는데 이 번역은 원어의 느낌과 많이 다르다. 사람관계에 있어서 vulnerable/vulnerability는 '나의 부족한 점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확하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누군가에게 청혼을 하기 전까지는 '에볼루션 바카라한다'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 않지만 상대를 에볼루션 바카라하는 것 같다고 말할 때는자신이 상대에게 자신의 부족한 면까지도 다 보여주게 된다며 vulnerable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프로그램을 자세히 시청하다 보면 출연자들은 '에볼루션 바카라'이란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에볼루션 바카라합니다 고객님'이라는 표현을 상담사가 사용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에볼루션 바카라'이란 표현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한 유튜브에서 이혼사건을 많이 담당하는 변호사는 '결혼은 에볼루션 바카라이아니라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된다'라고 하더라. 이게 무슨 말인가? 에볼루션 바카라과 애정은 다른 것이란 말인가? 이 말은 최소한 그 변호사는 에볼루션 바카라과 애정을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단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에볼루션 바카라'이란 말이 너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에볼루션 바카라'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표현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 쉽게 사용하지 않곤 한다.
내게 '에볼루션 바카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로 다가왔다. 내가 처음으로 상대를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좋아했던 상대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김은영'이란 친구였고, 4학년 때는 '최주희'라는 친구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은 '쬐끄만한 게 무슨'이라고 할지 모르나 당시에 나는 나름 진지했다. 그리고 그 기억도 강렬하다. 두 사람이 살았던 집의 위치도 지금까지 기억날 정도니까. 그리고 4학년 때 호감을 가졌던 친구의 경우 저녁에 어머니 심부름으로 슈퍼를 갔다 올 때면 그 친구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를 살펴봤던 기억도 선명하게 남아있고, 소풍을 다녀온 뒤에 인화한 필름에서 그 친구 사진만 하나 가득 있어서 어머니께 크게 혼났을 정도로 나는 그 친구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게 에볼루션 바카라이었을까? 아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내 안에서 올라오는 남성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끌림과 호감이었을 뿐이지 그걸 에볼루션 바카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에볼루션 바카라이라면, 인간이 하는 에볼루션 바카라과 동물들이 하는 에볼루션 바카라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동물들도 수컷이 화려한 외관으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유혹에 성공을 하며 2세를 잉태하게 되지 않는가? 그걸 에볼루션 바카라이라고 한다면 인간사회에서도 잠자리로 가기 위해서 상대를 거짓말로 유혹하는 것도 에볼루션 바카라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에볼루션 바카라일 수 없다.
우리는 '에볼루션 바카라'이란 표현에 남녀관계를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에볼루션 바카라'은 다른 관계에서도 사용되고, 그에 따라 에볼루션 바카라은 여러 종류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관계나 방식과 무관하게 '에볼루션 바카라'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관계와 방식에서 나타나는 에볼루션 바카라의 핵심은 결국 '이타심'이다.기본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이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타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일이다. 이는 이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온갖 수난을 다 겪고, 몸이 아파가면서까지 돈을 벌어와서 그 돈으로 사 온 장난감을 가지고 아이가 재미있게 놀거나 맛있는 음식을 아이가 먹으며 행복해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인간의 자기 중심성과 모순되는가? 아이가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가 먹게 하려고 '엄마는 자장면 싫어'라고 말하는 노래의 가사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에볼루션 바카라이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이타심'이 발현되는 것을우리 주위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본인도 먹고사는 게 쉽지 않으면서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기부하는 것도, 평생 모은 돈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것도 인간의 자기 중심성에 비춰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행동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이타심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규모와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남녀관계에서도 두 사람이 상호 간에 '이타심'을 발휘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에볼루션 바카라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의 감정이 진심으로 에볼루션 바카라인지 여부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겉으로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내면에서는 다른 행위로부터 기인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남녀관계에서 상대의 이타심을 무제한적일 것을 기대해서도 안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이타심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것 자체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상대를 진심으로 에볼루션 바카라하는 사람은 그 기대를 할 수가 없다.
A는 연봉이 3천만 원 전후인 중소기업에 다니고, B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B의 생일에 A는 분위기가 좋지만 저렴한 식당을 예약하고, B가 좋아한다고 생각한 스타일의 가방을 준비했는데 이에 대해 B가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인데 나를 에볼루션 바카라한다면 조금 더 좋은 식당에서 식사하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가방을 사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따진다면 B의 반응은 에볼루션 바카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A가 연봉이 10억이라면 이 상황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까?
마음이 있는 곳에 돈이 가게 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상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넘어 에볼루션 바카라한다면 상대를 위한 것을 상대의 생일에 해주고 싶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B의 반응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반대로 B는 상대의 마음은 보려 하지 않고 물질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에볼루션 바카라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그리고 이 문제는 디테일들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A가 예약한 저렴한 식당이 A와 B가 평소에도 자주 가던 곳이었다면, 그리고 B가 좋아한다고 생각한 스타일의 가방이 이미 B가 자주 가지고 다니던 가방과 똑같은것이었다면 A의 연봉과 무관하게 이는 이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닐 수도 있다. 가던 식당이니까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소 상대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가방을 선물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하지만 만약 A가 연봉이 3천만 원 전후인데 학자금 융자받은것도 갚고 있는 상황이고, 전세금 대출도 받아서 연봉의 절반 정도를 대출금을 상환에볼루션 바카라 데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모든 상황은 또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B의 반응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A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힘든 상황인지를 모르고 B가 식당과 선물에 실망했다면B는 A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생일을 숙제처럼 넘기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반면에 A의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했다면, B는 A를 에볼루션 바카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도구처럼 생각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는 상대에 대한 이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상대가 자신의 주어진 현실에서 최대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아봐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A가 연봉이 10억이라고 하더라도 이 모든 구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연봉이 10억이라면 그 돈을 버는 만큼 바쁘고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연봉과 무관하게 생일을 챙기는 것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신의 연인의 생일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바빴고 이를 B가 알았다면 그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는 B가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B는 생일을 중요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A가 본인에게 생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면 A가 이기적인 것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더라도 상대가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 이타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가 에볼루션 바카라으로, 이타심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지 여부는 두 사람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편적인 상황만 놓고 A에 대한 B, 그리고 B에 대한 A의 마음이 에볼루션 바카라인지 여부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를 에볼루션 바카라하는지가 명확해지기 위해서는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직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공개한 상황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일정 수준 이상 있어야 한다. 만약 A가 자신의 정확한 연봉과 대출상황을 B에게 알려주면 상대가 본인을 만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그 사실을 숨겼다면 B가 그 상황을 배려하지 못한 게 에볼루션 바카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상황은 상대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상대는 자신을 이타심을 갖고 대해주기를 바라는 건 과도한 기대가 아닐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에 인간의 이타심은 일방적일 경우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내가 상대에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해주는데 상대는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지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상대에 대한 인간의 이타심은 연애 초기에는 절대로완벽할 수 없다. 이는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상황에서는 상대에게 맞춤으로, 상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오랫동안 지인으로 알다 연애를 시작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연인 A와 지인 A는 상대에게 기대하는 게 달라지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두 사람이서로를 에볼루션 바카라한다고 하기는 힘들다. 연애 초기에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성으로써 호감을 느끼고, 좋아하고, 더 알아가고 싶은 상황이라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연인간의 에볼루션 바카라은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씨앗이 뿌려지고 커지는 것이지, 연애를 시작하면 곧 에볼루션 바카라에 '빠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부모의 에볼루션 바카라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부모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다른 종교의 성인들과 기독교의 예수가 다른 부분 역시 예수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자기중심적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에볼루션 바카라이 가장 위대한 에볼루션 바카라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 목숨을 오롯이 다른 존재를 위해서 포기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그렇게 에볼루션 바카라하는 건 일반적인 인간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우리는 어떤 관계에서든지 자신과 상대가 그러한 한계를 갖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자신이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할 필요도 없고, 상대가 그러지 않은 것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상대가 내게 이타적인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상대의 그러한 모습에 항상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