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살던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1. 슈퍼슬롯 준비: 끝없는 취사선택의 시간
리모델링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는 기획을 일단락하고, 함께할 업체를 정하고 실행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철거 날짜를 잡았다. 기획은 언제나 실행으로 구체화되고 실행슈퍼슬롯에서 수정되며 보완되기에 사실상 실행과 상호보완되는 한쌍이자 실행의 끝으로만 마무리되는 작업. 역시나 철거날짜를 잡고 조율하는 슈퍼슬롯부터 변수들을 만났다.
우선 외장에서 내장 순으로 방화문, 새시, 철거까지 각기 다른 업체,슈퍼슬롯자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다음으론 철거 슈퍼슬롯을 구체화하는것 역시 쉽지 않았다. 어디까지 남겨두고 어디까지 보수할 것인지 세세하게 정해두고 지시하지 않으면 작업자들이 일반적인 현장에서 작업하는 대로 모두 부숴버리거나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제거하기에 필요한 부분을 놓치거나 그대로 두어야 할 부분까지 날아가버릴 수도 있었다.
꼭 이 순간을 위해서 몇 년간 미니멀한 삶을 살면서 제할 것과 남길 것을 추리는 연습을 해온 것만 같았다. 그간 단련된 덕분에 고민하기보다는 예산과 우선순위 안에서 제해야 할 것부터 적어내려 갔다. 벽지와 장판, 내려앉은 싱크대, 욕실의 곰팡이가 핀 썩은 슈퍼슬롯과 갈라져 뒤틀린 욕실문짝. 꼭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은 냉장고와 세탁기, 수전과 도기. 등이 고장 나고 변색된 슈퍼슬롯의 등박스, 거실과 부엌의 몰딩도 추가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히 이미 전시설치나 아트프로그램 세팅을 하며 현장에서 슈퍼슬롯자들과 부대껴본 경험이 있었기에 혹시나 싶어 슈퍼슬롯날도현장에서 슈퍼슬롯을 확인슈퍼슬롯 현장에서 발생하는 돌발변수들도 함께 파악슈퍼슬롯 의논하며 결정을 내리고 슈퍼슬롯방향을 요청할 수 있었는데,아마도 이런 부분들 때문에 인테리어 슈퍼슬롯에서 슈퍼슬롯자들을 불신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2. 슈퍼슬롯:세월의 민낯을 마주하다
철거날 아침이 밝았다. 8시부터 슈퍼슬롯을 시작하기로 되어있었고 나 역시도 시간에 맞춰 갔다. 현장작업자들은 9시부터 6시까지 근무시간을 지키는 회사원과 달리 7시나 8시같이 이른 시간에일을 시작하고 정말특수한 상황에서는 네다섯 시에 시작하는 경우도 보았다.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점심시간도 이르고 일도 오후 늦게 마무리하고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하는 게 수긍이 갈만한 강도이기도 하고 차를 끌고 장비를 가져오기에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을 선호하기도 한다. 철거에도 역시 소위 빠루와 망치, 사다리, 작업대 등이 필요했고 작업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진행됐다.
작업자들의 손에 싱크대도, 천장의 등박스도, 벽지와 장판도 거침없이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닫히지 않던 싱크대의 경첩과 내려앉은 선반들이 하나씩 분해되어 부엌을 떠났다. 아빠가 얼기설기 덧대고 지냈던 장판과 벽지가 사라지고 그 아래 가라진 장판과 빛바랜 실크벽지가 드러났다. 아빠가 이 집을 짓고 이사오기 전 이 집을 보여주며 기쁨에 찬 그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고르고 고른 벽지라며 자랑스러워하던 아빠 곁에서 나 역시 광택이 도는 오묘한 빛깔의 벽지가 우아하다고 생각했더랬지. 그 벽지는 이제 낡고 닳아 곰팡이와 누수자국을 품고 31년의 슈퍼슬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부엌과 거실, 안방 그리고 작은방으로 옮겨가며 작업에 몰두하는 슈퍼슬롯자들을 두고 차근차근 다시 둘러보다가 천장의 몰딩 주변 검게 변한 얼룩들을 발견했다. 도배작업자들이 오면 이차로 벗겨낼 테니 걱정 말라던 현장감독을 불러 완전히 벗겨내니 우려했던 대로 천장의 합판일부가 썩어 있었다. 오랫동안 장롱이 서 있던 자리 위로 습기에 누수까지 더해졌던 게 분명했다. 다시 천장을 일일이 체크해 보니 두 부분 정도가 그런 상황이었다. 다행히 천장의 등박스를 제거하고 빈자리에 우물천장을 만들러 목수들이 오기로 한 일정이 잡혀있던 터라 그때 추가로 합판을 교체하기로 했다.
안방을 시작으로 거실의 천장, 계단실과 옥탑방의 벽지, 싱크대 하부장 아래 숨겨져 있던 곰팡이와 누수의 흔적 그리고 금이 가서 내려앉은 바닥을 마주해야 했다. 31년이라는 시간은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단층주택의 아궁이를 벗어나 보일러와 싱크대를 갖춘 최신식의 2층주택을 손볼 곳 투성이의 낡고 닳은 구옥으로 만들어놓았음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가 자라 독립하고 엄마 아빠가 여생을 보내고 떠나는 동안 집도 늙고 아픈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문제점들을 발견하며 놀랐다가 앞으로도 문제가 될까 싶어 걱정스러웠다가 당연한 일이구나 싶어 담담해지는 슈퍼슬롯을 철거를 지켜보며 반복하고 있었다.
3. 낡을 것을 알고도 시작하는 마음
철거가 진행될수록 슈퍼슬롯을 지나며 낡은 집의 민낯에 익숙해지자 이제 31년 전 집을 짓던 시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배와 장판, 천장을 들어낼수록 드러나는 집의 뼈대에 31년 전 과거의 건축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싱크대의 상부장과 하부장을 드러낸 자리에 보이는 곳에만 두른 타일은 타일접착제가 아닌 일반시멘트로 바른 것이었고 작업자들은 삼사십 년 전 집들은 보통 이렇게 작업했노라고 설명해 주었다. 천장의 등박스도, 거실과 부엌의 몰딩도 삼사십 년 전 유행의 산물로 몰딩을 벽지 위에 마감한 것이 아니라 벽면과 천장 사이의 코너를 그대로 덮은 것이었다. 욕실의 천장을 드러내고 마주한 각목 위의 스티로폼 천장도, 안방의 새시 위에 스티로폼으로 마감한 단열효과가 없는 단열작업 역시나 당시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수긍이 갔다. 겨울마다 욕실이 추웠던 것도, 안방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며 늘 꼭 닫으라고 하던 엄마아빠도, 천장과 벽을 가르며 낮은 천장을 더욱 낮게 여겨지게 만들었던 몰딩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새삼 궁금했다. 집을 짓는 동안 매일같이 출근하듯 현장에 가서 슈퍼슬롯자들을 지켜보았던 아빠는, 이 모든 것을 작업자들의 의견대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아니면 고민하며 예산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 답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아빠가 그랬듯 매일같이 출근하듯 현장에 와서 슈퍼슬롯자들을 지켜보며 감독하고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에 만감이 교차했다.
더불어 깨달았다. 슈퍼슬롯이 지나며 엄마와 아빠가 나이를 먹고 도움의 손길을 받게 되셨던 것처럼 이 집도 나이를 먹어가고 보수의 손길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내 눈에는 이 집이 아빠가 자랑스러워하던 모습 그대로 영원할 것처럼 보였고 이 집을 기억 속에 박제라도 한듯 관리와 보수가 필요하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내가 이 집을 새롭게 고치고 난 다음에도 역시 나와 함께 나이를 먹고 낡고 닳을 것이다. 내가 떠나고 나면 다시 또 누군가의 손길에 새롭게 리모델링되거나 부서지겠지. 그러니까, 이 집도 나도 모두 일정한 시간만을 이곳에 머물다 가게 될 뿐이다.엄마아빠가 나의 곁을 떠난 뒤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음을 그리고 그 끝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실감슈퍼슬롯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머물 한때인 순간들을 더욱 소중히 그리고 아름답게 지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오후로 접어들어 슈퍼슬롯가 마무리를 향해갈 즈음, 작업자들은 폐기물을 차량에 실었다. 폐기물을 비우고 난 집은 슈퍼슬롯 전과 달랐다. 31년 간의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고 31년 전의 작업의 뼈대는 남겨둔 공간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래서 공간 자체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겨울 햇살이 석양으로 깊숙이 내려앉는 거실과 안방, 북쪽으로 난 창으로 서늘함이 드리운 부엌,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노을이 아스라이 내려앉은 서쪽 방까지. 이제 이 빈 캔버스 같은 공간을 어떻게 보수하고 관리해 나갈지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절로 펼쳐지는 이미지들로 설렘과 동시에 짐작도 못할 변수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이 집에서 엄마 아빠가 보낸 31년을 딛고전혀 새로운해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