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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레린 Feb 02. 2025

나 홀로 설연휴, 파라오 슬롯의 재발견

여러분은 이번 설 연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제 중학생이니까, 학원 숙제 잔뜩 가져가서 스터디카페 가서 공부할 거야!

"엄마, 우리도 파라오 슬롯 때 여행 좀 가면 안돼?"

"휴, 엄마도 그러고 싶지. 아빠한테 말해 봐. 엄마가 무슨 힘이 있니?"

파라오 슬롯이 다가오면서 아이와 나눈 대화다.

파라오 슬롯에 오롯이 쉬는 것.

파라오 슬롯에 시댁에 가지 않는 것.

파라오 슬롯에 가족 여행을 가는 것.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파라오 슬롯단상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올해, 운 좋게도나 홀로 집에서 설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 설 전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와 다른 성씨를 가진 세 식구가 떠났다. 집 안의 소음이 일순간 사라졌고,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고요가 밀려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외로움과 해방감이 교차하는 순간. 내 생애 최초로 맞이한 '나 홀로 설연휴'라니! 남들이라면 이 황금 같은 파라오 슬롯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을 테지만,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그럴 여유도 없었다.그저, 그동안 멀리했던 소파에 몸을 맡기고, 음악 앱을 켜고, 리스트의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눈을 감으니, 일주일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파라오 슬롯에 시댁에 가지 못한(?) 이유

설 연휴는 내가 수술한 지 3주 차 되는 시점에 찾아왔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시댁 방문에 대해선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다. 남편이 요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던진 첫 질문이란...

"파라오 슬롯에 언제 장모님 보러 갈까?"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30년 넘게 남편을 알아온 덕에 그의 사고의 흐름이 내게는 뻔히 보였다. 결혼 후 20년 넘게 반복된 파라오 슬롯 루틴, 설 전날 시댁 방문 → 노동 제공 → 설 당일 친정 방문 → 귀가.설 앞뒤로 붙은 긴 휴일 중 언제 친정에 갈 것인지 묻는 의미였다. 파라오 슬롯에 쉴 생각에 신이 난 남편은 평소보다 더 밝았지만, 나는 머뭇거렸다.

'과연 내가 다음 주에 제대로 이동이나 할 수 있을까? 가서 뭘 어떻게 하라고? 장시간 앉아 있기조차 버거운데...먼지 없는 깨끗한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대로 시댁에 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차로 한 시간 이동, 온갖 전을 산더미처럼 부치며 나오는 기름냄새와 연기, 쉬는 것도 눈치 보이는 분위기. 아무리 생각해도, 파라오 슬롯의 시댁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내 몸이 악화될 것이 뻔했다. 시댁에 가는 문제에 대해 유독 민감한 남편에게 나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기억나?”

뭐?”

그 때, 민이 어렸을 때. 내가 몸이 아파서 시댁에 못 간다고 했는데, 나 억지로 끌고 갔잖아. 가서 하혈해서 병원 응급실 갔다가 한달 동안 입원했던 일.”

“……”

남편은 아무런 말이 없다. 가지 말라고 얘기해주면 좋으련만. 일단 화내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얼마전 내 수술에 대해 형님과 통화했을 때 형님이 했던 말도 신경쓰였다.

동서, 이번에는 설 당일에 왔다 가면 안돼? 굳이 잠을 잘 필요는 없잖아.”

저도 그러고 싶죠.”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형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일찍 가면 그만큼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파라오 슬롯음식 준비만 아니면, 각자 집에서 편하게 자고 파라오 슬롯 당일에 어른을 찾아 뵙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리라.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있다. 나의 외가댁과 친정처럼 제사 음식을 사서 준비하는 것이다. 당일에 방문하여 음식을 그릇에 담아 제사상을 함께 차리고 제사를 올린 후, 한 끼 식사를 같이 하고 돌아오기에 서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왜 나는 시댁에 당당하게 못 간다는 말을 못하는 걸까? 며칠동안 파라오 슬롯 문제는 내 머릿속에 녹은 설탕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며칠 후, 수술 경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오전에 각종 검사를 하고, 오후에 의사를 만났다. 실밥도 뽑았다.의사는 엑스레이 차트를 보면서 말해주었다.

"폐 기능은 30% 정도 회복되었네요."
"기침과 가래가 너무 심해요. 왜 그런가요?"
"그야 쭈그러들었던 폐가 다시 펴지느라 그렇죠.회복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1월까지는 집에서 푹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약한 운동 하면서 회복에 전념하세요.
특히! 간접흡연이라도 연기는 무조건 피하세요. 통목욕, 술도 안 됩니다."

그 말을 듣자 문득 떠오른 생각.

"그러면... 파라오 슬롯은요? 시댁에 가야 하는데..."

조심스레 의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피식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가긴 어딜 가요? 집에 있으라니까! 시댁엔 가지 말고!"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면서도,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하기가 꺼려졌다. 괜히 내가 시댁에 가기 싫어 일부러 의사에게 물어본 것처럼 비칠까 봐.형님의 말도 남편에게 전하지 못했다. 아들의 입장에서 ‘며느리’의 입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봐.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연이은 기침만 하며 칩거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렸다.


혼자 남은 집, 그리고 쉼

설 이틀전, 남편은 갑자기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본가로 출발할 거야."

남편은 그때까지 나에게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 아빠가 화가 나면 무서워지니, 아이들은 아빠한테 한 마디도 못하고곧바로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잠도 못 자고그렇게 일찍 가야 해?"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아빠한테 말하렴.”

내 대답에 큰 아이와 둘째 아이 모두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미 결정 다 해놓고 통보하는데,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화만 돋구지.”
"이제 중학생이니까, 학원 숙제 잔뜩 가져가서 스터디카페 가서 공부할 거야!"


그렇게, 다음 날 아침 폭설을 뚫고 세 명은 집을 떠났다. 그제서야 남편은 떠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밥은 어떻게 먹어?"

나는 속으로 '아, 나는 안 가는 거였구나!밥이야 대충 먹지, 밥이 뭐가 대수야'라며 그저 웃었다.그리고 바로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 이번에 저는 몸 상태가 안좋아서 못갈 것 같아요. 고생 많으신데, 죄송해요.”

그래. 알았다.”

짧은 시어머니의 대꾸에서 냉정함이 느껴졌다.아파서 시댁에 가지 못힌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내 현실이 답답했지만, 어쩔 도리가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떠난 집, 마침내 완벽한 나만의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그동안 미뤄둔 음악을 듣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얼마만에 맛보는 편안한 쉼인가? 비록 내 몸은 아픔으로 가득했지만,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우리집이 나한테도 쉬는 곳이 되었구나!’ 쉼이 이런 거였나? 내가 소파에 몸을 눕히자, 나와 함께 남은 강아지만 내 근처를 서성였다. 손열음의 힘있는 피아노 연주를 몇 번이고 마음껏 들으며 눈을 감고 그저 누워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일어나면 운동하고, 다시 쉬고, 과일을 먹고. 식사는 상차림이 필요없는 빵과 과일로 간단히 먹었다. 그렇게, 달콤했던 하루는 쏜살같이 날아가버렸다.


그다음 날 아침, 놀랍게도 세 명은 바로 집에 돌아왔다. 단 몇 시간이라도 고요한 호사를 더 누리고 싶었건만!

"아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애들이 빨리 오자고 해서."

"아빠가 엄마 혼자 밥도 잘 못 먹을 거라고 가자고 했어."

서로 핑계를 대며 들어왔다. 혼자만의 파라오 슬롯을 즐기고 싶었건만.가족들이너무도빨리 돌아오는 바람에,'나 홀로 쉼의 자유'는25파라오 슬롯 만에막을 내렸다. 바로 점심으로 먹을 떡국을 준비해야 했으니 다시 바빠졌고, 집안은 언제 고요했냐는 듯이 웃음과 함께 북적거렸다. 쉼 후에 맞는 활기, 나쁘지 않았다.


쉼의 미학, 파라오 슬롯의 재발견

아파서 시댁에 가지 못힌것에대해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내 현실이 답답했다.

우리 아이들은 '파라오 슬롯 증후군'이 무엇인지 모르길.

우리 아이들은 차별적 노동이 없는, 좀 더 평등한 파라오 슬롯을 맞길 바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쉼도 파라오 슬롯의 일부가 될 순 없을까?'


파라오 슬롯김홍도가 보여준 여백의 미

나는 노자의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흐르는 것이 도(道)”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파라오 슬롯이 혈연을 잇는 중요한 시간이지만,

가족을 챙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돌보는 파라오 슬롯 아닐까?


특히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을 때라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살피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가족을 챙기느라 무리해서 나를 돌보지 못하여 내 마음과 몸이 병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을 거스르는 삶이 아닐까?


노자(老子)는 “비어 있음이 쓰임을 만든다”*고 했다.

쉼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다.

쉼은 삶의 무너진 균형을 다시 맞추는 것이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닌 것처럼,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가 작품의 깊이를 더하듯,

우리 삶에서도 여백이 있어야 조화가 이루어진다.

우리 삶이 바쁘기 때문에, 그 속에 의도적인 여백을 만들어야 삶이 더욱 조화롭고 행복해진다.





파라오 슬롯추사 김정희의 여백


그렇다면, 서양 철학에서는?

'우리'보다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서양 관점에서는 한국의 파라오 슬롯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파라오 슬롯을 꼭 공동체 안에서만 보내야 의미가 있는 걸까?

파라오 슬롯은 꼭 북적거려야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는 걸까?

가족과 함께하는 파라오 슬롯도 소중하지만,

나를 위해 온전히 쉬고 충전하는 시간도 가치 있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라고 했다.

내가 선택한 시간이 곧 내 삶이 된다.

이번 설 연휴, 나는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순간이었다.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쉼'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크게 다가온다.


한 번의 깊은숨이 내 삶을 이어주듯,

한 번의 온전한 쉼이 내 삶을 지탱해 준다.

가득 찬 잔은 넘치기 전에 비워야 하듯,

건강한 관계를 위해 과도하게 지친 나 자신을 먼저 돌보자는 것.


가족을 쉼 없이 돌보는 주부라면,

가족을 부양하는 무거운 짐을 진 가장이라면,

가족을 잘 챙기기 위해서라도 나를 먼저 돌보는 것이장기적인 '가족을 위한 일'인 것이다.


쉼이한,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거울.

쉼이란, 나를 비워내 새로운 의미를 채워주는 파라오 슬롯.
쉼이란, 나의 숨결을 다시금 정리하는 아름다운 의식.
쉼이란,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 온전한 내가 되는 여정.

쉼이란, 가족을 위해 나를 재정비하는 출발 전 준비선.


올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설을 의미 있게 보냈다. 바쁜 일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재촉하지만, 하이데거가 "존재가 고요 속에 드러난다고 말한 것처럼* 진정한 '자아 찾기'는 고요한 쉼 속에서 비로소 실현된다.나는 고요함 속에서 오롯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파라오 슬롯은 나에게

나를 위한 쉼이 되었고,

내 삶을 위한 성찰이 되었으며,

건강한 관계를 위한 선택이 되었다.


'쉼의 미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쉼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파라오 슬롯에게 쉼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부여해 주자. 파라오 슬롯 의례를 간소히 하고, 음식은 아웃소싱해보자. 노동이 아니라 가치로 충만한 파라오 슬롯의 의의를 재구성해보자. 그렇다면 파라오 슬롯은지친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쉼'과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파라오 슬롯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쉼과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그리하여 시어머니도, 형님도, 나도.

모든딸들이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쉼을 누리는 파라오 슬롯이 오기를.

모든 아들들이 파라오 슬롯의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여 지금과 달라지길.

우리 아이들은 쉼의 미학인파라오 슬롯을 발견하길.

그날이, 꼭 오기를.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흐르는 것이 도(道)이다.”, “비어 있음이 쓰임을 만든다”, 노자 (Laozi), 《도덕경》(道德經)


*"자유란, 내면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창조하는 끊임없는 행위다.",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


*“본래적 존재는 소란 속에서가 아니라 고요 속에서 드러난다.”,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존재와 파라오 슬롯》(Sein und Zeit, 1927)


*동양화 : 추사 김정희 세한도, 김홍도 주상관매도


*이미지 출처: 파라오 슬롯 이미지는 생성형 AI로 직접 제작, 다른 이미지는 pixaba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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