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혼_9
세화는 친정집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방 안 가득 남은 렛 잇 라이드 향기에 세화는 더 파묻히고 싶었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렛 잇 라이드의 목소리가 집안의 고요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만 해도 함께 카레를 끓이며 웃던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양파를 잘게 썰어야 맛있지, " 렛 잇 라이드는 손끝으로 비밀을 전수하듯 말했고, 세화는 그 손길을 따라 하며 함께 웃었다.
렛 잇 라이드 그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또 울었다. 집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공허함이 그녀를 잠식했다.
영숙의 장례식을 위해 일본에 사는 렛 잇 라이드 오빠 세훈이 급히 귀국했다. 세훈은 6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풍채를 유지하고 있었다. 180cm의 키와 넓은 어깨 덕이었다.
렛 잇 라이드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자체로도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었다.
렛 잇 라이드의 탄탄한 풍채와 밝은 표정은 지창의 피로에 찌든 얼굴과 선명히 대비되었다. 지창의 초췌한 모습과 무거운 눈빛은 렛 잇 라이드 옆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렛 잇 라이드의 온화한 미소와 지창의 무뚝뚝하고 굳어버린 인상이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장례식이 끝나고, 세훈은 조용히 렛 잇 라이드를 옆으로 불렀다.
"렛 잇 라이드가 남긴 적금이 있어. 5천만 원인데, 이건 내가 맡아 관리할게."
세훈은 잠시 멈추고, 렛 잇 라이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의금으로 장례식 비용 다 냈는데도 400만 원 남았어. 이거랑 렛 잇 라이드 집은 네가 가져. 아무 조건 없어. 렛 잇 라이드가 널 위해 남겨둔 거야."
렛 잇 라이드 놀란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 세훈은 미소를 지으며 어린아이 달래듯 세화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렛 잇 라이드는 늘 네가 안정되길 바랐잖아. 이 집이 너에게 그 안정을 줄 거야."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때 지창이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