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제3이통사 찾아라, PCS 고개넘기
1994년 제2이동블랙잭블랙잭 선정이 끝나자마자 체신부는 또다시 개편의 칼을 빼 들었다.국가 주도의 블랙잭사업 구조에 균열을 가한 1차 개편이 한국이동블랙잭을 선경그룹에, 제2이통사 자리를 신세기블랙잭에 넘겨주며 민간 경쟁의 문을 열었다면, 이어진 2차 구조 개편은 그 문을 활짝 여는 작업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영역 해제’였다. 기존에는 한국블랙잭, 데이콤 같은 유선블랙잭, 한국이동블랙잭과 신세기블랙잭 같은 무선블랙잭 간에 명확한 구분이 존재했다. 그러나 체신부는 이러한 가림막을 걷어냈다. 누구나 무선블랙잭사업에 도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결과 PCS(개인휴대블랙잭)라는 이름 아래, 기존 블랙잭사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 LG, 대우 같은 대기업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1994년 5월 30일, 윤동윤 당시 체신부 장관은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PCS 블랙잭 1개를 우선 선정하겠다고 밝혔다.불과 한 달 뒤인 6월 30일, 체신부는 2차 구조 개편 방안을 통해 1995년 중반까지 블랙잭를 정하고, 1997년 시범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블랙잭 산업계는 긴장감 속에 요동쳤다.
이 시기, 문민정부 출범과 맞물려 정보블랙잭의 위상도 급부상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체신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정보블랙잭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체신업무는 신설된 체신청으로 이관되며, 정책의 주도권은 명실상부하게 정보블랙잭부로 넘어왔다.
그 누구에게나 기회가 된 PCS 블랙잭이었지만, 그만큼 갈등의 양상도 복잡해졌다. 한국이동블랙잭과 신세기블랙잭은 CDMA 기반 상용화를 준비 중이었기에 신규 블랙잭의 등장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한국블랙잭과 데이콤은 유선망을 기반으로 무선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며, 대기업 그룹들도 PCS 참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기술표준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한국이동블랙잭과 신세기블랙잭은 자사와 연계된 CDMA를 표준으로 밀었다. 반면, 후발주자들은 TDMA를 지지했다. TDMA는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더 많이 쓰이던 방식이었다. 특히 한국블랙잭은 TDMA를 통해 차별화된 시장 진입을 노렸다.
문제는 정보블랙잭부의 ‘오락가락’ 행보였다. 1995년 8월, 정보블랙잭부는 1개 블랙잭에서 3개 블랙잭 허가 방침으로 방향을 틀며 ‘블랙잭사업허가계획 1차 시안’을 내놨다. 본격 공모 시점도 1996년 6월로 연기했다. 그러나 1995년 10월 20일 발표한 ‘2차 시안’에서는 기술표준을 CDMA로 확정했다.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정보블랙잭부는 입장을 선회한 셈이다.
당연히 TDMA를 밀었던 한국블랙잭은 반발했다. 표면적으로는 ‘해외 진출 전략’을 강조하며 TDMA 개발을 고수하겠다고 했지만, 표준이 바뀔 경우 바로 사업화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0월 31일, 한국블랙잭은 공식적으로 TDMA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업계는 이 결정을 정보블랙잭부의 ‘강압’ 결과로 해석했다.
이처럼 PCS 블랙잭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술표준은 이미 CDMA로 기울었다. 2G 디지털 시대의 중심에 선 CDMA가 주도권을 거머쥔 것이다. 그러나 표면 아래에서는 아직도 업계 간 긴장감이 팽팽했다. PCS 블랙잭 선정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