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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혜린 May 12. 2025

prologue

슬롯생각, 나를 깨우다

나는 철저한 저녁형 인간이었다. 밤을 새워 공부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슬롯생각에 일어나 무언가를 하라는 건 도무지 불가능했다. 학창 시절,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보며 친정아버지는 “우리 혜린이는 잠만 덜 자면 대통령도 하겠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잠이 많았다. 그래서 아빠는 나를 잠보라고 불렀다.

한동안 온 세상이 ‘아침형 인간’ 열풍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저녁형 인간은 게으름의 대명사처럼 여겨졌고, 나 역시 그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일찍 일어나 뭔가 해보려 애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리한 시도 끝에 건강이 상하여 의도치 않게 요단강을 훌쩍 건너갈뻔하고는 그제야 나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마다 각자의 바이오리듬이 있는 거야.’ 그렇게 나는 저녁 시간을 즐기며 오랫동안 나만의 리듬대로 슬롯생각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는 격언은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이득을 보고 기회를 잡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윌리엄 캠던(1551-1623)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개그맨 박명수의“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는 말은 시대와 개인의 상태를 고려한 말로 인기를 얻었고, 내 마음을 충분히 대변해 주는 듯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지난 3월 말부터 슬롯생각 독서를 시작했다. 매일 슬롯생각 4시 45분에 알람을 맞춰두는데, 오히려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진다. 5시 정각에 온라인 줌으로 접속해 각자의 책을 읽고, 6시부터는 함께 토론을 나눈다. 이런 독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역시나 자신이 없어서 혼자만의 관심으로 접어두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 모임의 리더인 지담 작가님이 한 번 더 참여를 권하며 조용히 던진 한 마디가 나를 움직였다.


“이곳은 안전해요.”


평소에 의심이 많은 나는 남의 ‘안전하다’는 말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꼭 직접 돌다리를 여러 번 두드려야만 발을 내딛는 성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마치 슬롯생각 이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부터 선택된 듯한 기분이었다.

3일도 못 버틸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한 달을 넘겼다. 예민하고 결벽증에 가까운 슬롯생각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처음 고양이를 분양받았을 때 수원에 사는 내 막내 남동생은, 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에 믿기지 않는다며 직접 확인하러 온 가족을 데리고 우리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내가 잠보였던 내가 슬롯생각 독서를 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과연 믿으실까?


사실 슬롯생각 5시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 맞춰 6시쯤이면 늘 일어났다. 아이들을 보낸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시 잠들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만큼 잠이 많지도 않았다. 나는 어떤 일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걸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슬롯생각독서도 ‘하면 하고 못하면 어쩔 수 없지 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크게 부담을 갖고 시작하진 않았다. 오히려 힘을 빼고 시작하니 지속할 수 있었던 건지 1달이 넘어가니 작은 성취감이 생겼다. ‘어쩌면 세 달까지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슬롯생각 독서가 늘 즐겁고 쉬운 건 아니다. 지담 작가님의 제안으로 평소 잘 읽지 않던 인문서와 철학서를 접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때가 많다. 이해도 되지 않고, 재미도 없는 책들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날도 있다. 토론 시간에는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한다. 나만 공감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적지 않다. 슬롯생각독서의 멤버들이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같은 온도로 뜨거울 때 그 마음과 그 온도에 혼자 다다르지 못하고 미적지근한 나 자신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면 진공공간에 혼자 들어가 앉아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일 당장 그만둬도 아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롯생각 독서(이하 ‘새독’)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을 무렵, 개인적인 일정으로 열흘간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토론 내용이 궁금했고, 함께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워졌고, 무엇보다 그 슬롯생각의 공기가 그리웠다.

내가 빠진 시간에도 여전히 슬롯생각은 흘러가고 있었고, 그 흐름 속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더 서운했다. 낯설고도 묘한 상실감이었다.


지담 작가님은 늘 강조했다.

“자기 자리는 자기가 만들어야 해요.”

그 자리는 단지 앉는 자리가 아니었다.


슬롯생각 스스로 지켜야 할 ‘내 시간’,

슬롯생각 나를 놓지 않기 위한 ‘내 공간’,

내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한 ‘내 말자리’,

그리고 내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내 존재의 자리’였다.

그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 대신 그 자리를 채워주지 않고, 나의 시간을 슬롯생각주지 않는다.

삶은 결국, 슬롯생각 나를 선택하고 슬롯생각 나를 책임지는 일의 연속임을 그 부재의 열흘 동안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 슬롯생각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오늘 오랜만에 새독 모임에 참석했다.

해보름 작가님이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함께 나눠주었는데, 인상 깊었다.

“현존” — 과거의 경험과 결핍에서 비롯된 무의식 속 ‘에고(ego)’에 갇히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슬롯생각라는 메시지였다.

이에 지담 작가님은 덧붙였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관념에 묶여, 무의식적인 ‘에고(ego)의 나’로 슬롯생각고 있는지, 아니면 의식적인 ‘셀프(self)존재의 나’로 슬롯생각고 있는지를 영민하게 살펴야 한다고.

에고에 갇히면 삶은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게 되고, 지금을 온전히 슬롯생각내야 비로소 미래지향적인 삶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 말들은, 부정적인 기억과 아픔, 슬롯생각 두 손 두 발 묶여 있던 나에게 정곡을 찌르듯 다가왔다. 어딘가에 작게 구멍을 내어 숨구멍을 틔워주는 듯한, 그런 선명한 울림이었다.

새독의 또 다른 한 달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또 다른 설렘과 기대가 내 안에 피어난다.

한 달 뒤,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얼마나 더 ‘알아차림’에 가까워졌을까?

그리고 그 앎이, 삶으로 이어져 실천되고 있을까?

그 많은 궁금함 속에 주저 속에 고민과 생각 속에 한발 나아가지 못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나는 현재를 슬롯생각보기로 했다. 그냥 하기로... 그냥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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