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수아에서 오페드로우조까지(19km)
새벽부터 가랑비가 오기 시작하여멈추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멈추지 않는다. 모두들 떠난 알베르게는어수선하다.청소부눈치가 느껴져 이제 우의를 입고 길을 걷는다.갈리시아 지방은 일 년에 300일은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비는 며칠 째 거의 매일 오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이 도시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가지 중심에 산티아고 39km의 표지석이 나오고 조금 가면 성당이 나온다.아르수아에서 오 페드로우조를 향해 걷는 순례자들은 이제 정말오늘벳 대성당에다 왔다는 흥분과 안도에더욱더서둘러 걷는다.
마을마다 대문 앞에는 곡식 저장 창고인 호레오가 눈에 보인다. 스페인 농촌에서는 호레오 크기에 따라 그 집의 형편을 알 수 있다고 한다.조금 더 가니 호레오를 활용한식당이 있다.걷는 내내 계속 비가 와서 쉬지를못했다.호레오를개조한식당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화장실 앞 커다란 메모가 눈에 띈다.사리아 이후 오늘벳자들이 많아지니화장실이 잠겨있고이용 시 1유로라고 붙어있다. 스페인 사람은 친절한데 관광지가 되어 뭐든 돈이다.
보름 정도 계속 마주치던 78세 미국 노인 피터를 열흘 만에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곤 너무 반가워 손을 잡았다.그동안 얼굴이 더 좋아지고 건강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혼자 왔지만 그의 곁에는 젊은이들이 항상 함께 한다. 정말부럽고대단한 사람이다.그 비결이 무얼까?
'피터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식당 세요는 관심도 없는데 친구가 이 식당 세요 그림이 지구 소풍이라며 세요를 찍으라고 권한다. 나의 이미지를 잘 그려준 친구가 생각났다.
글쓰기 온라인 모임에서 만난 재능이 많은 친구인데 성선설이 맞춤인 듯하고 늘 소극적이었다. 서로글과 사진으로만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오십 중반이 되어도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촘촘하게 붙어있는 마을들을 지난다.카미노 표시가 두 갈래로 나뉘면 우회하는 숲길을 걸었다. 제주 사려니숲길을 걷는 듯했다.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인데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사려니 숲보다 더 울창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유칼립투스 숲길에는 꽃처럼 고운 노란 버섯들이 여기저기 소복하게 피어 있었다. 함께 걷던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던 버섯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송이버섯부터 만가닥 버섯까지' 보슬비가 내리는 순례길에 순례자들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
우비에 장갑까지 완전 방수 차림부터 반팔에 반바지의 무방비형까지. 이제는 비가 와도 바람이 안 불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 페드로우조에 도착한다. 아르카도 피노(Arcado Pino)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오 페드로우조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하는 순례자를 위하여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아, 한국이 멀다!'
그래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하루가 남은 순례자들은 여기서 머물면서 그동안 긴 순례길에 더러워진 몸을 씻고 옷을 세탁하며 마지막 휴식을 한다.오 페드로우조의 알베르게에 한국인들이 많다.
60대 후반 교수 부부께서 공용 주방에서 수제비를 만들어 먹자고 한다. 한국에서 여러 음식 양념을 준비해 오셨기에 가능한 일이다.순례자 정식을 사 먹으려던 우리는 완전 운 좋은 날이다. 네 명이 먹을 밀가루와 감자, 조개, 양파, 배추를 사는데 8유로 밖에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육수와 다시마, 김치 가루에 감자와 조개를 넣어 끓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배추에 소금과 설탕, 고춧가루, 액젓을 버무려 신선한 겉절이를 만들었다. 냄비에 밥도 하여 수제비 국물에 말아먹고 누룽지도 하고 숭늉도 끓여 먹었다.
집 떠나 한 달 반 만에 제일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한국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선배이자 어른이다.
부인은 소녀다운 감성과 교양이,남편은 학식과 겸손이,부부에게는 상호 존중의 다정함이 배어 나는 사람들이다.여유 있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품위 있는 언행이 어른이다.
'저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