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맡겨진 바로벳』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가 익숙한 패턴을 따르거나 작가가 친절하게 배경을 설명해 줄 때 그렇다. 하지만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바로벳』는 달랐다. 배경 지식 없이 책을 펼쳤고 그 순간부터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긴장했다. 어린 바로벳 낯선 집에 맡겨지고 부모는 명확한 설명 없이 딸을 남겨두고 떠난다. 작가의 짧은 침묵 속에서 불안했다. 혹시 학대를 받는 이야기일까? 왜 이 부부는 소녀를 맡았을까?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해 즉각적인 답을 주지 않았다.
바로벳 처음 맡겨진 날, 부인은 소녀의 실수에 “매트리스가 습하다”며 가볍게 넘긴다. 이 부분에서 내 예상이 빗나갔다. 흔히 어른들은 아이의 실수를 지적하고 훈계하기 쉽다. 하지만 부인은 소녀를 탓하지 않았다. 소녀를 배려했던 것이다. 이 집은 내가 슬쩍 예상한 호러물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작가는 건조한 듯 하지만 따뜻함을 곳곳에 배치했다.
부부와 한 계절을 보내는 동안 바로벳는 처음으로 ‘사랑받는 경험’을 한다. 바로벳는 십수 년을 함께한 친부모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킬셀라 부부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낀다. 부모란 무엇일까? 단순히 낳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물리적인 보살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며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보호하는 것이 사랑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는 킬셀라 씨를 ‘아빠’라고 부른다. 이 호칭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다. 바로벳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사랑을 배운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였다. 생물학적 연결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 만들어낸 관계. 그는 소녀의 진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소녀는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책 속에서 한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입 다물기 딱 바로벳 기회를 놓쳐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너무 많아.“
침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던 요즘, 이 문장이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바로벳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작가의 침묵, 부부가 소녀를 배려하며 기다려준 침묵, 소녀 역시 일상에서 알맞은 침묵을 지키며 적응해 간다.
마지막에 바로벳에게서 터져 나온 한 마디 ‘아빠’라는 말까지. 모든 것이 침묵과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바로벳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입을 닫고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 가장 큰 바로벳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짧지만 울림은 크게 남았습니다.
읽는 내내 바로벳 가여웠고 킬셀라 부부 역시 가여웠습니다. 사실 마지막엔 바로벳 맡겨진 그 집에 그냥 살면 좋겠다. 라며 저만의 결론을 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행복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