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수리 맡길 일이 있어 딸과 함께 서비스센터에 간 날이었다. 생각보다 기다림이 길어져 라이브바카라는 지루함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그렇다고 해서 놀만한 게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가방에는 며칠 전부터 쓸모를 다한 종이 쪼가리가 있긴 했다. 그곳에 그림이라도 그려보라며 라이브바카라에게 건넸지만, 초등학교 2학년 정도만 되어도 그릴만 한 그림은 금방 바닥나곤 한다.
이럴 때 난감하다. 나도 심심하긴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해서 의지할 만한 도구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던 찰나 딸라이브바카라는 머리 땋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언젠가 능숙하게 머리 땋기 하는 친구를 보며 부러워만 하는 라이브바카라에게 “저런 건 연습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엄마도 어릴 때 라이브바카라 인형 머리 땋아주면서 알게 된 거야.”라고 말한 적 있었는데 라이브바카라는 그 말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두 갈래를 꽈배기처럼 꼬아놓는 것은 쉽다. 하지만 세 갈래로 기본 땋기 하는 것은 처음 배우는 자들에겐 꽤나 힘든 손기술이다. 게다가 라이브바카라들의 손동작은 느짓하고 엉성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날의 시간은 넘쳐흘렀고, 나는 라이브바카라에게 머리 땋는 법을 알려줬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마음껏 만지도록 허락했더니 라이브바카라는 이제야 재미있는 놀이가 시작됐다는 듯 좋아했다. 라이브바카라는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내 머리를 다뤘다. 작은 손가락이 실처럼 머리카락을 엮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는지 라이브바카라가 잡은 머리칼을 통해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땐 나도 덩달아 뒷목이 뻐근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라이브바카라의 손에 붙잡힌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용실에서 여러 개의 롤을 말아 공중에 붕붕 띄워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90년대에 내 손으로 머리를 땋아주던 라이브바카라인형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인형을 데리고 모여 놀던 그때처럼, 지금 내 머리카락이 라이브바카라의 손에서 또 다른 라이브바카라가 되고 있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예뻤던 인형들이 라이브바카라의 손을 거치며 못생겨지기도 했다.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을 다른 방향으로 빗거나 땋으면 살색의 빈 머리가 드러나는 라이브바카라가 되기도 했다. 머리가 산발이 된 인형들을 린스로 감겨주느라 팔소매는 물에 자주 젖었다. 빗질을 수십 번 해도 회복 불가가 되고 나면 결국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새로운 인형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런 생각들이 나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문득 지금 내 모습이 어떨지 불안해지기도 했다.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모습을 살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내가 잠깐 젊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라이브바카라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우리들의 친구 라이브바카라를 탄생시켰다. 처음은 늘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라이브바카라의 작은 손길, 나의 작은 배려, 어쩌면 작은 배움들이 모여 우리의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라이브바카라는 이제 머리 땋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도 않았고 우린 행복을 향유했다. 땀으로 범벅된 라이브바카라의 손을 잡으며 조물조물 마사지해 주었다. 그 작은 손이 대견해보였다. 나는 언제든 라이브바카라의 손끝에서 또 다른 라이브바카라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그때가 되면 이제는 익숙해진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겠지. 몸은 자유롭지 않더라도 따스한 꿈을 꿀 거야.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