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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y 14. 2025

투게더토토 움직이게 하는 그것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투게더토토병정'이라는 말은 '성품이 강직하고 올곧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쓰이는 의미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로 투게더토토병정을 만나게 되면 부하직원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게 되는데,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서오로지원리원칙만 강조하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원칙을 지키는 업무처리가 결국 효율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아, 투게더토토식의 업무처리를 하는 사람이 조직 내에 꼭 필요하기도 하다.


퇴직 전 근무했던 회사에서 2000년 초에 ERP System을 도입하였다. 그것도 국산이 아닌 ERP의 원조 격인 투게더토토의 SAP사 시스템을 채택하였는데, 그 프로젝트에 관리회계(CO) 모듈러로 참여하였다. 서울의 SAP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숨이 푹푹 나왔다. 프로그램이 어렵기도 려니와 융통성과 빨리빨리를 강조투게더토토 우리나라의 업무환경과전혀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너께서 가급적 프로그램을 손대지 말고 원형 그대로 사용하라는 엄중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더 죽을 맛이었다.


회사 업무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세팅하면서, '어휴 이 투게더토토 놈들' '이 투게더토토병정 같은 놈들' 하면서 욕을 많이 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108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아무리 길어도 또 다리 힘이 펄펄 남아돌아도 절대로 두 칸씩 세 칸씩 오르면 안 되었다. 한 번에 한 칸씩 따박따박 걸어 올라야 했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칸씩 한 칸씩. 절대로 한 번에 두 칸 이상이 허용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옆 계단으로 가려고 하면 그냥 옆 계단으로 옮기면 되는데, 이놈의 프로그램은 그게 허용되지 않았다. 올라갔던 계단을 한 칸씩 한 칸씩 내려오고 나서계단으로 옮겨한 칸씩 한 칸씩 다시 올라가야 했다. 비효율도 그런 비효율이 없었다. 프로그램을 세팅하면서 세상에 이런 비효율적인 프로그램이 어떻게 ERP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팀 내에서도 엄청 비싼 돈 주고 시스템을 도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걷어내게 될 거라고우려투게더토토 목소리가나왔다.


시간이 지나 투게더토토젝트를 시작한 지 일 년 가까이 되었다. 시스템을 오픈할 날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루고 그 근본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휴 이 투게더토토 놈들'이 아니라 '역시 투게더토토 놈들'이 되었다. 부정이 긍정을 넘어 인정으로 바뀌었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니가 잘났다.' 그리고 시스템의 매력에 푹 빠졌다.


ERP는 전사적인 통합시스템이다. 내가 맡았던 관리회계뿐만 아니라, 재무회계, 영업, 생산, 설비, 품질, 구매, 재고, 인사관리까지 회사의 업무 전반을 아우르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만 잘 되어도 안 되고, 어느 한 분야라도 잘못되어서도 안 되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각각의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에러 없이 돌아가려면, 프로그램이 정말 고지식하게 한 계단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가고, 한 계단 한 계단씩 밟고 내려와야 했다. 거기에 요령이나 융통성을 발휘하여 변형을 가져오면 내 분야는 잘 돌아가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문제가 터졌다. 혹은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에 뭔가를 새로 덧붙이거나 뺄 때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단순하게 업무 시스템이 아니라 경영철학이었다. 프로그램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그 철학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고, SAP ERP의 신봉자가 되어 버렸다.


마침내 시스템이 전사적으로 오픈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현업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불편해서 쓰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너의 너무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보이콧은 하지 못하고, 비난의 화살이 프로젝트팀으로 빗발쳤다. '해야 합니다. 하십시오. 그리고 요령을 부리지 마십시오. 요령 부린다고 얼렁뚱땅 처리하면 나중에 더 크게 고생합니다.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옵니다. 정확하게 입력하십시오.' 오너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프로젝트팀 전원이 똘똘 뭉쳐 강하게 밀어붙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평불만이 잦아들었고, 시스템이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양질의 데이터를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회사마다 ERP, ERP 투게더토토구먼!' 하고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회사가 ERP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ERP를 기본 축으로 하여,POP(생산), PS(프로젝트), MMS(물류), TR(회계) 등 서브 시스템을 접목하여 관리 수준을 높여 나갔다. 그리고 ERP 시스템은 해외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유럽, 베트남 등지에 해외공장들이 설립되면서 자칫 운영 초기에 혼란을 빚을 수도 있는데, ERP라는 하나의 통합 관리체계를 통하여 초기부터 안정적으로 운영하게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게더토토식시스템이 회사를 살렸다.






J기업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상무가 구매팀장인최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상무님, H사의 M 프로젝트가 3개월 빨라진다고 합니다. 거기에 들어갈 부품을 생산할 설비가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큰일입니다."


"뭐라고요? 갑자기 투게더토토젝트를 단축하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죠? 그래 그쪽 사업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발주된 설비 입고를 3개월 단축시켜 달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더를 경쟁사에 빼앗길지도 모른답니다."


"허어, 큰일이군요. 일단 다음 주에 방문예정인 투게더토토 설비업체 사장과 의논해 봅시다."


원래 해당 사업부에서는 기존의 설비 업체인 스페인 회사를 원했었는데, 구매팀에서 개발한 투게더토토 업체에 설비 발주가 나갔다. 기존 거래선보다 투게더토토 업체가 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였고, 신기술이 적용된 설비를 제안한 때문이었다. H사의 M 프로젝트에 들어갈부품을 생산하려면 신기술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스페인 업체의 경우 그 완성도가 검증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프로젝트 일정이 당겨지다니. 자칫하면 구매팀에서 책임을 몽땅 덮어써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음 주 투게더토토 설비업체 사장 한스가 J기업을 방문하였다. 회의에참석한 장상무는 한스에게 프로젝트 일정 변경을 설명하며 제작 중인 설비의 납기단축을 요청하였다. 잘못되어 오더를 잃게 되면 설비가 들어와도 쓸데없는유휴설비가 될 거라고사정하였다. 장상무의 간곡한 요청에 곤란한 표정을 짓던 한스는 끝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사의 설비 제작 스케줄 상 J기업의 설비 납기를 조금도 단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일 년간의 오더가 꽉 차있고 현장의 엔지니어마다 년간 작업 일정 계획이 다 짜여 있어, 자기가 비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변경할 수 없다고 하였다.


투게더토토은 한국과 달리 직원들을 빨리빨리 일하라고 다그칠 수 없고, 정해진 작업시간을 넘어서 임의로 추가 연장작업을 시킬 수가 없다. 딱 정해진 만큼, 정해진 목표대로, 조금의 융통성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상식다. 회사일과 개인의 사생활이 엄격히 구분되어, 개인마다 휴무 계획, 휴가 계획이 년 단위로 세팅되어 있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휴무일에 특근할 것을 명령할 수가 없다. 한국은 회사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는모르겠지만, 투게더토토은 개인의 권리가 엄격하게 존중된다.


한스로부터 구구절절 설명을 들은 장상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남의 나라 작업자들한테 잔업과 특근을 해서라도 설비를 만들어내라고 억지부릴수도 없었다. 그렇게 소득 없는 회의가 끝났고, 저녁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멀리 투게더토토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사람을 소홀하게 대접할 수는 없어서, 한스를 한우고깃집으로 모셨다. 불판이 준비되고 고기가 올려지는 틈을 이용하여 장상무는 회장님으로부터 배운 폭탄주를 제조하였다. 양사 간의 협력과 우호를 다지는 의미에서 투게더토토산 벡스 맥주에 한국 소주를 섞은 폭탄주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한스가 빙긋 웃으며 받아 든 폭탄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맛이 훌륭하다며 엄지척을 하였다. 야들야들하고 고소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 한우고기가 입에 맞는지, 한스는 서투른 젓가락질로연신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폭탄주로 입가심. 그러고 나서 또 고기 폭풍흡입. 혼자서 무려 육인분 어치나 먹어 치웠다. 장상무는 술과 고기로 한껏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틈타 한스에게 돌아가서 납기 단축을 검토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하였으나 끝내 아무런 대답도 들을수 없었다. 장상무는 한스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장상무가 최팀장을 불러 지시하였다.


"한스가 오늘 밤 비행기로 떠난다는데 그전에는 별일 없이 호텔에 머문다고 하던데, 가서 한스에게 바다 구경도 시켜주고 대게요리도 대접하고 잘 좀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장상무 생각에, 태어나서 처음 와 본 부산이라는 도시에 일만 하고 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처음 방문한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모습이고, 그곳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는 알게 해주고 싶었다. 한스가 생각하는 대로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 '열심히'만 부르짖는 아니고, 당신들처럼 개인생활 챙기고 놀기도 하고 그리고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날 퇴근 무렵 장상무는 최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스와 함께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까지 돌고, 대게요리 배부르게 먹이고, 김해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들어 는 길이라고 하였다. 장상무는 수고했다고, 바로 퇴근하라고 이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장상무는 한스로부터 메일 한통을 받았다. J기업의 설비 납기를 2개월 단축해 준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돌아가서 현장 슈퍼바이저들과 또 설비 부품을 제작하는 협력업체들과 일일이 회의를 거듭하고 재스케줄링을 해서 일정을 조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장상무가 요구했던 3개월 단축을 못해주어 미안하다고 하였다. 장상무는 그걸로 족했다. 비록 H사의 M 프로젝트 일정에 맞추어 부품을 납품하기에 빠듯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빨리빨리' '열심히'가 있지 않은가!


거기에 덧붙여 한스로부터 예상치 못한 희소식이 전해졌다.본인이 납품한신기술이적용된 설비를 사용하는 업체의 견학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설비가 실제로 작동되는 모습을 보면 J기업에서 설비가동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하였다. 한스가 말하는 회사는 J기업과 동종업체로 유럽의 선진 기업이었다. 따라서 J기업의 직원이 그 회사의 생산현장을 견학한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스 덕분에 그게 가능해졌다. J기업에서는 설비 담당자와 생산 담당자를 급하게 출장 보내 그 회사의생산현장을 견학토록 하였다. 그 결과 설비설치 후 제품생산과 안정화를 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J기업에서는 H사의 M 프로젝트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부품을 납품할수 있었다.


한스는 그동안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기업에 업무차 출장을 다녔는데, J기업처럼 인간적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은 적이없었다고 하였다. 다들 자기잇속만 차리려고 했지, 업무를 떠나 순수한 마음으로 한스 자신을배려한회사는 없었다고 하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은 투게더토토병정, 그의 혈관에도 똑같이 붉고 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바로인간과 인간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정(情)이었다.





※ 이 이야기는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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