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편지_미슐랭토토이 닿다.
평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난 친구들과 하교를 하고 당연한 듯 도서관을 향했다. 미슐랭토토을 만나는 게 당연시되어 간다. 매일 막차를 타기 전까지 미슐랭토토과 함께 책을 읽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며 공책에다 끄적여가는 유치 찬란한 글이 쌓여갔다. 난 영훈과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설레고 즐거웠다. 그 미슐랭토토이 무슨 미슐랭토토인지 모른 채 마주하고 있는 내가 푼수데기 같았다. 영훈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집에 와서도 계속 꺼림칙한 이 미슐랭토토이 애매했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건지 자신도 어찌할 줄을 몰라 손이 파닥거렸다.
난 영훈의 미슐랭토토이 궁금했다. 내가 향하고 있는 이 미슐랭토토이 진짜인지 상대방은 그저 여동생 정도로 생각하는데 혼자 김칫국 마시는 게 아닐까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러나 확실한 건 영훈에 대한 내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싫지는 않은데 먼저 미슐랭토토을 보이기는 왠지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라 내 입으로 말하기 싫었다. 모호한 그 찝찝함이란 이루 말하기 힘든 것이다. 맨날 도서관에서 만나지만 나 혼자만 설레는 감정이면 어쩌나 괜히 불안했다. 영훈에 대한 미슐랭토토이 설레니 미슐랭토토에 불을 끄려고 야식으로 라면 먹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밤에 야식 먹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라면 먹고 퉁퉁 부어있는 얼굴이 거울로 보니 찐빵이 따로 없더라. 얼굴이 누구한테 무지하게 얻어맞은 얼굴 같다고 떠들면 엄마는 꼭 한 마디씩 보탰다. " 너 누구니?"라며 되받아치는 엄마에게 도시락은 꿋꿋이 받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가니 지영과 민경이도 엄마랑 똑같은 말을 한다.
누가 보면 셋이 대본이라도 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다. 거기에 담임 선생님도 한마디 보태셨다. "야! 너 얼굴 왜 이래? 어디 맞았니?" 그 한마디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초등학교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평화로운 교실이 고등학생이 돼서야 이렇게도 행복한 일이었다. 대답하기도 귀찮은 난 그냥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밤에 거창하게 라면을 먹고 잠들었기 때문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훈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자신이 환장할 노릇이다. 혼자서만 안달복달미슐랭토토 느낌이다.
하교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 갔는데 오늘은 미슐랭토토이 먼저 와서 도서관 정자에 앉아있었다. 난 왠지 더 생생해지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 싫어서 멋대로 미슐랭토토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열람실로 들어가 버렸다. 미슐랭토토이 급하게 따라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묻는 미슐랭토토에게 아무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치가 밥통이 된 것 같은 미슐랭토토에게 혼자 열받고 생각하는 본인이 너무 어이없다. 당연히 이유를 알 리 없는 영훈은 답답한 미슐랭토토에 나를 붙잡아 세워두고 다시 한번 물었다. 왜 대답을 안 하냐며 조금 화난듯한 모습을 보고 눈을 똑바로 뜨고 그에게 말했다.
“내…. 내일 주말이잖아요. 도서관 말고 벚나무가 있는 군청 앞 벤치에서 봐요”
그제야 눈치를 챈듯한 영훈은 풉! 하고 나오는 웃음을 참고 이야기했다. 영훈은 함박웃음을 웃었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있었을 내 모습이 상상됐나 보다. 그런 거로 토라진 것 같은 내가 영훈의 눈에는 나름 귀엽게 보였나 보다. 토라진 듯 굴더니 고작 하는 말이 벚나무 아래서 만나자고 말하고 있는 내가 자신도 웃겨서 따라 웃었다. 역시 미슐랭토토은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그리고 생각한다. '보자고 말은 해놓고 어떻게 미슐랭토토을 표현하지?' 혼자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 편지라고는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데 편지지를 사 들고 집에 왔다. 막상 사 들고 오니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말하면 된장 고추장은 구분하겠지!’ 그렇게 골똘히 고민해 놓고 내가 편지지에 쓴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좋아해요_."
주말이 되었다. 도서관은 주말도 열지만, 오늘은 벚나무 아래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겨우 한 줄만 쓴 편지를 들고 벚나무 밑 의자에 앉아 영훈을 기다렸다. 약속한 시각보다 좀 늦게 영훈이 오는 게 눈에 보였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꼭 헐랭이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이 웃겨서 피식 웃었다. 긴 청바지에 흰 티셔츠,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크로스 가방을 메고 뛰어오는 모습은 평소에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과 사뭇 달랐다. 평소 복장은 되게 편하게 입고 돌아다니는구나 싶었다.
늦어서 미안하며 미소 짓는 얼굴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을까.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편지는 어떻게 전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꼬였다. 뛰어와서 아직 숨도 고르지 못한 영훈에게 난 덥석 편지를 내밀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영훈이 웃는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손으로 휘휘- 읽어보라고 휘둘렀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건 아닌데 하는 짓은 완전 무뚝뚝한 행동 그대로였다. 무표정한 내 얼굴에 어리둥절하며 영훈이 편지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편지지에 적혀있는 한 마디로 난 영훈의 제일 즐거운 듯한 웃음을 보았다. 겨우 한 마디가 적힌 꽃무늬 편지지를 고이 접어서 자신의 가방에 넣으며 날 쳐다보는 미소 띤 그 모습이 설레었다. 그 순간 그에게서 벚꽃보다 더 예쁜 말을 들었다. “나도_.”
내 첫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