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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 Apr 04. 2025

아부지 돌 오늘벳

1965


충청도 부자가 산길을 올라가는데, 저 위에 큰 돌이 데굴데굴 굴러내려왔다.
먼저 올라가던 오늘벳는 그 돌을 보지 못했지만 아들은 오늘벳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을 발견했다.
아들은 오늘벳를 향해 “아아아아버어어어어지이이이 돌 굴러어어어와유우우우”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너무 느려서 오늘벳는 바위에 치일 뻔 했다.
오늘벳는 깜짝 놀라 아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때, 뒤늦게 굴러떨어진 돌에 의해 오늘벳가 치였다. 아들이 그 후에야 말했다.
”두우우갠디이이이.”


어릴 때 처음으로 이 <아부지 돌 오늘벳 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게 꽤 웃기다고 생각했다.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씨에 대한 농담을 들은 나는 그 이야기를 내 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는 별로 웃지도 않고 “말이 느린 건 충남 사람들이지 우리는 그렇게 말이 느리지 않아!” 이렇게 대답했다. 대단한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알게된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의 거대한 차이에 나는 크게 놀랐다.


그렇다. 충청북도 사람들은 말이 느리지 않다. 또한 충청도 특유의(라고 알려져있는) 돌려까는 화법도 충청남도의 특징이다. 충청북도는 말도 훨씬 빠르고 충남 특유의 돌려까는 화법을 쓰는 인간들을 아주 싫어한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충북사람들은 이 인간이 뭐라는 거야 똑바로 원하는 걸 말해!! 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어쨌거나.



위의 이야기처럼, 단양읍 하방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에 어느 날 거대한 바위가 산에서 떨어져내려왔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집주인은 여기 살다간 산에서 떨어지는 바위돌에 맞아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헐값에 그 집을 팔아치우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 집을 산 게 내 할오늘벳다.


오늘벳


새로운 집은 구단양 하방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이었다. 원래는 그 아래아래집에 얹혀살다가 할오늘벳가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으로 운좋게 싸게 산 거였다.


할오늘벳는 대풍상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대풍상회는 동네에서 제일 큰 가게였다. 그곳은 설탕이나 비누 등등의 잡화를 팔던 가게였다. 할오늘벳는 대풍상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워낙에 기운도 좋고 성실했던 터라 거기 사장이 아주 좋아했다. 그외에 마을에 짐을 옮기거나 여러가지 삯을 받는 일들은 죄다 도맡아했다.


내 할오늘벳는 체력이 아주 좋았다. 쌀포대는 한 번에 한 가마니씩 번쩍번쩍 들어서 단양 시장에서부터 하방리까지 한번에 옮겼다. 밥도 많이 먹었다. 짜장면 곱배기를 3그릇씩 먹어치웠다. 당시 짜장면 곱배기는 지금의 곱배기보다 훨씬 양도 많았다. 짜장면 곱배기 3그릇이면 빠께스로 한 가득 되는 양이었다. 덩치도 좋았고 밥도 많이 먹어서 할오늘벳의 별명은 <충주돼지였다.


짐 옮겨주면서 삯을 받고, 대풍상회에서도 일을 배우며 열심히 일했다. 적은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꼭대기 집을 사게 된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할오늘벳 20대 후반이 된 후였다. 그때 기준으로는 아주 심각한 노총각이었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40살 노총각 수준이었다.

남자들 20, 21살에 결혼하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남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더 호들갑을 떨었다. 금방이라도 결혼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지인들이 난리가 났다.


할오늘벳가 돈을 모아 집을 사자 더 심해졌다. 집도 있고 돈도 좀 모은 대가족의 장남이 아직도 장가를 안가다니! 그것도 내일 모레 서른이 될 노총각이라니! 당시의 인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풍상회 사모님은 대가족 장남에 노총각인 할오늘벳에게 여기저기에서 선자리를 알아봐다주었다. 아주 맏며느리감인 여자들이었다. 어른들에게 싹싹하고 성격도 호방한 그런 멋진 여성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대풍상회 사모가 알아다준 선자리에 꼬박꼬박 나갔다. 하지만 좀처럼 이 여자랑 결혼하겠다, 하는 소리가 없었다. 대풍상회 사모는 본인이 더 애가 닳았으나 할아버지는 별 말 없이 다 뺀찌를 놨다.


그러던 어느날, 대풍상회로 출근한 할아버지는 사모에게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사모는 깜짝 놀랐다. 자기가 소개해준 좋은 여자들을 다 거절한 할아버지가 선뜻 결혼하겠다고 한 여자가 있다니. 물론 대풍상회 사모가 아닌 주위의 여러 사람들도 계속해서 할아버지에게 선자리를 주선해주었던 건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대풍상회에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곧 자기가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인사를 왔다. 자기가 소개해준 여자 7-8 명을 뺀찌 놓은 할아버지가 오케이한 여자가 누군지 궁금했던 사모는 목을 빼고 기다렸다.


할오늘벳가 데리고 온 여자는 키도 작고 비실비실한 여자였다. 대풍상회 사모는 자기한테 꾸벅하고 인사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는 혀를 쯧쯧 찼다.


“어디서 이쁜 걸 데리고 왔네.”


맏며느리감은커녕 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 체격이었지만 얼굴은 봐줄만 하다는 평이었다.


그게 우리 할머니였다. 당시 우리 할머니는 24살의 노처녀였다. 17,18살이면 결혼하던 때에 24살까지 미혼이었던 할머니는 그 때 인식으로 노처녀였다. 결국 노총각에 노처녀가 만나 결혼했다.


우리 할머니는 미인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미인 유전자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래로 유전된 건 미인을 좋아하는 취향뿐이었다. 엄마도 오빠도 그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의 미인을 좋아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벳


맏아들의 결혼식 날짜가 잡혔는데, 동시에 외증조할머니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외증조할머니는 15살에 할아버지를 낳았고, 할아버지가 결혼할 때쯤엔 44살이었다. 외증조할머니는 장남의 결혼식에 혼주가 배불러서 참석하는 게 쪽팔리다며 불참했다. 내 할아버지의 결혼식에는 그래서 외증조할머니가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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