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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텐텐벳 Mar 01. 2025

텐텐벳 놀이터 근무일지(feat.대프리카)

by 솔아 작가


8월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맴맴맴, 매미 소리만 한가롭게 울려 퍼지고, 아스팔트 위로는 아지랑이가 아련하다. 서 있기만 해도 어지러울 만큼 더운 날이다. 나는 대프리카에 산다. 텐텐벳이면 길가에 세워놓은 라바콘도 녹아 흐물거리고, 아스팔트에서 달걀 프라이도 해 먹을 수 있다는 그곳.


텐텐벳에 태어났지만, 텐텐벳이 싫다. 땀이 흘러 끈적끈적한 몸이 누군가에 닿는 것도 질색이고, 한텐텐벳날 밀폐된 공간 속에 가득한 땀냄새는 상상만 해도 질겁할 일이다. 이런 내가 대프리카에 살고 있으니, 그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늘 한 점 없는 거리는 가마솥이 따로 없고,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기는커녕 뜨거운 헤어드라이어를 얼굴 앞에 켜둔 느낌이다. 텐텐벳이면 뜨거운 철판 위, 그 열기 속에서 천천히 시들어 바싹 말라가는 나뭇잎이 된 기분이 든다.


텐텐벳(사진출처: 뉴시스 2017.07.11.)


그러한 텐텐벳일지라도, 핸드백 하나 달랑 들고, 굽 높은 샌들 소리를 또각또각 울리며 거리를 거닐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저 앞에서 부릉부릉 떠날 채비를 마쳤어도 볼썽사납게 뛰는 법이란 없었다. 매 순간 파우더 팩트를 열어 톡톡, 뽀얗게 분칠 한 얼굴에 화장이 뭉치기라도 할까 봐 땀 한 방울도 허락지 않았다. 콧잔등에 보일락 말락 살짝 맺힌 땀조차도 남김없이 지워내고, 햇빛 아래서도 찬란하게 웃을 수 있던 그때. 하늘하늘한 레이스 원피스 자락을 흩날리며, 뽀송한 얼굴로 향수 향을 폴폴 풍기던 시절.


텐텐벳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원 후 텐텐벳로 향했다. 아침에 분명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너무 날이 더워서 텐텐벳는 가지 않기로. 점심 먹고 나면 그런 약속 따위 싹 잊어버리나 보다. 이거, 내 건망증보다 심한 거 같은데?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나의 텐텐벳은 그냥 덥고 짜증 나는 계절을 넘어서 그늘 한 조각 없는 뙤약볕을 '참고 견뎌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삼삼오오 손에 손을 잡고 이미 저만치 친구들과 뛰어가 버린 아이들 뒤를 텐텐벳들도 함께 뛴다. 손에 든 유치원 가방 속 수저통이 덜그럭 덜그럭 요란스럽다. 표정이 모두 같다는 것이 웃음 포인트지만, 아무도 웃을 수가 없다. 고작 몇 걸음 뛰었다고, 이미 이마며 콧등으로 흐르는 땀 때문에 부채질을 하기 바쁘다. 화장은 언감생심. 줄줄 흘러내리는 땀으로 샤워를 할 판이다.


아이들은 덥지도 않은가 보다. 뉴스에서는 연일 폭염주의보를 외쳐 대고, 온열질환 환자가 속출한다는데, 너희는 왜, 꼭, 이렇게 땡볕 아래에서 그네를 타야 한단 말이냐. 텐텐벳 얼굴에 기미가 옅어질 날이 없구나.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며 깔깔깔 좋다고 웃어대는 모습을 보니 데리고 오길 잘했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1분도 안되어서 온몸을 적시는 땀을 보고 있자니, 어이구 저러고도 뛰어다니는구나,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저러다 우리 애 잡을까 봐.


오늘은 손에 잠자리채를 하나씩 들고 나무 위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는 매미며, 방아깨비며, 잠자리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놀이터 한쪽 수풀 속을 뛰어다닌다. 그러다 숨어있던 모기한테 온 다리가 얼룩덜룩해지도록 헌혈을 하고선 가렵다고 또 다리를 벅벅 긁으면서 텐텐벳를 애타게 찾는다. 호오, 호오! 텐텐벳가 불어주는 입김은 한낮의 열기가 더해져 한층 더 뜨겁다. 그 온기는 모기 물린 가려움도 녹이나 보다. 이열치열인가. 붙잡을 새도 없이 다시 달려가 수풀 사이를 헤집는다.


텐텐벳


큰일 났다, 저기 멀리 노란 모자를 쓴 '요구르트 아줌마'가 길을 따라 올라온다. 한 명이 요구르트를 집어드는 순간, 너도 나도 사달라 아우성일 게 뻔하다. 늦었다. 분명 텐텐벳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소리를 지르며 제 키만 한 냉장고에 조르륵 매달려 손을 뻗고 있다.


지갑을 여는 순간은 쓰라리지만, 내 새끼 입에 시원한 요구르트가 쪽쪽 들어가는 걸 보면 내 갈증이 다 풀린다. 끈적끈적해진 입을 손등으로 쓱 문질러 닦더니 다시 저만치 달려가 버리는 아이들. 텐텐벳들의 한숨이 한여름 매미소리 끝자락만큼 절로 깊어진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그늘에 서 있어도 부채질을 멈출 수가 없다. 오늘도 에어컨 빵빵한 집으로 돌아가긴 글렀다.


텐텐벳 내 매일매일 반복되던 일상이다.


일하러 나가야 하는 나는 이제 놀이터에서 해방이다. 우리 아이들은 좀 서운하려나. 아직 다른 텐텐벳들은 아이들 꽁무니를 쫓으며 놀이터 출근 도장을 찍고 있겠지? 몸은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데, 마음은 온통 놀이터 뙤약볕 속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듯하다. 매미 소리까지 환청처럼 들린다.


줄줄 녹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서야 겨우 텐텐벳에 안녕을 고하던 아이들. 그마저도 집으로 돌아오던 길목마다 멈춰 서서 풀숲을 살피느라 강아지마냥 엉덩이를 쑥 내밀고 씰룩거리며 몇 분씩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10분 거리인 집이 천리만리나 되어 보인다.


텐텐벳, 나 잠자리 잡았어!


작은 손안에 간신히 담긴 투명한 날개를 자랑하려 펼쳐 보이다 잠자리는 도망가 버린다. 무엇이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잠자리를 뒤쫓는 텐텐벳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었던 텐텐벳 놀이터가, 벌써 그리워진 건가. 그 무더위 속에 함께 있을 땐, 여름에는 놀이터를 합법적으로 문 닫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된다고 외치며, 어떻게 하면 놀이터 말고 집으로 바로 갈 수 있을지를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말이다.


아가씨 적 뽀송한 여름은 이제 다시 오지 않겠지. 대신, 그렇게나 진절머리 나던 땀내 나는 텐텐벳의 뜨거운 여름도 떠올리면 이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텐텐벳의 여름은 여전히 뜨겁다. 그 뜨거운 사랑이 한여름 놀이터에서 흘린 땀방울처럼 아이의 기억 속에 반짝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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