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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선 Feb 19. 2025

슬롯생각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답이 있다.

견고한 껍질을 갖고 태어나 상처를 모르고 살던 윤재와

얇디얇아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기 쉬웠던 껍질을 두껍게 더 두껍게 쌓기만 하던 곤이의성장이야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이 두 소년의 브로맨스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 알렉시티미아라는 진단명을 갖고 있는 윤재.

슬롯생각 모양의 편도체의 이상으로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할 뿐이고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단어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했다는 주인공 윤재.

그런 윤재를 엄마와 할멈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롯생각하며 슬롯생각을 가르쳤다.

슬롯생각와 할멈의 방식은 너무 달랐지만 윤재를 위하는 마음은 같았기에 나름대로 사회와 소통하며 자랄 수 있었다.


표정없는 슬롯생각를 사람들이 이상한 슬롯생각라고 부르기 시작할때

할멈은 윤재를 종종 '예쁜괴물'이라고 불렀다. 윤재는 방점이 예쁜에 있는것인지 괴물에 있는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예쁜괴물이라는 애칭의 방점은 아마도 사람들이 이상하다, 괴물같다, 로봇같다라는 말에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할멈의 마음에 찍혀있을 것이다. 희로애락애오욕을 설명하며 하나하나 가르치던 엄마의 답안지에도 사랑이 담겨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에게 닥친 비극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가족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면서도 윤재는 슬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견뎌낼 뿐이었다.

그러다 곤이를 만났다. 어릴 적 부유한 부모 슬하에서 자라다 놀이동산에서 엄마손을 놓쳤고 중국인 노부부의 손에서 방치되듯 자라다 시설에 맡겨졌다가 파양까지 당한 상처 많은 16살 인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가시를 세우고는 상처받는 것 대신 상처주기를 선택한다.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은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본문 146p-


홀로 남은 윤재를 보살펴주던 심박사의 조언이 내 마음 깊이 들어왔다. 그렇지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지.

예전에 나는 인생의 어려움이 닥칠 때면 누가 나한테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전문가라는 사람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었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누가 나에게 문제집 맨뒤에 붙어있는 정답해설지 같은 걸 가져다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결국 부딪히고 깨지며 실패한 만큼 깨닫는 법이고, 헤매고 돌아다닌 만큼 지경이 넓어지는 슬롯생각다.

그 과정을 지나 나만의 해답을 만들어 나갈 뿐인 슬롯생각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곤이는 외로움과 사랑의 목마름을 너무나도 거칠게 분출하는 아이였다. 곤이의 아버지의 대응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보다는 상황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고 피해를 본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하는 게 우선이었을 슬롯생각다.

잃어버렸던 슬롯생각를 찾았지만 바로 아내를 잃었고 둘이서라도 행복하게 살길 원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슬롯생각를 보며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보통의 아빠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진짜 어른은 어떤 걸까? 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아이에게 교실에서 일어나보라며 힘든 일을 겪었으니 위로해 주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배려심 없는 교사는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했을 슬롯생각다.

나도 그런 적이 있지 않았을까? 나도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해 준다는 핑계로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진 않았는지 누군가를 동정하며 시혜적인 태도로 우월감을 느끼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어딘가를 걸을 때 슬롯생각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슬롯생각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슬롯생각는 눈을 흐리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본문 153p-


슬롯생각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결국 감정을 모르고 살수 밖에 없다는 로보트 같던 아이를 사람으로 키워낸것은 부모의 사랑이었다. 한번도 버려진 적 없다고 느끼며 큰 아이는 그 사랑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길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슬롯생각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터뜨려야만 했던 슬롯생각를 돌이킨것도 결국 끊임없는 사랑이었다.

사랑은 마음속에 고여있지 않고 그슬롯생각 대화가 되고, 눈길이 되고, 손길이 될때 주위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다.

상처받고 외롭고 힘든 이들에게로 흘러들어가서로를 감싸안게되고 그 안에서 진짜 사람이 되어가게 하고 진짜 어른이 되어가게 한다.


뜬금없지만 이 소설의 제목으로 삼행시를 지으며 마무리 지어본다.


아 : 슬롯생각를 사람으로 만들지

몬 : 몬스터로 만들지

드 : 드러내는 것은 슬롯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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