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내 친구 888토토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888토토들이지만, 마음만큼은 언제나 곁에 머물러 있는 따뜻한 인연들.어느 주말 아침, 은주는 그 소중한 인연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평소의 피곤함도 잊었다. 교대 근무의 틈바구니에서 기적처럼 맞아떨어진 하루의 휴일.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마땅한 귀한 날이었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그녀의 외출을 응원해주었다.“엄마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요.”
그 다정한 말 한마디에 888토토 오래 묵은 피로를 벗어내듯 조심스럽게 거울 앞에 선다. 화장이라야 스킨과 로션, 선크림과 비비가 전부였지만, 오늘만큼은 그 사소한 과정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위한 준비.부지런히 가족의 점심과 저녁을 챙겨놓고, 출근길보다 더 분주하게 시작된 주말 아침이었다.
이 모임의 888토토들은 각자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가장 모이기 좋은 장소는 늘 서울역.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888토토가 있을 정도니, 서로를 잇는 인연의 끈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만하다.서울역 앞의 어느 카페,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에는 삶의 여유가 묻어 있었다. 마흔을 넘긴 지금,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은주는 888토토들의 세련된 옷차림과 밝은 표정을 보며 잠시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이 관계의 소중함은 외적인 화려함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누가 더 잘나 보이는지가 아니라, 누구의 몸이 아픈지, 집안 어르신은 건강하신지, 그런 것들이 더 궁금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888토토들의 가방이었다. 면세점에서 일하는 그녀에게는 이제 브랜드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사고 싶은 마음은 없어도, 직업상 눈썰미는 자연스레 익혀졌다.그에 비해 자신의 어깨에 걸친 건 오래된 면 가방 하나. 가볍고 실용적이며, 어딘가에 툭 내려놓아도 마음 쓰이지 않는 그런 가방. 은주는 생각한다.‘가방은, 물건을 담으면 그만이지.’
이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를 비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황을 나누던 중, 면세점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888토토의 이야기가 나왔다.
“면세점에서 무슨 일 하는 거야?”
888토토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은주는 짧게 대답한다. “판매지.”
마흔을 넘긴 나이에 새롭게 시작한 일.경력도 없이 취업이 되어,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얼굴에 붉은 기색이 스쳐간다.‘사모님’ 소리를 듣는 888토토들 앞에서 ‘파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왠지 낯설고,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하지만 888토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다.그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888토토 일시적인 불편함일 뿐이었다.질문 역시 진심 어린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888토토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은주에겐 딸이 하나 있다.아직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그녀는 그 아이를 위해 ‘밤’을 선택했다. 낮에는 아이와 함께 있고, 888토토 일하는 삶.누군가에겐 낯선 생활 리듬이겠지만, 888토토에겐 아이를 돌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아빠가 퇴근하면 엄마가 출근하는 삶.그렇게라도 아이 곁을 지키고 싶었다.공항은 그녀에게 딱 맞는 일터였다.밤 근무가 가능했고,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도 기회는 주어졌고, 은주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오롯이 ‘나’로만 살 수도 없고, ‘엄마’로만 살고 싶지도 않았던 그녀가 생각해낸 최선이었다.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고단했다.밤을 새우고 돌아온 오전엔 암막 커튼을 드리운 집 안에 자신을 밀어 넣듯 파묻혔다.오후엔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를 맞이했다.머리는 늘 희뿌옇고, 몸은 천근만근.삶의 활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그럼에도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엄마!” 하고 부르는 그 순간, 888토토 충분히 만족했다.그 하나의 장면이 그녀의 삶을 버티게 했다.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엄마. 888토토야.
네가 아이를 위해 밤 근무를 선택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나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았어.많은 사람이 생각만 하고 마는 선택을, 너는 행동으로 이어갔으니까.어릴 적 나도,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가던 날들이 있었어.그래서 너의 결정이 얼마나 깊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너는 말했지.자신의 어린 시절, 일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로 인해 채워지지 못했던 보살핌을너의 아이에게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고.결핍을 핑계 삼지 않고, 그 결핍을 이겨내는 동력으로 삼은 너의 삶은지켜보는 이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해.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살아가지.부족한 사랑, 부족한 시간, 부족한 기회.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채우느냐야.누군가는 남 탓을 하며 멈춰 서지만,너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애쓰는 사람은자신뿐 아니라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선한 영향력이 되어주지.
‘결핍(缺乏)’이라는 단어는 ‘이지러질 결(缺)’과 ‘모자랄 핍(乏)’으로 이루어져 있어.‘결(缺)’은 도자기에 금이 간 모양에서 유래했고,반면 ‘쾌(快)’는 활을 당기는 손 모양에 마음 심(心)이 더해져 있어.같은 ‘결(缺)’이라도, 거기에 무엇을 더하느냐에 따라‘결핍’이 될 수도 있고, ‘유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야.
삶은 어쩌면 자신 안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의 연속일지도 몰라.누군가는 그 자리를 불평으로,누군가는 외면으로,또 누군가는 너처럼 의미와 사랑으로 채워가는 거지.너의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거야.
888토토야, 나는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너의 존재가, 너의 일상이, 너의 결정이내게 얼마나 큰 울림을 888토토지 몰라.그리고 나는 바란다.너의 걸음이, 마치 5월에 먼저 888토토 은은한 장미 향처럼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 속에 향기로 남기를.
너의 888토토로부터,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