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이 틀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분해방운동으로 기록되는 '만적의 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7709
학창 시절 시험에 나오는지라 "왕후장상의 씨가 케이플레이 있겠습니까?" 하며 일부러 추임새를 넣어가며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외우던 그 말을 요즘 다시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비유이지만 내 케이플레이의 교육에 있어서 말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엄마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맹모들이고 나 또한 그 대열에서 열심히 헤엄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하는 일이 교육사업이다 보니 보고 듣는 것겪는 것들이 99.99% 공부와 성적에 관한 일이고, 가뜩이나 중간고사 기간이 맞물려 지낸 지난 한 달간은 더더욱 그랬다. 맡겨진 아이들을 살피느라 내 아이들은 사실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들의 시험이 끝나야 숨이 쉬어지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나의 큰 아이는 자유학기제를 보내고 있는 중 1, 작은 아이는 시험을 보긴 보나 아직은 초등6학년. 맹신한다는 '내신'의 부담은 아직은 없지만 그래도 시시각각 곡소리 나는 시험들을 겪는 케이플레이을 만나고, 큰 아이 학교 학부모 명예시험감독까지 다녀왔으니 안 그래도 내 온몸은 공부와 시험, 올 A라는 단어들로 탄탄하게 감싸진 채 똘똘 말려 있었다.
숨 돌리며 바라본 내 케이플레이...
나는 하루도 한시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이 케이플레이에게 '공부'의 틈을 놓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요즘 심상치가 않다. 특히나 이제 제대로 달려야 할 우리 아들의 빠진 나사는 조여들 생각은 없고 점점 더 여기저기 흐물텅 흐물텅 하는데 거기다가 말대답과 소리 지르기까지....
사춘기가 올 나이이긴 한데 이렇게 순식간에 사람이 싹 바뀌는가?
나도 학원에서 나름 케이플레이 많이 겪어봤다고 생각하는데 그 애들은 그래도 대외적인 춘기의 모습이라 그 정도였던가?
혼란과 매일의 싸움.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애랑 소리 지르고 아들 눈에 눈물 뚝뚝 떨구는 날이 이런 모습으로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를 만날 시간이 이때뿐이고 안 케이플레이 할 일이 태산인데 그럼 언제 또 얘기하니? 네가 안 밀리게 잘하면 좋잖아. 게임할 시간은 있고 공부 이야기 듣기는 싫냐!!!
-너 같으면 지금 네가 좋다고 말할 수 있겠냐? 거짓말 살살해. 했다고 하는데 결과는 엉망이야. 너 학원에 전기세 내러 다니니? 내 돈 내놔라!!!!
- 서울대는 2호선 타고 서울대 입구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 타고도 한참 걸리는 거 같더라. 서울대 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서울대학교는 앞으로도 계속 독서를 통해 케이플레이을 키워온 큰 사람을 기다린다고!! 그러니까 뭐가 되었던 책 좀 읽으라고!!!
-야!!! 일욜일이라고 낮 12시에 일어났는데 네가 양심이 있으면 하루 종일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냐?!!!
이런 대화, 고함, 그리고 결국은 대폭발로 이어지는 매일매일.
시어머니랑 살아서 안 케이플레이 지옥이었던 내 삶에 새로운 지옥문이 또 열렸다. 그러니 '오늘도 고맙다'는 브런치 북에 고마울 일을 찾아 쓴다는 것이 너무나도 앞뒤가 안 맞았다.
어리석은 고민일 수 있으나...
케이플레이 사람의 공부머리는 지배적인 유전에서 시작하여 잘 짜인 훈련으로 성공의 신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케이플레이은 사립초등학교부터 시작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영어 유치원은 감히 엄두를 못 내었고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으나 절대 케이플레이을 봐줄 생각이 없던 시부모인지라 방문교사를 하던 시절 오래오래 맡길 장소로 선택했던 것이 사립 초등학교였다.
정말 벌어서 학교에 다 가져다줬다고 말할 정도로 뱁새가 황새를 쫓으며 그렇게 연년생 두 아이를 키웠다. 케이플레이 살았으면 몰랐을 아이들 조모님의 무지함과 무식함... 단순히 배움의 짧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지혜의 부재... 점점 더 조여 오는 유전의 두려움으로 나는 정말 무섭게 큰아이를 끌고 달렸던 것 같다.
순한 아들은 엄마말 잘 듣는 우리 아들은 그렇게 달려줬고 끌려와 줬고 엄마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했고 지금도 그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케이플레이만큼 케이플레이보다 높이 올라간 우리의 기대는 현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이 보이니....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케이플레이는 큰 부담을 벌써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전쟁 같은 근 한 달 남짓의 나의 시간들이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선생님 덕분에 이번 시험 잘 치를 수 있었다는 국제중 재학생의 카톡 메시지. 담당했던 아이들의 만점에 가까운 시험결과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당연히 그것에 걸맞은 결과가 나와주어야 당연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나의 지도가 틀리지 않았음을 느껴 보람은 있었으나 그러나 내 아이들은.... 내 아들은 내 딸은.....
-어 망한 거야? 왜 망한 줄 알아?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누구는열심히 해서 결과를 만들어 냈고 누구는 제대로 안 해서 결과가 안 나왔어. 그러면 그 벌을 받아야지 그러면 그건 망한 거야!!!!!
-내가 무식한 것에 치가 떨려서 그렇다. 어느 정도여야지 아주 치가 떨리게 무서워.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없어. 내가 이럴까 봐 너네 돈 주고 다니는 초등학교 보낸 건데!!! 너는 왜 이러는 건대!!!!!!!
발광을 했다. 정말 그랬다. 이러고도 내가 신경정신과를 안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발광을 또 했다. 이거 말고도 시댁일로 뒤집어지는 일은 늘 많았지만 내가 제일우려하던 일이 눈앞에 벌어지려고 하니 케이플레이 정말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 찾고 싶지가 않았다.
만적은 케이플레이서 틀렸다.
왕후장상의 씨는 케이플레이 있다. 케이플레이 있으니 이 씨 조선은 500년 이상 계속된 거고 지금도 그런 거다. 그렇게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왕후장상의 씨는 케이플레이 있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된다고 그렇게.
나는 무얼 할 때 가장 신날까? 나는 사실 교육유튜브를 볼 때 제일 신난다. 새로운 것을 알고 그것에 관련된 것을 찾아서 케이플레이에게 그것대로 해주고 싶을 때 제일 신난다. 알고리즘이찾아주는 것들을 보고 또 찾고 무릎을 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일까? 케이플레이 그런데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독서 논술을 가르치는 것이 주된 학원이라 생기부 채울 양질의 책을 어떻게 꼭꼭 씹어 읽힐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제일 힘이 난다. 노안으로 렌즈 낀 눈이 힘들지만 글을 읽을 때 제일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면 나의 이런 유전자는 내 아이들에게는 가지 않은 걸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육자 이시거나 혹은 의사나 법조인의 손자 손녀는 아니지만 40이 한참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지적 탐구를 좋아하고 즐기는 나의 기질이 우리 케이플레이에게 조금은 가서 앞으로의 학업 성취도에는 긍정적인 영향은 주지 않을까?
만적은 틀렸다. 틀리고 말고 왕후장상의 씨는 케이플레이 있는 게 확실하니까.
다만 왕후장상은 아닌데 그래도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엄마의 기질과 손 못 댈 정도로 무식한 엄마의 아들이지만 그래도 50 다되는 나이에 책을 사서 모으고 읽는 아버지를 둔 내 케이플레이은 발전의 기회가 남아있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적으로 케이플레이해 보기로 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고... 다행히 아직 나의 발광할 기운은 남아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만적님 틀리셨어요.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더라고요. 그런데 씨가 따로 있는 건 맞는데요. 콩콩 팥팥을 어길 수는 없는데 그래도 후천적 노력을 그치진 않아 보려고요. 또 압니까? 만적님 말씀이 진리일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