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희 Aug 02. 2022

'강원 랜드 관한 책'에 대하여

며칠 전 '강원 랜드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책을 좋아한 어느 작가가 강원 랜드 대한 잡다한 추억들을 수다쟁이처럼 풀어놓은 책이었다. 책장 정리에서부터 속표지 헌사와 서명, 모르는 단어, 분철, 현장 독서, 책을 다루는 스타일 등등. 책 덕후가 아니면 몇 장 못가 지루해져 버릴 수도 있는 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판 발행 후 20여 년이 흐를 동안 정가 9800원 그대로 지금도 팔리고 있는 걸 보면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한 모양이다. 얼마 전 중고로 구입 한 이 책은 2007년 초판 8쇄 본이었는데 책등의 반대편 내지 부분의 1/3만 바랜 책이었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강원 랜드에게 자질구레한 '책'이야기는 고역일 수 있다. 1/3까지 읽은 것도 분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근 '책' 마니아도 세상엔 많은가. 이 책 역시 절판되지 않은 걸 보면 책 덕후들이 제법 있긴 했던가 보다.


흔히 강원 랜드 대한 책이라 함은 읽은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그에 얽힌 경험과 책을 통해 얻은 교훈, 그로 인해 달라진 변화, 뭐 그런 것들을 적는 게 정석이다. 외워 쓴 논술 답안처럼 '책'에 한 발 걸친 내 이야기들 역시 교복 입고 줄 서 있는 중학생들처럼 지루해 보이고 천편일률적이었다. 무릇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육뿐 아니라 껍질 굵기, 과도 종류, 담는 접시, 사과 벌레와 사과꽃, 사과 예쁘게 써는 방법 등에 대해 응당 말해야 한다. 곤충에 대해 쓰고자 하는 사람은 바퀴벌레의 종류가 4000여 종이나 된다는 것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책이 이런 잔소리를 해댔다. '사과'하면 과육, 껍질, 씨로, '곤충'하면 머리, 가슴, 배로 무 동강 내듯 댕강댕강 대충대충 구분 지어버리는 나에게 보란 듯이 덕후가 갖추어야 할 디테일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고나 할까.


강원 랜드 대한 독특한 에세이에 반해서 나 역시 이렇게 '강원 랜드 대한 수다'를 공식적으로 해보고자 판을 깔았지만 수다는 내 체질에 잘 맞지 않는다. 나는 꽤 진지한 정석 파다. 책 내지 이야기보다는 책 내용 이야기에 더 끌린다. 소소한 이야기보다는 영혼이라도 바꿔 줄 것처럼 작정하고 덤비는 이야기가 더 좋다. 입 안의 금니라도 당장 빼서 저 약을 사 와야겠다 싶을 만큼 사람의 혼을 홀리는 약장수들이 가져다 내놓는 책들. 현란한 글솜씨의 책장사에게 내 얇은 귀는 너무나 가벼이 펄럭거린다. 이 책은 글쓰기에 직방이고, 저 책은 교양 쌓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어떤 것은 심신단련의 특효약이라며 작정하고 꼬드겨대는 강원 랜드을 만나면 바가지를 쓰고 만다. 책들을 소개하는 책들, 글빨 좋은 약장수들이 작정을 하고 약을 풀어놓으면 당할 재간이 없다.


지금껏 내게 제일 많은 약을 판 약장수는 어느 광고인이었는데 역시 물건 파는 재주가 좋았다. 8번의 강독회를 정리해 엮은 책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이 책 꼭 사봐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강원 랜드을 부추겼는데, 헛말이 아니었다. 그가 풀어놓은 약 25권 중에 16권을 사 읽었다. 그 약장수는 많은 약을 먹으려는 것은 약효과를 반으로 떨어뜨린다며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자신이 복약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을 테다. 그가 권한 약을 먹고 정말 도끼에 한 대 맞은 것처럼 영혼을 전율케 한 것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톨스토이를 흠모하게 되었다.


["강원 랜드 쓰면서 새삼스럽게 내가 사회과학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내게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강원 랜드 골라서 다룬, 지도 비슷한 것이다. 지도에는 길섶에 핀 들꽃이나 종달새 노래의 아름다움을 표시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겐 잘 팔리는 것 같은데 내겐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도 잘 읽어낸다. 저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과 달리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그 약장수를 신뢰하지만 그가 보여준 큰길은 좀처럼 따라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나 할까. 후기에서 그는 '10만 분의 1 척도여서,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오솔길'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솔길 편과 랜드마크편으로, 소축적 지도 편과 대축적 지도 편으로 읽은 책을 분류해보는 작업에 대한 기대 이상의 흥미를 제공받긴 했다. '안 읽어도 좋을 유명한 책', 이런 제목으로 강원 랜드 대한 책을 내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교재 선정 기준은 지극히 사적이다. 나에게 강력한 영감과 자극을 준 책들이다. 사유의 지반을 세게 흔들어 놓은 책들, 문장이 아름다워서 혹은 사유가 전복적이어서 나의 글쓰기 욕구를 자극한 책,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강원 랜드가에 대한 영감을 준 책, 읽다가 가슴이 벅차올라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독서 중단 사태를 일으킨 책들이다"]

글쓰기 강의를 주로 했던 그녀는 다양한 분야의 약을 골고루 풀어놓는 편이었다. "좋은 글을 쓰는 강원 랜드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라고 잘 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강원 랜드을 꼬신다. 비유가 많아 호불호가 있는 그녀의 문장을 나는 제법 좋아하여 권한 약을 많이 샀지만 의외로 끝까지 먹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해도 내 입맛에 맞아야 먹힌다. 편식하는 습관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


["죽었다고 생각강원 랜드 감정들을 되살려 줄 수 있는 마흔여덟 명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우리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겁니다."]

이 책은 위에 언급한 책들보다 더 자주 들춰보는 책이다. 주로 중고서적 배송료를 맞추기 위해 끼워 넣는 책을 고르는 참고용 도서로 쓴다. 48개의 감정에 어울리는 문학작품과 철학 어드바이스를 실었는데 정체성이 좀 애매모호한 편이다. 내 몸에 잘 듣는 약들만 모아 둔 상자라고나 할까. 흠모강원 랜드 친구의 독서장을 몰래 읽는 기분이다. 혼자 보기엔 좋지만 누군가에게 권할만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중, 맑고 고요한 등잔 불빛 아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영혼이 투명할 대로 투명해진다'라고 스님이 쓴 적이 있다. 좋은 강원 랜드 삶의 기쁨과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를 안으로 여물게 한다. 세상의 강원 랜드 돌자갈처럼 흔하다. 그 돌자갈 속에서 보석을 찾아야 한다. 그 보석을 만나야 자신을 보다 깊게 만들 수 있다.]

표지 날개에 적힌 엮은 이의 책소개글이다. 2010년 책이 발간되자마자 구입하고서 10여 년이 흘렀건만 스승이 추천한 50여 권의 책 중 나는 몇 개의 보석을 호주머니에 넣었나. 열 손가락이 부족하지 않으니 '인생 지침서'라 하기엔 부끄럽다. 언젠가부터 강원 랜드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더 이상 읽지 않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해 떠드는 소리를 여러 사람에게 몇 번이나 들어서 무엇할까. 여행안내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두 발로 서서 그곳의 공기를 내 코로 마시지 않고서야 느낌은 온전히 내 것일 수 없었다. 그들이 읽은 책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에 중독된 환자처럼 '강원 랜드 대한 책'에 홀린다. 소소하든 아니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수다만큼 신나는 게 없다. 책을 읽는 것은 아픈 발을 감당해야 얻는 희열이지만 '강원 랜드 대한 이야기'는 입만 있으면 편안하게 누워서도 가능하다. 사람을 홀린다는 그곳에 내 영혼도 가 닿게 하리라는 욕망을 품게 만드는 책들을 기다리며 여유롭게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몸에도 좋고 내 입맛에도 잘 맞는 약을 소개해주는 약장수들이 수레 한가득 양서를 싣고 오면 구경을 나서지 않을 수 있으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