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돌리고슬롯 전쟁
인터스텔라_대한민국 편 #8
20.
태초에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각이 들었을 때, 그들의 손에는 돌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돌도끼를 휘둘러 짐승을 사냥했고 그 고기를 먹으며 목숨을 이어갔다.그들에게는 당장 그날 가족들과 나눠 먹을 음식이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동물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 먹을 것이 귀해지면 먹을 것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여 다시 돌도끼를 필요한 만큼만 휘두르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씨를 뿌려 농작물을 경작하고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가축으로 길돌리고슬롯면서 한 곳에 정착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그게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세상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힘이 센자와 힘이 약한 자로 갈렸다. 힘들여 농작물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를 이유가 없었다. 힘겨루기를 하여 남의 것을 빼앗으면 되었다. 힘겨루기에서 지면 남자는 죽거나 노예가 되고 여자는 전리품이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인구수는 바로 힘이었다. 전리품으로 얻은 여자를 취해씨를 뿌리고 인구수를 늘렸다. 더 많은 힘겨루기를 하고 더 많은 전리품을 얻고 더 많은 씨를 뿌리고더 강해졌다.
농경사회가 지나고 산업사회가 되면서 힘의 기준이 바뀌었다. 힘대신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물론 힘센 놈이 여전히 돈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산업과 함께 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힘센 돌리고슬롯 간의 자리 역전 현상이 일어날 여지가 생겼다. 거기서 밀려나거나 아예 낄 수 없었던약한 돌리고슬롯은 해적이 되고 테러범이 되었다. 말이 해적이고 테러범이지 그건 강한 놈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약한 놈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끝없는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힘센 돌리고슬롯 간에, 힘센 놈과 약한 돌리고슬롯 간에 그리고 또 약한 돌리고슬롯 간에. 그때그때의 이해득실에 따라 같은 편이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상대방에게 더 큰 치명타를 날리기 위한 더 치명적인 무기가 개발되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욱더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경쟁적으로더욱더치명적인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냈고,나중에는인류를 다섯 번은 전멸시킬 수 있는 양의 무기가 만들어졌다. 그래도그 경쟁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뻥!'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세상의 종말. 세상이 사라졌다.
긴 세월이 흘렀다. 황폐한 대지에 비가 내린 후, 촉촉한 땅을 비집고 작은 싹이 올라왔다. 한 잎 두 잎, 씨앗 껍질을 벗어버리고 떡잎 두장이 활짝 피었다. 세상 곳곳 여기저기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싹이 피었던 곳곳이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메말랐던 대지가 초원으로 바뀌고 계곡에 나무가 자라고 숲이 만들어졌다. 그 사이로 맑은 물이 졸졸 흘렀다. 또다시 세월이 흘렀다. 숲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다람쥐며 토끼가 뛰노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발로 걷는 동물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망하기 전 세상 곳곳의 피난처에 숨어 있던 인간들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그냥 그들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들은 아직 힘겨루기를 몰랐다. 자기들과 다른 인간들과의 만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만남이 있었더라도 힘겨루기를 통하여 남의 것을 빼앗고 상대를 죽이고 전리품에 씨앗을 뿌릴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희망호 승무원들이 도착하기 전, 돌리고슬롯과 땅굴족도 마찬가지였다. 돌리고슬롯은 밝은 태양아래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고, 태양을 두려워하는 땅굴족은 밤에 돌리고슬롯 마을에 나타나 그들을 잡아먹었지만 필요 이상의 살육을 하지는 않았다. 태초에인간이 돌도끼로 먹이를 사냥하듯이 그저 돌리고슬롯을 먹이로 보았던 것이다. 필요할 때 딱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면 되는. 그러나 희망호 승무원들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희망호 승무원들은 힘겨루기가 극에 달한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는힘겨루기를 통하여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저 빼앗기 위하여 살육을 서슴지 않았다.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죽였다.그리고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곳에서온 사람들이 돌리고슬롯에게 힘겨루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땅굴족을 무참하게 살육할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힘겨루기로 망해버린세상에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정말 어렵사리 다시 시작된 인간의 역사에 또다시 힘겨루기를 돌리고슬롯하려 하고 있었다.
21.
조함장과 최항해사는 마을의 젊은 사람 몇 명과 함께 땅굴족이 사는 소굴을 찾기 위한 정찰에 나섰다. 땅굴족 사체를 장대에 매달기 전 그 몸속에 위치추적기를 숨겨놓았었다. 혹시라도 그놈돌리고슬롯 자신들의 동료 사체를 수습해갈지도 모른다고짐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았고 마을 사람 아무도 몰랐던 땅굴족의 소굴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땅굴족의 소굴은 돌리고슬롯 마을에서 십 킬로 정도 떨어진, 레나가 발견되었던 계곡 너머 한참을 더 간 곳에 있었다. 조함장 일행이 거기까지 가는데 네 시간가까이 소요되었다.입구를 찾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숲 속 깊숙이 은밀한 곳에 입구가 숨겨져 있었다.
그들이 입구를 발견하기 전에 먼저 발견한 것은 커다란 웅덩이였는데, 그 웅덩이에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고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곳에 쌓여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뼈였다. 등골 골반 대퇴부 팔다리 갈비뼈 등이 수북이 쌓여 있는 뼈무덤. 거기에다가 인간의 머리가 군데군데 나뒹굴고 있었다. 이미 백골이 된 것,백골이 되어가는 것,여전히 얼굴 가죽이 붙어 있는 것그리고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얼굴 형태가 비교적 온전한 것 등. 그것은 돌리고슬롯 마을 사람들이었다. 뼈와 함께찢어져 펄럭이는 노란색 원피스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 뼈무덤을 보고 조함장은 분노가 치밀었다. 당장 돌리고슬롯의 소굴을 찾아내 도륙을 내고 싶었다. 반면에 돌리고슬롯 젊은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평생 평화롭게 농사만 짓던 순박한 그들이 마주한 뼈무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한 명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다른 이들도 상황이 비슷하였다. 그 모습을 본 조함장은 큰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놈들을 도륙내서 원수를 갚아야 할 텐데 그렇게 겁을 먹어서야 될 일이 아니었다. 조함장은 벌벌 떨고 있는 그들을 독려해서 주위를 수색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땅굴족 소굴의 출입구를 찾아낸 것이었다.
출입구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함장이 보기에 전혀 경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일, 레이저건을 바짝 들어 앞을 겨눈 채 주위를 살피며 접근하였다. 그 뒤로 최항해사와 돌리고슬롯 젊은이들이 좌우를살피며 따랐다. 출입구 안쪽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조함장과 최항해사는 바로 야간투시경을 착용하였다. 그러자 동굴 안쪽이 훤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저앞에땅굴족 두 놈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 있는 게 보였다. 돌리고슬롯은 긴 창을 한 자루씩 쥐고 있었다. 그돌리고슬롯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니면 낯선 냄새라도 맡았는지 입구 쪽으로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놈들은 결코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찌잉!' '찌잉!' 고개를돌림과 동시에 이마에 구멍이 뚫렸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조함장 일행은 쓰러진 돌리고슬롯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자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천정 높이가 20여 미터, 좌우 폭이 50미터, 길이가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였다. 지하에 그렇게 넓은 공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광장 양쪽 벽 쪽으로 약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중간중간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 같아 보이는 굴이 수도 없이 파여 있었다.광장은텅 비어 있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함장은 그게 더 불안하였다.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조함장은 생각 끝에 일단 물러나기로 하였다. 그날 돌리고슬롯의 본거지를 찾아내고 거기까지 들어가 본 것만 하더라도 기대 이상의 성과인 셈이었다.
조함장 일행은 그곳을 물러나오면서 입구에서 사살했던 땅굴족 두 놈의 사체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돌리고슬롯 젊은이들로 하여금 돌리고슬롯의 목을 자르게 하였다. 돌리고슬롯 젊은이들은 비록 죽은 시체지만 땅굴족 모습만 보아도 두려웠다. 하지만 조함장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없었다. 진땀을 흘리며 칼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힘껏 내려쳤다. 그러자 놈의 목이 댕강 잘리면서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가땅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다른 한놈의 목도 똑 같이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조함장은 사체의 몸통을 돌리고슬롯 사람들이 희생된 뼈무덤에 던져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돌리고슬롯 머리 두 개는 마을로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 조함장이 그렇게 한 이유는 돌리고슬롯 젊은이들로 하여금 '우리도 돌리고슬롯을 죽일 수 있고, 목을 벨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는 것과 함께돌리고슬롯의 사체를 제물로 삼아 돌리고슬롯에게 잡아 먹힌 돌리고슬롯 희생자들의 원혼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함이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조함장 일행은 날이 거의 어두워질 무렵 돌리고슬롯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지고 온 땅굴족 머리를 마을 입구 장대 끝에 매달아 놓았다.
조함장 일행이 떠나고 난 후, 땅굴족에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붉은수염 우두머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외부인이 침입해서 보초를 죽이고 그 몸뚱이를 쓰레기장에 처박아 놓았다. 그리고 머리는 가지고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무방비로 뚫린 것이다. 정황으로 보아 그돌리고슬롯이 틀림없었다. 돌리고슬롯 돌리고슬롯과 그들과 함께 있다는 이방인들. 그런데 그이방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어디서 왔을까? 그돌리고슬롯이 가지고 있다는 무기도 심상치 않았고,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돌리고슬롯 돌리고슬롯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기네들 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한 번씩 별미가 필요할 때 그곳에 가서 필요한 만큼 잡아오면 되는 존재였다. 땅굴족에 있어서 돌리고슬롯 마을은 그냥 식량창고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벌써 부하 여덟 명이 죽었다. 게다가 본거지가 알려진 이상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붉은수염은 부하들 전부를 집합시켰다.
"동지들이여! 오늘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적들에게 유린되었다. 동료 둘이 목숨을 잃었고 적들이 그 머리를 가져갔다. 다음은 우리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 비극을 막으려면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나와 가족을 지키고 동료들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뭉치자. 나가서 싸우자!그리고 오늘은 돌리고슬롯 돌리고슬롯을 잡아와 마음껏 포식해도 좋다!"
"와! 와! 싸우자!"
"와! 오늘 맘껏 사냥을 해보자!"
모두들 들고 있는 창을 높이 쳐들며 함성을 질렀다. 넓은 지하광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질러대는 함성으로 사방이 쩌렁쩌렁 울렸다. 붉은수염이 내건 돌리고슬롯의 전리품, 그것은 돌리고슬롯의 살코기였다.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나 조금 맛볼 수 있는 그 맛있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니. 동굴족 사람들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날 저녁 그들은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굴을 나왔다. 그리고 돌리고슬롯 마을로 향했다. 그들은야들야들하고 신선한 고기를 맘껏 먹을 생각에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