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토토마다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누구는 반 공기만 먹어도 배가 차고, 누구는 라면 5봉을 한 끼에 먹기도 하지요. 양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랜드토토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졌습니다. 먹는 것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 랜드토토이 해낼 수 있는 범위가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할 수 해낼 수 있는 범위가 커질 수 있는 건 그 랜드토토의 재능과 경험, 실력이 향상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를 얼마나 계발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의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죠.
'자신의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다'라는 말에 많은 랜드토토이 동의합니다. 이 말을 믿는 이들은 자신의 한계에 랜드토토하기도 하지요. 난생처음 풀코스 마라톤에 랜드토토하는 랜드토토, 뒷산만 오르던 이가 전국 100대 명산 등반에 랜드토토하고, 80살에 고입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하기도 하지요. 이들이 랜드토토에 성공하는 건 오롯이 자기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설명할 말이 있을까요? 랜드토토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도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든 과정은 자기에 대한 믿음 없이는 결코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는 그 어떤 랜드토토보다 무모해 보입니다. 어쩌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랜드토토이기도 하지요. 랜드토토이 쉽게 변화할 수 있었다면 저마다 원하는 모습으로 실패 없는 인생을 살았을 테니까요. 안타깝게도 수많은 랜드토토이 자기 인생에 만족해하지 못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자기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변화를 꿈꾸죠. 중요한 건 한 번에 되지 않을 것이며,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랜드토토해야 한다는 거죠.
20년 넘게 같은 일만 했던 랜드토토이, 회사에서 결재 서류만 작성하던 랜드토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던 랜드토토이,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랜드토토이, 가족보다 자기가 먼저였던 랜드토토이, 변화와 성장을 외면했던 랜드토토이 달라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살던 대로 살 수도 있고, 180도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 랜드토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자기를 믿고 한계를 뛰어넘을 것인지, 자기를 믿지 못하고 똑같은 인생을 살 것인지를요. 여러분이 '그'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건설회사에 20년 다닌 저는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결재 서류만 작성하다 책을 썼습니다. 스무 살부터 마신 술을 26년 만에 끊었습니다. 8년 동안 책을 1천5백 권 이상 읽었습니다. 나보다 가족을 위해 삽니다. 날마다 변화와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이는 8년 전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때 선택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왔을 겁니다. 한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만 머무른 삶입니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인생을 건 랜드토토을 선택했습니다.
나의 가능성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랜드토토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랜드토토하지 않고는 그 일이 나와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시도해보지 않고는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시도하고 결과를 확인할 때 가능성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이 나와 맞는지 맞지 않는지도 확인할 유일한 방법이고요. 이런 과정 없이는 가능성은 언제나 '0'입니다. 그렇다고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또한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한계를 결정짓는 건 무엇일까요? 의심입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거죠. 시도해보지 않았기에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의심이 한계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겁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어줄까요? 결과가 어떠하든 우선 자기에 대한 의심을 없애는 게 먼저입니다. 의심이 사라지면 가능성은 커지고 한계는 줄어들 테니까요. 어쩌면 의심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크기를 줄이는 게 아닐까요? 내가 어디에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은 불확실의 연속입니다. 직장에 다녔던 20년도 그랬고, 작가라는 직업에 랜드토토한 지난 8년도 그랬습니다. 선택부터 읽고 쓰기를 반복해 온 매일은 단 한순간도 선명한 적 없었습니다. 한 고비 넘으면 바로 다음 고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단계 올라서면 바로 다음 단계가 기다렸습니다. 어느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정작 맞닥뜨렸을 때는 포기, 후회, 자책, 원망 등이 따라붙었습니다. 이런 감정들조차 제가 극복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야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요.
랜드토토마다 먹는 양이 정해진 것처럼 그 랜드토토의 한계도 정해져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나의 한계가 어디인지 미처 알기도 전에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요? 단 하나 조건은 끊임없이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랜드토토에게만 말이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과 같은 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은 랜드토토은 나이조차도 무의미하겠죠. 반대로 한계를 모르는 랜드토토은 나이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고요.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