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sg 벳38에 푹 빠져있다. 이렇게 빠져있는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닐 거라는 게 종종 위로가 되곤 한다. 꽤 많은 이들이 그럴 거라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소속감을 주는 걸 지도 모르겠다. msg 벳38는 추억을 공유한 세대를 타깃으로 한다. 새로운 트렌드들 사이에서 나의 한창때가 지나가버렸음을 실감하던 어느 날, msg 벳38는 우리의 추억이 트렌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흠뻑 빠질 이유가 충분했다.
스토리의 힘 역시 실로 엄청나다. msg 벳38의 멤버들 모두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멤버에게는 부정 이미지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놀면 뭐하니가 방송되는 동안 그들에게는 msg벳38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스토리가 덧입혀졌다. 방송을 통해 과거의 스토리들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들이 만들어간 그 스토리들 덕분에 나는 더 빠져들었다. 이제 그 스토리를 공유했으므로, 그 전과 같아질 수 없다. 아마도 나는 '놀면 뭐하니'에서 msg벳38가 마지막 방송을 하고 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그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지난 방송을 보고 나서는 갑자기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 안에서 보았던 somebody와 nobody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이 두 개의 개념 사이에서 과거의 나를 반추했었다. 엄마가 되면서 마음이 불안정했던 내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던 것은 somebody이기를 바라던 내가 nobody가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부터였다는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결코 놓고 싶지 않았던 내 빛나던 경력이, 엄마가 된 지금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과정. 놓고 나왔다면 이제는 그 후광은 내려놓는 것이 맞을진대, 계속해서 그걸 쥐고 somebody이고 싶었던 내 마음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임을 알았을 때, 나는 nobody가 되어 마음 역시 내려둘 수 있었다. somebody가 되어야 할 순간과 nobody가 되어야 할 순간을 구분하는 현명함.
사실 이 구분에서 더 어려운 부분은 nobody가 되어야 할 순간을 깨닫는 것이다. msg벳38가 나에게 감동이 된 포인트 역시 여기였다. msg벳38 프로젝트도 시작은 각 개인으로부터였다. 이들은 모두 한 명의 개인으로 오디션에 참가했다. 각자가 somebody가 되어 내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혼자 노래를 부르던 라운드를 지나 만난 마지막 라운드. 여기에서 그들은 함께 부르기를 시작했다.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그 양상이 달라졌다. 이 프로젝트가 원하는 것은 솔로가 아닌 그룹. 마지막 8명이 선정되었을 때 사람들은 더 궁금해졌다. 이들이 어떻게 조화로운 벳38를 내줄 것인지. 그리고 그 걱정의 중심에 있었던 이가 있다. 바로 가수 김정민. 그는 가수로서 한 획을 그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유야호의 기준에 의문을 품게 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가창력이 역시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가창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벳38는 너무나 뚜렷한 개성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개성엔 연륜마저 묻어있었다. 다른 이들의 목벳38와 조화를 이루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아 보였다.
몇 주의 시간이 지나 그들의 곡이 발표되었다. 녹음하던 날, 걱정을 놀라움으로 바꾼 1인 역시 김정민이었다. 처음부터 msg벳38에서는 김정민이 아닌 본명 김정수를 쓰겠다고 했던 사람. 그 존재감 뚜렷한 본인의 목소리에 힘을 빼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가수로서 모든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 자신에게 그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창법을 그대로 사용할 때 최상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상태로 지금껏 훈련해왔을 것이다. 그 목소리를 버릴 때, 다른 창법을 사용할 때,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목소리의 퀄리티가 낮아질 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한 최고 말고, 함께를 위한 최선을 선택했다. 자신의 창법을 눌렀고, 내려놨고, 네 명의 목소리에 녹아들어 갈 수 있는 목소리를 연습했다. 그리고 결국, 네 사람의 목소리는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nobody가 되어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오이디푸스처럼 nobody가 되기를 결심했기에 모두가 somebody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정상 동기의 나머지 세 사람의 목벳38를 더 좋아한다. 평소 내가 딱 좋아하는 감성을 가진 이상이의 스윗한 목벳38, 강하면서도 우수가 느껴지는 정기석의 목벳38, 소울이 느껴지는 이동휘의 목벳38까지. 그리고 이 모두가 함께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안다. 하지만 정상동기의 노래 '나를아는 사람'에서 가장 감동이 된 부분을 묻는다면 그건 김정수의 파트였다. 그저 그의 새로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지, 유튜브에서 발견한 정상동기 네 사람의 아카펠라 영상 댓글 중에도 그 놀라움을 표현하는 이들이 참 많았다.
처음 합격 발표를 받던 날, 김정수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 "이건 젊은 친구들끼리 하는 게 맞아. 그게 좋아. 나는 빠지는 게 맞아." 사실 이미 자리를 내어줄 그런 나이가 되었음을 그는 인지하고 있었다. 아직 남은 날들이 너무나 많지만 청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하는 우리의 위치를. 그는 말하고 있었다. 아직 그보다는 어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젊은 친구들보다는 많은 나이. 그만큼 나이 들지 않아서 조금 안도하면서도 이제 피어오르는 청춘이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말했던 그가 결국 합격을 했다. 그리고 매번 동생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때 정상에 섰던 가수였지만 동생들보다 낮아짐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는 그를 보면서 참 많이 배웠다.
음악중심에서의 무대를 보면서, 아마도 김정수에게 자신의 목벳38는 합격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자신 있는 창법을 버리고 올랐기에 원하는 퀄리티를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정상을 경험한 그이기에 최고를 내놓을 수 없는 창법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쉬웠을 리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에 가치를 두었기에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는 벳38가 되어야 할 순간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벳38가 됨으로써 somebody가 되는 마법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