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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Mar 09. 2025

가을길 36,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강남슬롯 36

아스트로가에서 라바날 델 강남슬롯(23km)

강남슬롯

오랜만에 아침 6시에 일어나 두더지처럼 살금살금 짐을 챙겨 7시에 아스토르가 200년의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오늘 23km 떨어진 라바날 델 까미노에 있는 성공회에서 선착순 기부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 체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것은 가끔씩 지나는 자동차와 헤드랜턴을 켜고 적막한 길을 서둘러 떠나는 강남슬롯자들의 불빛이다.

강남슬롯익숙한 길거리 물먹기
강남슬롯

오랫동안 걸었던 지루한 메세타 평원이 끝나고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붉은 황토밭의 짙은 안개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걷는 강남슬롯자들을 묘하게 한다.


'지금 내가 이 안갯속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 헤맨 적이 있었다.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 때.

나는 주저앉아 눈을 꼭 감은 적이 많았다.

안개가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높은 고원지대에 습기도 많아 나무에 이끼가 많아 제주 한라산 둘레길이나 곶자왈을 걷는 것 같았다.

안개 낀 길
성당 첨탑에 새 둥지

안갯속에 무리아스 데레 래치발도와 산타 카타리나데 소모사까지 9km를 걷는데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선착순이 주는 압박감이다. 성당과 마을을 둘러 가는 강남슬롯은 쉼터라고는 작은 바와 간혹 있는 푸드트럭, 무인 판매점이다.


두 시간 이상 걷다 보면 앉아서 양말을 벗고 뜨거운 발을 식힐 수 있으면 뭐든 반갑기만 하다. 오늘은 안개비에 젖은 돌 위에 우비를 깔고 앉아 아주 잠시 쉬었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작은 바와 움직이는 기념품가게

오늘도 바삐 걸으며 한국인들을 여럿 만났다. 알베르게나 작은 바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것도 익숙할 정도이다. 라바날 델 카미노는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일부러 이곳에 머문다. 그래서 아주 작은 마을 몇 안 되는 건물들 중 수도원과 성공회 운영 알베르게, 호텔, 공사립 알베르게가 많다

길거리 수제 세요 아저씨. 알베르게 2등으로 도착하여 줄 섬

12시부터 체크인인 줄 알고 쉬지 않고 앞만 보고 언덕길을 올라 수도원에 도착하니 11시 40분이다. 일본인 청년이 문 앞에 앉아 있다. 그리고 친구와 내가 2번, 3번이다.

강남슬롯 닌자 앱의 안내와 달리 체크인이 1시였다. 가방을 줄 세우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오니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서로 순서를 세고 기다린다.

나이가 아주 많은 봉사자들의 친절한 안내와 2층 공용공간이 참 좋다. 오후 2시부터 내린다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폰세바돈 봉우리로 가는 능선이라 마을이 훤히 보이는 것이 경치가 좋다.

봉사자님이 춥다며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난로를 피워주신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4시 티타임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 따뜻한 홍차와 밀크티, 과자를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하며 이곳에 감사했다.

'모두들 얼마를 돈통에 넣었을까?'


모두 처음 만난 사이인데 반갑게 인사하고 몸은 괜찮은지 챙긴다. 모두가 강남슬롯 동지이자 친구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주고 얻는다.

낡은 성당에서 기도했다. 강남슬롯 218km 남았다!

오래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작년에 이곳 라바날 수도원에서 2015~2020년 근무한 한국인 임영균(56) 신부의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분도출판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라바날(Rabanl) 수도원에 한국인 강남슬롯자가 오면 ‘일단 멈추시라’고 권하지요. 한국 사람은 산티아고 강남슬롯를 와서도 대부분 빽빽한 계획, 목표를 다 지키려 하지요. 그러나 제 권유를 듣고 멈춘 분들은 더 큰 것을 얻어 갔다고 하시더군요.”


이 책은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강남슬롯을 3등분 한다.


몸의 강남슬롯’ ‘정신의 강남슬롯’ 그리고 ‘영혼의 강남슬롯’다.


이곳 라바날 수도원은 3분의 2 지점, 강남슬롯 대성당까지는 마지막 보름 정도 여정이 남는다. ‘영혼의 강남슬롯’출발점이다.

출발부터 한 달에 걸쳐 갖은 고난을 겪은 강남슬롯자들은 이 지점쯤 되면 몸과 정신이 적응된다. 자칫 ‘왜 걷는가’를 잊고 습관적으로 ‘그냥 걷게 되는’ 지점이다.

강남슬롯자들의 사연은 각자 다르다. 공통점은 몸과 마음의 간절함이자 목마름이다.


그대의 현재 모습이 나의 과거 모습이었고, 나의 현재 모습이 그대의 미래 모습이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수도자에게도 강남슬롯은 스승이었다고 한다.


“강남슬롯는 여가나 건강관리를 위한 길이 아닙니다.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라는 거룩한 장소를 향해 가는 길이기 때문에 영적인 길이 되는 것이고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를 돕는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임신부님은 “그렇지만 ‘찐(진짜) 강남슬롯’는 스페인에 있지 않다.”


진짜 카미노는 강남슬롯를 마친 후 떠나온 자리,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내가 천사가 돼 남을 도울 때 비로소 시작된다.”


라바날 수도원은 이제 쉬는 기간이고 나는 바로 옆 성공회에서 강남슬롯자들을 위해 세운 알베르게(안식처)에 머문다. 봉사자님은 환한 미소와 친절한 음성으로 능선에 위치한 이곳의 해 질 무렵과 해 뜰 무렵 경관이 아주 아름답다고 꼭 보라고 한다. 바로 앞 성당에서 한국인 신부님이 오늘 7시 미사를 집전하니 운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곳은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니 조용히 명상을 하면 좋을 것이고 내일 아침 무료로 맛있는 식사를 부담 없이 먹으라고 하신다.


시골 작은 성당에서 정갈하고 따뜻하게 불을 밝히며 비 맞으며 걷는 강남슬롯자들을 환하게 맞아 주시던 노수녀님,

혼자 있는 강남슬롯자를 챙겨주시던 산타마리아 알베르게 노수녀님,

추운 강남슬롯자들에게 힘들게 장작을 피워주시며 젖은 빨래를 챙겨주시는 팔순의 봉사자님---

이런 봉사와 헌신이 스며들 때 존경과 신앙이 우러나는 것 아닐까?'

스페인 와서 처음으로 라면에 흰밥을 말아 생김치와 먹었다! 보통 알베르게 강남슬롯자 정식이 15유로이니까 대만족이고 행복이다.

오늘의 선물은
라면국물에 흰쌀밥에 생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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