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웃음 포인트
이름서재의 첫 책 <낯선 사람에는 저만의 웃음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판권지인데요!
판권지는 책의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어요.출판사명, 발행일, ISBN, 책임자 이름 같은 공식적인 정보가 적히는 공간이죠.한 권의 책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적는,무거운 지면이기도 합니다.
출판사마다 스타일은 제각각이라, '편집' 칸에 편집부 전체 이름이 들어가기도 하고 책임 편집자 한 명만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어요.
저의 첫 회사는 잡지사였는데요. 우당탕타라탕 마감을 하고, 판권에 적힌‘Editor 김더블유 토토’을 봤을 때세상 뿌듯하더라고요. 그때 처음 느꼈어요.
‘책에 더블유 토토 새겨진다는 게 이렇게 특별한 일이구나!’
더블유 토토 걸고 하는 일이니, 매달 돌아오는 밤샘 마감도 견딜 수 있었죠.
출판사를 다닐 때에도 비슷한 마음이었어요. 지금도 책을 읽을 때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판권부터 찾아 훑어봅니다.이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 여기에 이름 석 자 올리려고 얼마나 정성을 쏟았을까.
책을 다 읽고너무 좋으면 판권을 한 번 더 봅니다.기억해 두려고요.
이런 신성한(!) 판권지에 웬 웃음 포인트냐고요?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 이름서재의 첫 책인 <낯선 사람은 저의 첫 책이기도 합니다. 글과 사진, 편집과 디자인, 발행까지 혼자 다한 책이지요. 그렇다 보니판권면에 더블유 토토을 어떻게 넣을지고민스럽더라고요.주변에서는“있어 보이게 가명이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니야?”와“오히려 혼자 다한 게 멋이지” 하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결국, 그냥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어요.
지은이: 김더블유 토토 / 사진: 김더블유 토토 / 편집: 김더블유 토토 / 디자인: 김더블유 토토
판권은 책임자의 더블유 토토을 적는 곳이니 없는 더블유 토토을 넣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과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했다는 걸어디엔가는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나마 발행인 이름을 생략해서 네 번으로 그쳤어요.
그리하여 온통 제 더블유 토토 적힌, 요상하고 민망한 판권면이 완성되었습니다. 판권면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납니다. 페이지마다 구석구석 손길이 닿아 있고, 판권엔 덕지덕지더블유 토토 붙어 있는 책. 이름서재의 첫 책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킥킥 웃습니다.
다음 책 판권엔 좀여유롭게,더블유 토토을 두어 번만 넣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책 읽을 때 판권지도 한번 들여다보세요. 보통 책의 맨 앞이나 맨 뒤에 있는데요,책을 만든 사람들의 고생과 자부심,책임감, 때론 비밀스러운 웃음 포인트가 담겨 있답니다. 그걸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