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비타임 토토에서 편집자로 일할 때, '팔릴 만한 저자'를 찾는 일이 참 어려웠습니다. 대형 비타임 토토가 아닌 이상 유명 저자를 모셔오는 일은 한계가 있고, 아직 그렇게까지 유명하진 않지만 팔릴 만한 요소를 가진 인플루언서를 찾아야 했죠.
'이거 팔릴 것 같던데'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왜 힘들까.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 인지도와 개별 타이틀 모두 너무나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는 어떤 책이든 '이 비타임 토토의 책이라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타임 토토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더더욱이요.
이런 말을 했더니, 한 비타임 토토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자꾸 브랜딩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잘 팔리는 게 브랜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제 말이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던 모양이고, 여러 모로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나 봅니다.
"그쵸. 팔리는 거 너무 중요하죠."
책도 상품이기에 팔려야만 한다는 데 5000% 동의합니다만, 그 말이 묘하게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타임 토토를 차리고 나서도 '브랜딩'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멀리 있었습니다. 아직 그런 걸 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 시리즈 제목처럼 '얼떨결에' 차렸기에 더 그랬겠지요.
1월에 <낯선 사람 출간과 함께 비타임 토토를 차리고, 3월에 출판연구학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출판연구학교는 1인비타임 토토 대표를 비롯해 출판계 종사자들이 모여 출판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커뮤니티입니다.
매 기수마다 10명의 동기가 있고, 출판계에 오래 몸담은 운영위원님들과 함께 매주 직접 발제하고 토론하는 모임. 출간 종수가 달랑 한 권뿐인 비타임 토토 대표를 받아주신 덕분에, 출판연구학교 5기로 3개월 동안 신나게 출판을 공부했어요.
첫 주자로 당첨되어, '작은 비타임 토토는 어떤 기획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답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제이기에, 같이 나누고 함께 답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발표 준비를 하면서 제가 평소에 좋아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롤모델 비타임 토토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유유비타임 토토 — [고전과 공부] 누가 봐도 '유유' 디자인, 땅콩문고 시리즈
자기만의 방 — [나로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 에디터스 레터 등 '자기만의 방' 시리즈를 만드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냄.
북스톤 — [나답게 일하기] 장인성, 이승희 등 유명 마케터를 비롯한 일잘러들의 책 출간
녹색광선 — [고전을 아름답게] 고전을 감각적으로 디자인, 누가 봐도 '녹생광선' 디자인
터틀넥프레스 — [책 좋아하는 사람들] 2024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루키 비타임 토토, 스튜디오 고민과의 지속적인 협업
자기만의 키워드와 색깔을 중심으로 독자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다섯 비타임 토토를 보며, 작은 비타임 토토가 살아남는 방법을 정리해 봤습니다.
관계로 만드는 기획
시리즈 전략 (책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 흐름)
팬덤형 브랜드 기획 (소수라도 찐 독자 만들기)
작은 비타임 토토는 결국 브랜딩이 필수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의 문제가 남기는 하지만요.
발표 후, 출판연구학교 선생님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 대형 비타임 토토의 편집자로 오래 일하신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출판계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있는 사람과 책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이 있어요. 전자는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며 '누구에게 팔 것인가,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를, 후자는 '시장에서 원하는 책이 무엇일까, 어떤 콘텐츠가 먹힐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죠. 시리즈, 팬덤 마케팅, 브랜딩 다 좋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우선 '나는 어디에 해당하는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해요."
이마를 탁, 무릎을 탁 쳤습니다. 비타임 토토도 결국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발표를 마치고, 제가 꼽은 다섯 개의 출판 브랜드 중 무려 세 개에 '김보희 편집자'라는 한 인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는데요. (유유에서 땅콩문고 저자로 <첫 책 만드는 법 출간, 자기만의 방 브랜드 론칭 멤버, 터틀넥프레스 대표)
비타임 토토연구학교 선생님들이 김보희 대표님과 잘 아는 사이라 특강을 열어주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리 질러!)
그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하도록 할게요.
브랜딩 이야기가 나온 김에, 터틀넥프레스 김보희 대표님과 포인트오브뷰 김재원 대표님으로부터 들은 인사이트를 꾹꾹 담아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