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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나무 May 09. 2025

아무튼 바카라 2. ENTJ와 ENFP 부부 이야기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사람은 자신과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자신과 다른성향을 가진 이에게매력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내가 남편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는후자였다.


나의 MBTI유형은ENTJ.끊임없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노력성장해야한다는부담감 속에서 살았다. 간혹스스로 빈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죄책감마저들었다. 그렇게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원하던 목표를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냈지만 마음 한 편에압박감과 긴장감이있었고,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가 바카라인 남편을 소개팅으로 만났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재미있는 사람!


남편에대한 첫인상이었다. 바카라은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돌발 상황이 생겨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아, 그래?"하면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해결방안을 찾아냈고, 곧바로 플랜 B, 플랜 C를 척척 제시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고, 그래서 함께 있을 때 참 든든했다.




하지만 그런 성격적 다름이 매력으로 느껴졌다고 해서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서른 즈음에 만난 우리는 평일에는 직장일로 늘 바빴기 때문에 거의 주말에만 만나 바카라 준비 겸 데이트를 했다. 예물로 커플링을 맞추기로 한 어느 주말 낮,나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바카라을 만나러 나갔다. 평소에는 잘 바르지도 않는 핑크핑크 아이쉐도우를눈두덩이에바르고서말이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바카라이 딴 소리를 했다. 오늘은 일이 생겨서 카페에서 차만 한 잔 마시고 헤어지잔다. 서울에서 갑자기 친구가 와서지금만나러 가야겠다며.


"엥? 우리 오늘 커플링 맞추러 가기로 했잖아! 친구한테 나중에 만나자고 하면 안 돼?"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바카라은 미안하다며 커플링은 다음에 맞추러 가자고 했다. 그는 서운해하는 내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이 사람은'융통성', '느긋함'을 나와의 약속을 변경하는데 쓰는구나. 나와의 약속을쉽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생각을 하니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바카라의 즉흥적인 의사결정은 바카라 후에도 종종 이어졌다.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던바카라 2년 차.주중에는 바카라이 회사 일로 바빠서 나 혼자 거의 독박육아를 하고있었다. 그러던어느 날, 이번 토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모처럼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맙소사. 토요일 아침에 바카라이 갑자기 출근을 해야겠단다. 나는발끈했다.


"뭐? 우리 오늘은 바람 쐬러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


가뜩이나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지 않는 육아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차에, 기대했던 주말 가족 나들이마저 갑자기 무산되고 나니 우울감이 찾아왔다.오후 늦게 퇴근한 바카라은 이런 와이프의 상태를 보고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제안했다.


"우리 저녁이라도 나가서 먹고 올까?"




어느 식당에 가서 뭘 먹을지도 정하지 않고 일단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남대구 IC에 가까워지자 바카라이 내게 물었다.


"왼쪽으로 갈래? 오른쪽으로 갈래?"

"으, 응? 왼쪽?"


그렇게 왼쪽 방향을 선택해서 얼마간 달리다가 바카라이 또 한 번 물었다.


"이번에는 왼쪽? 오른쪽?"

"음, 이번에는 오른쪽?"


전주 당첨!!


그렇게 저녁 한 끼 먹으러 가겠다고 출발한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바로 전주였다.그리고 드디어 저녁메뉴를 정했다.


"우리, 전주비빔밥먹으러 갈까?"


세상에.. 대구에서 전주까지 이렇게 즉흥적으로 갈 수도 있다고? J형인 나로서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왕 전주까지 왔으니 1박을 하기로 하고, 급히 숙소를알아보았다.전주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전주한옥마을에서 유모차 산책을 하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팥빙수까지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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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소 근처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았다.세면도구며 아기 여벌옷도 없이준비 없이온 여행이었기에,아동복 매장에서 아기 내복을 한 벌 구입하고, 화장품 매장에서 폼 클렌징을 구입하면서 스킨, 로션 샘플을 하나씩 얻었다. 이런 즉흥적인 1박 2일 가족여행이라니.. 여행을 가려면 며칠 전부터 준비물 목록 체크하면서 짐을 싸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은 근처 교회를 검색해서 전주 ㅇㅇ교회 모자실예배도 참여했다. 전주까지 왔으니 온 김에 전라도 투어를 하자며 예배 후에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사진도 찍고,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과 녹차밭으로 유명한 보성까지 야무지게 둘러보고 벌교 꼬막정식까지 먹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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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내 모습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울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계획에도 없던 전라도 1박 2일 가족여행을 즉흥적으로 다녀온 이후 난 P형 바카라을 무한신뢰하게 되었고, 바카라이 간혹 약속을 미루거나 갑자기 다른 제안을 하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두 자녀가 7세, 5세가 된 어느 해 여름!이번 여름휴가에는 가족 여행으로 3박 4일 정도 강원도로 가볼까 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출발하기 바로 전 날, 태풍이 온다는 기상예보를 접했다. 태풍을 뚫고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도 무리였고,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태풍 온다는데, 우리 여행 어떡하지?"


J형인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 상황에 일단 짜증이 났다. 그러자 P형인 바카라은 잠시 고민하더니 폭풍검색에 들어갔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뜬금없는 바카라의 제안.


"우리 대만 갈까?"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대구공항에서 출발하는 대만행 비행기 티켓이 저렴하게 나온 게 있단다. 대만은 태풍이 지나가서 날씨도 괜찮을 거라면서.


"갑자기? 언제 출발하는 비행기야?"


"오늘 밤!!"


세상에나. 미취학아동 둘을 데리고 가는 첫 해외여행을 이렇게 출발 몇 시간 전에 결정하고 떠난다고? 이렇게 아무 계획도, 아무 준비도 없이?


준비된 거라곤, 여권뿐이었다. J형인 내가 연초에 아이들 유치원 서류에 넣을 증명사진을 찍으면서 여권사진도 같이 찍고 발급받아둔 터였다.


게다가 교사인 나는 방학 중이어도 해외여행을 가려면 연가 신청을 해야 했다. 급히 교감선생님께 연락드려 상황을 말씀드리고, 자녀들을 차에 태우고 학교로 가서 연가신청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항공편과 출발 당일 묵을 호텔만 달랑 예약한 채, 부랴부랴 몇 시간 만에 짐을 꾸리고 우리 가족은 공항으로 출발했다. 하지만바카라 남편을 무한신뢰하고 있었기에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남편에게믿고 맡겼다. 첫째 날 숙소에서 바카라은 또다시 폭풍검색을 이어갔고, 나머지 이틀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코스를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3박 4일을 대만 곳곳을 누비며 신나게 여행을 즐겼다.





ENFP 바카라 덕에 나도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법을 배웠고,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ENTJ 성향이 어디 가는 게 아닌지라 여전히 어떤 과제를 앞두고 빈틈없이 준비하고 계획대로 한 번에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곤 한다.


나는 바카라하던 해에 대학원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근무하며 두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공부까지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느라 수료하는 데만 5년이 꼬박 걸렸고, 논문 주제 결정하는 데도 3년 정도 걸렸고, 논문을 쓰고 심사를 받기까지 3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남들은 4~5년 정도면 박사학위를 받던데, 나는 무려 11년 6개월이 걸린 것이었다.


논문 심사를 앞두고 긴장감에 떨며 남편에게 말했다.


"11년 반이나 걸렸는데,이번에논문 심사 통과 못 하면 어쩌지?"


바카라은 소파에 드러누워 한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태평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11년 반이나 걸렸는데, 한 학기 더 하는 게 뭐 어때서? 맘 편히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장감이 싹~ 사라졌다.


하하하.. 그렇지?



내가 긴장할 때마다 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웃겨주는 바카라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심사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박사학위를 마치는데 바카라의 이런 느긋함이 가장 공이 컸음을 밝히며 이 자리를 빌려 뒤늦게 감사를 표현해 본다.




하지만 지금도 주말에 가끔 뜬금없이

"여보, 나 오늘 낚시하러 가도 될까?"라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한 마디 한다.


"쫌!!! 미리미리 말을 하라고!! 그래야 나도 미리 계획을 세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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