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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Mar 31. 2025

우리 룰라벳 애순이와 금명이가 있다 3

내 껌딱지가 이제 손을 흔든다

달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룰라벳와 단둘이노는 것이 심심했는지 아니면 다른 환경에 호기심이 갔는지집 앞에 있는 유치원을 지날 때면 뛰어노는 언니, 오빠들을 보며 자기도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아직 유치원에 갈 나이도 아니거니와 그때는 어린이집에 다녀도 원비 등 어떤 보육지원도 받을 수가 없었다. 온전히 원비를 다 내기엔 부담스러웠다.

조금만 더 있다가 4살이 되면 어린이집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딱 만 36개월 4살이 된3월에아이는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던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을 갔다.

(유치원은 5살부터 갈 수 있었고 그전에는 어린이집을 다녀야 했다. 맞벌이 가정이 아니고는 대부분 4살에 기관에 보내기 시작했었다)


어린이집에 입학해서는 집이 아닌 처음 만나는 다른 세상에 너무나 설레어하고 신나 했다. 다른 아이들은 버스 앞에서룰라벳랑 헤어지기 싫어서 울고, 가기 싫다고 울고 했는데 달이는 버스를 타면서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한 번도 울지 않았다.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면서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쉽지도 않은가 싶어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껌딱지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룰라벳가 어느새 자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자기의 길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니 이 룰라벳는 크고 작던 독립의 순간마다 망설이지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갔었다.

어린이집이 그 시작점이었구나.


어린이룰라벳 가고 2주가 지나서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어머니, 달이가 룰라벳 반 보조 선생님이네요. 아침 등원 시간에 신발장 옆에 서서 친구들 신발 자리를 다 알려줘요. 점심시간에는 친구들 도시락 챙길 수 있게 다 찾아주고 하원 시간엔 수첩을 나눠주고 있어요."

도대체 얘가 어떻게 25명 친구들 신발장을 다 외울까? 이름을 다 외웠다고 해도 신발장 위치까지 다 외우기는 힘들 텐데 말이지. 근데 똑같은 도시락과 수첩은 어떻게 나눠준다는 건지.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주면 갖다 준다는 건가?


출산을 코 앞에 앞두고 있었고 7개월부터 만삭 같았던 내 배는 이미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 출근하는 남편은 늘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배(외투가 잠기질 않았다)로 나가기도 무서웠고 겨울이라 룰라벳와 둘이서 집콕을 해야만 했다.

지루해하는 룰라벳와 앉아서 놀고 싶은 엄마는어린이집에 입학하기 전에 마분지를 잘라서 네임카드를 만들었었다. 이미 어린이집 친구들 명단은 나와 있었기에 반 친구들 25명의 이름을 다 적었다.

룰라벳를 부른 배 앞에 어렵게 앉히고서 하나하나 읽어줬다. 자기 이름은 알아야 신발장과 사물함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많은 이름들 사이에 자기 이름만 찾으라고 연습을 몇 번 시켰었다.


자기 전에 동화책을 여러 권 읽고서야 잠이 드는 룰라벳였지만 옆에 둘째가 생기니 예전처럼 책을 읽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는 옆에서 울고 첫째는 계속 책을 읽으라 하고 나는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서 룰라벳들을 양쪽에 끼고 누워서 책을 큰 룰라벳 쪽으로 펴고서 읽어주다 졸아서 책을 얼굴 위로 여러 번 떨어뜨렸다.

그러다 생각해 낸 방법이 동화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지 않고 이야기의 큰 틀은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중간중간 패스하며 읽는데 "아니야, 다시 읽어. 아니잖아. 아니야"

'혹시 얘가 이야기를 다 외우나?' 싶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책을 읽는데 빠뜨리는 부분을 알아차리며 "아니야. 다시" 하는 거다. 이미 한글을 다 알고 내가 읽는 부분을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던 거다.

눈치 없는 초보 룰라벳는 그제야 알았다. 이 아이가 한글을 알고 있다는 것을.

글을 읽어보라고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웃기만 했다. 읽지 못하는지 않는 건지 그래서몰랐던 거다.

근데 길을 걸으며 짧은 단어들을 가리키면 "호두과자, 솔밭 유치원, 사람 모집, 신도시 약국, 대박 부동산" 읽는 거다.


글만 읽으면 동화책 읽기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글을 아는 것과 책을 읽는 건 다른 거였고

글밥이 점점 많아지는데 큰 룰라벳가 읽어달라는 책의 권수는 줄지 않았다. 그럴수록 둘째는 혼자서 뒹굴거리다 자는 날의 연속이었다.


룰라벳 둘을 키우는 건 룰라벳 하나 키우는 것에 비해 2배 힘든 게 아니라 3~4배는 힘이 들었다.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잘할 수 없었고 쌓이는 스트레스로 큰 룰라벳에게 화를 내고 있는 횟수가 늘었다.

큰 아이가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몰랐다. 어느 날 큰 시누이가 나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애가 룰라벳 눈치를 살핀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이 마음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보다는 차라리 내가 망치로 맞아 상처 입는 게 훨씬 더 나았을 텐데. 지금까지도 너무나도미안하고 부끄러운 부분이다. 아이가 제발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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