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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05. 2025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사랑

멘털이 약한 편은 아니다. 변호사가 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은 입증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 잠시만, 법조계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잠시 부연 설명을 하자. 법조계에는 위계질서가 굉장히 강하고, 점잖은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서로가 모든 면에서 비교하는 분위기가 암암리에 있다. 연수원 등수로 사람을 평가하던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사법고시보다 합격하기 쉽다고 여겨지는 변호사시험도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법조계에서 기본적으로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깔고 가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논문을 쓰고 법을 가르치며 다양한 법조직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보면 내 멘털이 약한 것은 분명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사람이 법조계에서 일하는 케이스를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내가 여전히 안에 있는 것은, 내가 전공한 박사전공을 사랑하고 놓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변호사자격증은 없지만 법학 박사로 변호사협회 위원회의 외부위원으로 일하고, 지금도 정부 내 위원회 위원으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누구도 뭐라고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위축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던 시절이 당연히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잘 넘어가면서처음으로 '내가 의외로 혼자 살아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과 다시 솔로부대로 돌아오는 지인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브런치에서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연애와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란 결론을 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여기에 더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을 만나는 것에 신중을 기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하는 게 힘들어지면서, 이대로 살아야 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며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아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80년을 넘게 독신 생활을 하시다 2018년에 자신의 대학 동기와 결혼한 이수영 회장의 이야기를 2020년에 접했을 때는 그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그 뒤에 나온 이야기가 더 중요했다. 암을 두 번 걸리셨다 보니 먹어야 할 약이 많은데 그걸 다 챙겨주고, 아침마다 사과를 깎아준다는 말.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 일상에서 나와 함께 해주고 있다는 것, 나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였다.


카이스트에만 700억을 넘게 기부하셨으니어쩌면 앞만 보고 계속 달려야 할 수준으로 일이 많아서 외로움을 느끼실 틈도 없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재산이 많으시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셨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본인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80년 넘게 혼자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기에 결혼을 하셨단 것이다.


30대 중반까지는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지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려올 때까지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하는 시간에는 전화를 할 수가 없었고, 퇴근한 뒤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연락하는 게 조심스러웠으며, 이성의 경우 괜히 나와의 연락이 분란의 시발점이 되는 게 조심스러워 어떤 형태의 연락도 하기가 쉽지 않아 지더라.


그렇게 연락하는 빈도가 줄어들다 보면,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업데이트되지 않다 보니 오랜만에 연락해도 근황만 업데이트하고 헤어지기가 부지기수. 근황을 가까스로 업데이트하는 수준이다 보니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내 마음을 다 털어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내가 이야기를 터 놓을 수 있는 건 가족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본인의 인생이 우선일 수밖에 없고, 나와 아무리 친해도 계속해서 내 걱정을 하거나 나를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 역시도 그들의 상황을 꼼꼼하게 챙기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니까.


그런데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가족 안에서 구도가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족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가 힘들어지더라. 그리고 형제, 자매, 남매는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지인들보다는 가깝게 지낼지 몰라도 여러 측면에서어쩔 수 없이 점점 남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 상황을 통해 느끼게 됐다.최근에 민법 개정을 통해 형제간에 유류분에 대한 내용을 삭제한 건,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그렇게 온전하게 고립이 되고 나서야비로소지금까지 내가 버텨온 건 내 주위에서 나를 챙겨줬던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큰 것을 해준 것이 아니다. 나와 만나주고, 연락하고, 대화하고, 공감해 줬던 사람들과의 교류하는 과정이, 그 교감의 총합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아보니 그 교감이 모두 사랑의 한 종류였더라.


강원 랜드들은 사랑을 얘기하면 스킨십 이야기를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 물론, 스킨십은 매우 중요하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에서 스킨십은 중요하다. 위로해 줄 때 손을 꼭 잡아주거나, 포옹을 하고,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과 같은 스킨십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위로를 강원 랜드과 강원 랜드 사이에서 전달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이들이 자신이 신뢰하는 강원 랜드과 붙어있고 싶어 하고, 안기려 하는 것도 스킨십을 통해서 전달되는 온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킨십, 특히 에로스적인 사랑에서의 스킨십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스킨십이나 소위 말하는 속궁합이 잘 맞는 것은 오락과 쾌락적인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강원 랜드들이 환호하고 장안의 화제였던 도시어부가 어느새 자리를 감추고, 최강야구에도 강원 랜드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듯이 그러한 스킨십을 통한 만족감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같은 스킨십도 내 편이라고 확신을 주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강원 랜드과 할 때, 즉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열린 뒤에 신뢰하는 강원 랜드과 스킨십을 할 때 우리는 더 큰 안정감과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고 그런 스킨십을 통해 얻게 되는 만족이 더 지속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강원 랜드이라고, 온전히 신뢰할 수 있고 내 모든 것을 그 강원 랜드에게 터놓고 보여줘도 될 정도의 강원 랜드이 우리는 모두 반드시 한 명은 필요하다.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 이혼한 강원 랜드들 중 상당수는상호 간의 신뢰와 교감이 아니라 돈, 명예, 권력, 스펙과 같은 다른 가치에 끌리고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결혼을 했다 보니 그 관계에 신뢰와 교감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을 넘어 사라진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며, 교감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다 보면 둘 사이에 존재했던 신뢰, 교감과 공감의 영역이 희석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아니, 사실 한 사람만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는 자신의 속을 털어놓는 사람이 여러 명이면 우리는 그 사람이 내 상황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할 수도 있고,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 인해 신뢰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대가 한 사람이 있고, 내 깊은 이야기와 감정은 그 사람에게만 보여준다면 두 사람은 서로 새로운 부분만 업데이트하면 되기에 그런 사람은 한 명만 있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인 삶이 너무 좋고, 재혼은 전혀 생각이 없다고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말했던 방송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올해 촬영한 한 유튜브 영상에서 최근에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하더라. 결혼생활이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이혼하고 나서 몇 년간은 혼자인 게 너무 홀가분하고 좋았는데, 싱글로서 몇 년을 살다 보니나이가 더 들면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필요성은 더 많이 느낄 것 같다는 그 사람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걸 나이가 들어가며 고립되고, 생물학적인 노화가 찾아오면서 여실히 느낀다. 당신 옆에 있는 사람과 많이 싸우겠지만, 당신이 그나마 지금 정도라도 정서적, 현실적으로 버티고 있다면 그건그래도 그 사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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