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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07. 2025

짱구카지노과 우울증 그 사이

이명과 우울증은 상부상조하며 나를 갉아먹는 데 서로 협조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계기로 귀를 다쳤다.그때 청력이 꽤 소실됐고, 짱구카지노이 생겼다. 그날의 감각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땅에 발을 디디면 발이 땅속으로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고, 한쪽 귀가 너무 시끄러워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무서워서 학교에서 울었다. 선생님이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조퇴를 시켜주셨다.


병원에 꾸준히 다녔다. 하지만 소실된 청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짱구카지노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지막에 방문한 병원에서는 짱구카지노 훈련법을 알려주셨다.

“가장 작은 소리로 이어폰을 끼고 하루에 12시간 이내로 계속 소리를 들어요. 아주 오래 해야 할 거예요. 그러면 짱구카지노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짱구카지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간절했다. 다음 해에 수능도 봐야 하고 듣기 평가도 있는데 반드시 이겨내야 했다. 그렇게 훈련을 시작했고 짱구카지노이 아주 작아져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소실된 청력 때문에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그쪽 방향으로 전화를 받으면 소리가 옹알이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온갖 인터뷰와 취재현장을 다니며 일할 수 있었던 건 4년간의 짱구카지노 훈련으로 어음 능력이 아주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오며 어느덧 내 나이 41살, 비극이 다시 시작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을날 짱구카지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마 무리를 했던 모양이다. 당시 자격증 공부를 하느라 하루 12시간씩 공부하고 그 와중에 체력 유지한다고 한 시간씩 운동하고 강아지 산책도 했다. 기분이 내키면 14시간씩 공부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한쪽 귀에서 공장이 가동되는 듯 시끄러웠다. 피곤해서 일시적으로 짱구카지노이 온 줄 알고 그날은 공부를 내려놓고 푹 쉬었다. 하지만 짱구카지노은 마치 나를 놀리듯 더 심해졌다. 급히 검색해 짱구카지노을 잘 다룬다는 이비인후과 병원에 방문했고 스테로이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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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카지노이 심해지면서 시끄럽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 몹시 답답하고 괴로웠다. 혹여나 언짢은 일이라도 생기면 짱구카지노은 더 커졌다. 게다가 짱구카지노은 결코 아름다운 소리일 수 없다.바람 소리, 공장 소리, 전자음같은 게 뒤섞여 들리니 불안하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이 무렵 내게 우울증 증상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우울증의 원인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시작됐을 거라 짐작되지만, 우울증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이명까지 더해져 불안이 거세졌을 거라 진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짱구카지노은 오직 청력의 문제가 아니다. 짱구카지노은 실제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귓속 또는 머리에서 소리가 들리는 이상 음감이다. 그 말은 짱구카지노의 원인에 뇌의 문제도 포함돼 있다는 거다. 짱구카지노의 추정 가능한 원인에는 내이 질환, 소음 외에도 약물, 스트레스, 피로 등이 있고 청신경 종양, 소뇌교각부 종양, 갑상선 질환, 혈액 질환, 두부 외상, 알코올 중독, 가족력, 사회력 등을 감별해야 한다. 그렇기에 내게 벌어진 우울증과 이명은 내면을 갉아먹는 데 상부상조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이비인후과에서 내 치료를 포기했다. 의사가 “더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는 말을 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의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포기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의미 없는 치료를 이어가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지만, 짱구카지노이 너무 크고 고통스러운 데다 이관까지 문제가 생겨 엘리베이터만 타도 귀가 꽉 차올랐다.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 나를 포기한다는 말은 미래 없는 인생의 신호탄으로 보였다.


만약 같은 시기에 정신과에 다니지 않았다면 의사가 했던 것처럼 나도 짱구카지노 치료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의사가 더 할 게 없다는데 환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고등학생 때 했던 것처럼 아주 작은 소리의 백색소음을 듣는 것 말고는 무력하게 기적을 바라야 하는 걸까.


공부를 시작한 게 후회스러웠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짱구카지노이 심해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후회는 새로운 후회를 빚어내고 아주 당연하게도 우울로 이어진다. 좀 더 과거로, 더 과거로 범위를 넓힌다. 전공을 다르게 선택했다면 달라졌을까, 공부를 30대에 시작할 걸 그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짱구카지노이 심해지지 않았을 텐데. 도움이라곤 일절 될 일 없는 후회는‘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고통이 없었을 텐데.’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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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지독한 후회와 우울의 파도에서도 살아남았다. 정신과 진료가 있을 때 이 모든 상황을 의사에게 전했고, 의사는 이런 내게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와 더불어 짱구카지노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신경안정제를 함께 처방해 줬다. 의사는 짱구카지노은 과로와 생각이 많았던 뇌가 이상 증상을 겪는 거라 설명했다. 물론 신경안정제로 깨끗하게 짱구카지노이 사라지긴 어렵다며 다른 병원에도 가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나는 용기를 내 이비인후과 상급병원을 찾아 다시 진료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도 짱구카지노 치료 중이다. 다행히 현재 이비인후과 의사는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검사와 다양한 시도를 해도 이렇다 할 회복이 없는 나에게 계속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당분간 경과를 보며 한 달 정도 약 복용만 하기로 결정한 날, 용기 내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의사는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절대 포기 안 해요.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할 거예요. 끝까지 노력해야죠.”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의료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에서 희망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 덕분인지 우울증 치료의 예후도 좋았다. 정신과에서는 예후가 좋아서 치료가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좋은 신호를 보내왔다.


절망과 어둠으로 끌어들일 때 이명과 우울증은 상부상조하며 나를 갉아먹는 데 서로 협조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마음이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치료의 의지를 드러낼 때도 이명과 우울증은 상부상조했다. 포기하지 않고 이면 치료를 다시 시작한 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됐다. 우울증 약에 첨가된 신경안정제가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이명 치료에 도움이 됐다. 그러고 보면 이명과 우울증은 아주 끈끈한 사이가 아닐는지.


치료는 현재진행형이다.한쪽 귀에는 여전히 불안한 감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이 소리는 욍욍 울리는 소리에 불길한 분위기의 전자음이 결합된 형태인데, 나는 이 소리를 ‘찬란한 아이’라고 부른다.


비유하자면 영화에서 불안이 엄습할 때 쓰기 딱 좋은 효과음 혹은 먼 타지에서 찾아온 특별한 존재라든가 찬란한 빛 사이로 내려오는 신성한 존재를 부각하는 데도 좋을 소리라고 바꿔 생각해서다. 불길한 소리라고 부르는 대신 한쪽 귀에 머무르는 짱구카지노을 찬란한 아이라고 부르면 어려운 현재의 시간이 조금 덜 힘들게 느껴진다.


이 얘기를 남편에게도 했는데, 내 컨디션을 체크할 때 종종 남편도 그 용어를 사용한다.

“지금 찬란한 아이 와있어?”

“응, 아침부터 와있지. 참 부지런도 하네.”

“그럼 지금 힘들어?”

“아냐, 괜찮아. 때 되면 가겠지. 그냥 진상이라는 생각만 들어.”


언젠가 떠날 찬란한 아이는 떠날 때도 외롭지 않게 우울증의 손을 잡고 가길 바란다. 확신하고 있다. 우울증과 이명, 모두 내게 잠시 머무르는 존재들이고 언젠가 반드시 날 떠나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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